글읽기
read 17322 vote 0 2005.09.06 (18:14:49)

 


퇴계는 넘치나 율곡은 없다


퇴계는 풍기군수 등 말직을 전전하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조정이 부르면 마지못해 응했다가 곧 핑계를 대고 물러났다. 그러기를 무수히 반복하였다.


말년에 있었던 퇴계의 큰 벼슬은 대개 문서상으로만 이루어진 명목상의 것이다.


퇴계는 조정에서 별로 한 일이 없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퇴계가 키운 유림이 조정을 장악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율곡은 중앙관서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선조를 다그쳐 무수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개혁안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정치스타일. 퇴계는 벼슬을 마다하고 물러남으로서 할 말을 했고, 율곡은 적극적으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임금을 가르쳤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둘 다 좋지만 율곡이 더 옳다. 참여지성의 전범은 퇴계가 아니라 율곡에 있다.


비록 선조가 율곡의 개혁안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율곡이 끊임없이 조정에 긴장을 불어넣었기에 그나마 조선이 망하지 않고 500년간 해먹은 것이다.


오늘날 지식인 중에 퇴계는 많고 율곡은 없다. 물러나서 뒷말하는 자는 많고 나서서 개혁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완고한 원칙가는 많고 유연한 협상가는 없다. 왜인가? 율곡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대단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긴장의 연속이다.


퇴계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고 자신을 반성하며 물러났다. 율곡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한걸음 먼저 내다보고 문제의 발생지점을 폭파하였다.


정치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정치의 스트레스를 잘도 견뎌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은 죄 악당이고, 그 스트레스를 못견뎌 하는 착한 인간들은 퇴계처럼 도망치고 만다.


퇴계는 쉽고 율곡은 어려운 것이다. 본래 그렇다. 정치 신경쓰다 위장병 걸려버린 필자 역시 퇴계처럼 도망치고만 싶으니.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5680 정용진 윤석열의 멸공놀음 김동렬 2022-01-10 3361
5679 구조론적 행동주의 김동렬 2022-01-09 2913
5678 고수 이재명 하수 윤석열 김동렬 2022-01-08 3652
5677 지식권력의 문제 김동렬 2022-01-08 2572
5676 윤석열 이준석의 몰락공식 김동렬 2022-01-07 3711
5675 지식인의 자세 1 김동렬 2022-01-07 2771
5674 윤석열 김종인 이준석 삼국지 김동렬 2022-01-06 3368
5673 과학 하기 싫다? 김동렬 2022-01-05 2629
5672 누가 윤석열을 죽였는가? 1 김동렬 2022-01-05 3285
5671 배신의 정치 윤석열 김동렬 2022-01-04 3666
5670 안철수로 단일화 한다고? 김동렬 2022-01-03 3793
5669 이재명 지지율이 오른 이유 김동렬 2022-01-03 3318
5668 윤석열 멸망 진짜 이유 image 김동렬 2022-01-03 3504
5667 과학과 비과학 김동렬 2022-01-02 2771
5666 이재명 윤석열 김동렬 2022-01-02 3062
5665 MB 아바타와 내가 바보입니까? 김동렬 2022-01-01 3355
5664 과학은 세는 것이다 김동렬 2021-12-30 2805
5663 갈릴레이의 멀리보기 김동렬 2021-12-30 2582
5662 세계관의 문제 김동렬 2021-12-30 3854
5661 껍질 벗겨진 멧돼지의 난동 김동렬 2021-12-30 3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