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7391 vote 0 2005.09.06 (18:14:49)

 


퇴계는 넘치나 율곡은 없다


퇴계는 풍기군수 등 말직을 전전하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조정이 부르면 마지못해 응했다가 곧 핑계를 대고 물러났다. 그러기를 무수히 반복하였다.


말년에 있었던 퇴계의 큰 벼슬은 대개 문서상으로만 이루어진 명목상의 것이다.


퇴계는 조정에서 별로 한 일이 없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퇴계가 키운 유림이 조정을 장악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율곡은 중앙관서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선조를 다그쳐 무수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개혁안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정치스타일. 퇴계는 벼슬을 마다하고 물러남으로서 할 말을 했고, 율곡은 적극적으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임금을 가르쳤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둘 다 좋지만 율곡이 더 옳다. 참여지성의 전범은 퇴계가 아니라 율곡에 있다.


비록 선조가 율곡의 개혁안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율곡이 끊임없이 조정에 긴장을 불어넣었기에 그나마 조선이 망하지 않고 500년간 해먹은 것이다.


오늘날 지식인 중에 퇴계는 많고 율곡은 없다. 물러나서 뒷말하는 자는 많고 나서서 개혁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완고한 원칙가는 많고 유연한 협상가는 없다. 왜인가? 율곡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대단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긴장의 연속이다.


퇴계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고 자신을 반성하며 물러났다. 율곡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한걸음 먼저 내다보고 문제의 발생지점을 폭파하였다.


정치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정치의 스트레스를 잘도 견뎌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은 죄 악당이고, 그 스트레스를 못견뎌 하는 착한 인간들은 퇴계처럼 도망치고 만다.


퇴계는 쉽고 율곡은 어려운 것이다. 본래 그렇다. 정치 신경쓰다 위장병 걸려버린 필자 역시 퇴계처럼 도망치고만 싶으니.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17580
1519 1+2는 3보다 작다 1 김동렬 2019-01-10 3390
1518 시스템의 이해 1 김동렬 2018-09-27 3389
1517 언어의 문제 1 김동렬 2021-05-13 3387
1516 코인은 권력이다 1 김동렬 2021-04-24 3387
1515 사실에서 사건으로 김동렬 2018-09-26 3387
1514 지적 설계의 문제 14 김동렬 2021-09-12 3386
1513 인간이 바보인 이유 김동렬 2021-02-23 3385
1512 세상은 효율이다. 김동렬 2019-07-23 3385
1511 왜 김대중인가? 2 김동렬 2020-07-31 3384
1510 마음의 마음 2 김동렬 2019-03-07 3384
1509 진보의 전략과 보수의 전술 김동렬 2020-12-02 3382
1508 세상은 5다 1 김동렬 2019-01-31 3382
1507 왜 유교권이 강한가? 김동렬 2020-11-13 3381
1506 윤석열 딜레마 김동렬 2021-03-18 3379
1505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김동렬 2021-01-09 3378
1504 쉬운 그림풀이 image 1 김동렬 2018-12-07 3377
1503 변하지 않는 것은 관계다 2 김동렬 2020-12-03 3376
1502 메기효과와 역 메기효과 4 김동렬 2019-11-08 3374
1501 관념으로의 도피 김동렬 2021-08-18 3373
1500 선등자와 확보자 김동렬 2022-01-11 3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