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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033 vote 0 2005.06.29 (20:23:37)

전인권을 생각하며

당신의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소.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오.

부조화의 느낌.. 그것은 이상한 언밸런스로 생각되었소.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치밀었다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일을 두고 한마디씩 했소. 물론 대부분은 당신의 행동을 비웃는 내용이었소. 그러나 나는 결론을 유보하기로 했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오.

어쨌든 당신의 행위로 하여 사람들은 삶이란 것에 대하여 한번 쯤 더 생각해 보게 된 것이잖소. 그 가치도 일단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소.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오마이뉴스에 당신을 옹호하는 기사가 실렸소. 처음 들었던 소식은 특종을 놓친 일부 기자의 복수심이 작용한 기사로 생각되었소.

하여간 오마이뉴스 기사로 하여 나의 생각은 약간 바뀌었소. 분별없는 사람들이 한 예술가의 삶에 대한 열정적인 자세 -그 역시 예술의 일부일 수 있는- 에 함부로 개입하여 난도질 하고 있다고 보았소.  

이 나라가 말이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당신이라는 사람 하나를 포용할 수 없다면 참으로 가난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소.

하여간 나는 당신이 조금 더 버텨주기를 희망했소. 그리고 오늘(28일) 당신의 방송 인터뷰가 포털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소. 당혹스러울 뿐이오.

알고 있소? 당신은 지금 세상을 향하여 싸움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동정을 구걸할 생각일랑 마시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가해자일 수 있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인터뷰를 보고 상처입었을 것이오.

이은주의 추억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신의 자산이오. 당신은 그것을 독점할 요량으로 사회를 향해 공격한 것이오. ‘내것이야. 손대지 마.’ 이런 거.

모든 사람이 당신을 잘 알고있는 것은 아니오. 전인권은 알고 이은주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신 편이오. 전인권도 알고 이은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중 절반만 당신 편일 것이오.

전인권은 모르고 이은주는 아는 사람은 물론 당신의 편이 아니오. 전인권도 모르고 이은주도 모르는 사람 역시 당신의 편이 아닐 것이오. 그러므로 이 싸움에서 당신은 패배하게 되어 있소. 그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오.

반전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오. 만약 당신이 존 레넌 처럼 운명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면 상황은 반전될 수도 있소. 물론 당신이 거기까지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승리하기 바라오. 김기덕의 영화 ‘악어’가 생각나오.

한강에는 악어가 살아야 하오. 모두가 싫어하는 악어 한 마리가 그곳에 있으므로 해서 한강은 조금 더 크고 신비한 강이 되는 것이오.

작은, 너무나 작은 이 바닥에 당신이 버티고 서 있으므로 해서 가난하기 짝이 없는 이 바닥이 조금 더 크게 보여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아마도 당신이 패배자가 되지 않는 한, 당신이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는 한 이 드라마는 완결되기 어려울 것이오. 그래서 슬프오.

나는 당신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고집을 느끼오. 당신의 결기를 세운 단호한 목소리에서 말이오.

세상에는 많은 전인권들이 있소. 그들은 당신처럼 강하지 않소. 그들은 고집이 없소. 그들은 유명한 예술가도 아니오.

그들은 당신처럼 싸우지 않소. 그들은 싸워보기도 전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달아나고 숨기 바쁘다오.

당신은 인정해야 하오. 당신이 그토록 덤덤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지명도 있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당신 자신을 변호하고 이해시키려 해서 안되오. 만약 당신 한 사람을 위하여 변명한다면 비겁하오.

당신은 세상을 향하여 싸움을 건 것이며,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그 싸움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많은 전인권들을 위하여 그들의 대표선수로 나선 것이어야 하오.

당신은 그들, 제 목소리 내지 못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숨은 전인권들을 위하여 대신으로 싸워주어야 하오. 자신을 희생시킬 각오를

하고 말이오.

승리하든 패배하든 중요하지 않소. 삶 앞에서 우리 진솔해져야 한다는 거.. 그런 진솔함이 열정을 낳고 예술을 낳고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거.

당신의 일을 계기로 하여 삶의 그러한 부분을, 그 인생의 신비를 한번 쯤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는 지혜를, 우리는 발휘할 수 있을 것이오.

이 사회의 고문관들을 위하여

포탈에서.. 김일병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경험한 어떤 악질적인 고문관 일병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이 올랐는데.. 과연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어디가나 내무반에는 꼭 그런 병사가 있다.

패죽이고 싶은 넘.. 이가 갈리는 넘.. 질서를 무시해서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그러나 필자는 그 글을 읽고 상념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그 글에 환호하여 댓글을 달며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는 예비역들. 상어떼처럼 물어뜯는 모습들.. 눈에 핏발이 섰을 듯한.. 섬뜩한 느낌..!  

고문관이라면 바둑의 이창호 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이창호 국수는 병역을 면제받아 논산에서 4주훈련을 받았을 뿐인데.. 그는 늘 아침점호에 늦었다고 한다.

전투화 끈을 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투복의 단추를 꿰는데도 서툴렀기 때문이다. 이창호 한 사람 때문에 중대의 많은 병사들은 새벽 추운 연병장에서 최소 5분 이상 더 떨어야만 했다.

당신은 그러한 이유로 고문관 이창호 훈련병을 비난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사회는 적어도 우리가 꿈 꾸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다.

하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의 기준으로만 움직여 가는 사회라면.. 무섭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 사회는 전인권 같은 고집센 고문관들을 일정부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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