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2년전 서영석님이 중앙일보에 기고해도 되겠는가 하고 의견을 물어서 적극 만류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나설 일이 아닌데 오바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잘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홍이 대통령에 의해서 주미대사에 임명되었을 때 ‘조만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과 중앙이 박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연출될 걸로 보고 속으로는 희희낙락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 보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홍석현의 출세신공’, ‘중앙일보 변할 것인가’ 등의 칼럼으로 부정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도 말이다.

필자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조선과 중앙이 박터지게 싸울 거라는 전망도 맞았고, 그 여파에 참여정부가 곤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맞아버렸다.

세상 일이 요령대로 될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그 요령과 잔재주가 늘 원칙과 상식에 뒤통수를 맞아왔다. 한때 대쪽을 구가하던 개쪽씨의 그 잔머리와 꼼수는 이렇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강이 뒤늦게 흰소리를 하고 있는데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판 상황을 예견했다면 아마도 그런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당 창당이 잘한 일이 아니라고? 삼성 돈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에도 들어간 것은 보시다시피 주지의 사실이다. 설훈의 폭로가 도청에 따른 작품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알 수 없는 것이다.(앗 실언^^;;)

사실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잘 모르는 일은 확률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언젠가는 꼬리가 밟히고 만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역사의 경험칙이다.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바꾼다니 어쩐다니 했지만 병든 이회창의 꼬리를 마저 자르지 못했고, 우리당은 적어도 약간은 꼬리를 잘라내는데 성공했다.

적어도 우리당은 천신정과 김근태가 결단한 결과로 한나라당에 비해서 상당한 도덕적 비교우위를 획득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만약 우리당을 창당하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은 같이 죽는 판이 아닌가?

방향은 옳은데 역량이 달린다

무엇인가? 총론으로 말하면 ‘우리가 가는 방향은 옳지만 역량은 부족하다’ 정도가 정답이 되겠다. 그렇다! 우리는 옳지만 힘이 부치고 있다. 이 경우의 해답은? 꾸준히 가는 것이다. 그럴수록 소걸음으로 가는 것이다.

가면서 힘을 기르는 것이다. 힘을 길러서 또 싸우고 또 이겨내는 것이다. 과거의 묵은 때는 되도록 털어버리고 조금이라도 깨끗해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강준만이 게거품을 물고 있지만 우리당 창당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죽으면 홍창이 저나 죽을 일이지 우리가 왜 덤터기를 쓴다는 말인가? 우리당은 죄 없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신정과 김근태가 창당을 결단했기 때문이다. 잘한건 박수쳐줘야 한다.

바뀐 시대에 지식인의 역할

결론적으로.. 지식인은 정치판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과거의 관습이었다면 그 관습을 보기좋게 깨뜨린 사람이 강준만이다. 지난날 우리가 그를 좋아했던 것은 그가 확실히 한쪽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 지식인이 중도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 확실히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옳은가? 지식인이 공정한 심판이 되어야지 선수로 뛰어도 좋은가?

역사는 진보한다. 관례는 깨지고 만다. 룰은 바뀌어진다. 정답은 ‘그렇다’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지식인도 선수로 뛰어야 하는 시대이다. 중도니 객관이니 이런거 안통한다. 지금은.

강준만에 미련을 두는 사람도 있는데 참으로 어리석다. 그는 정치게임에 중독된 자다. 강은 스스로 지식인의 룰을 바꾸어놓고 그 덫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두가지 잣대가 있다. 과거의 잣대로 말하면.. 강준만은 지식인처럼 양비론을 하지 않고 확실하게 한쪽 편을 든 그 자체로 잘못이다. 즉 그는 저급한 정치게임에 선수로 뛰어든 것이다. 심판이 아닌 선수 말이다.

새로운 잣대로 말하면.. 지식인이 선수로 뛰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실시간 피드백이 되는 인터넷 시대이다. 우리가 공론의 장을 잘 이끌어가기만 한다면, 지식인이 그 공론을 존중하는 한 선수로 뛰어도 상관없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 덕분에 말이다.

단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오판하는 즉 퇴출이다. 공론을 존중하지 않고 개인플레이 하는 즉 퇴출이다.

강준만은 스스로 룰을 바꾸었지만 그 룰이 자리잡은 시스템 곧 인터넷의 공론은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플레이를 한 결과로 타락한 킹메이커 업자가 되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조폭들의 광란을 지켜보면서

조선일보가 자기네는 용케 빠져나갔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동아일보가 이 판국에도 끝까지 악을 쓴답시고 "DJ 괄시 못해 더블플레이 한다" 요런 제목의 기사를 걸어놓고 있는데 불쌍한 일이다.

너희 눈에는 이 판국에도 창은 안보이고 DJ만 보인다냐? 이 판국에도 창을 보위하는 것이 너희의 임무로 아느냐? 드런 놈들이 아닌가. 조선이 조폭이면 동아 니들은 양아치다.  

재벌과 정치권, 언론의 삼각 카르텔이 깨진 것이다. 도둑놈들의 의리가 무너진 것이다. 조폭들이 늘 의리를 찾긴 하지만 세상에 배신 잘 하는 것이 조폭이다. 그들의 의리란 이익이 일치하는 잠시 동안 뿐이다.

이익의 불일치가 노출되었다. 이제 거침없는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확실히 노무현 대통령을 뽑은건 잘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아니었다면 이 멋진 쇼를 어떻게 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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