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예전에 본 유머 한 토막을 인용한다. 어떤 남자가 뚱뚱한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전 님처럼 뚱뚱한 여자를 좋아해요. 뚱뚱한 여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정말 나쁜 거죠. 전 그런 편견이 조금도 없답니다. 저의 프로포즈를 받아주실 거죠?”

그 남자가 귀싸대기를 맞았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 남자가 자신의 실패한 원인을 알아챌 수 있는가이다. 뭐가 잘못되었지?

아뿔사! 실수였다. 그 여성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본인은 적당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남자는 그 여성을 일반과 차별하여 ‘뚱뚱한 여자’로 규정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박근혜 왈.

"내용을 보니 대변인이 학력지상주의가 아니었다. 당 역시 학력지상주의가 아니다"

거짓이다. 전여옥은 학력지상주의자가 맞다. 박근혜의 해명은 예의 그 멍청한 남자가 ‘나는 뚱뚱한 여자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뚱뚱한 여자’로 규정하여 ‘차별의 표지’를 부착하는 실수를 범한 것과 같다.

전여옥 왈.

“나는 국민 모두가 학력에 대해 자유로운 세상,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어디까지나 학력에 대한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었고, 내 주변의 다양한 학력에 대해 여기 있는 어느 분들보다도 존중하고 있다"

이 말은 미국의 어떤 백인이

“나는 흑인들을 좋아한다. 내 주위에는 세차장에서 일하는 흑인 친구도 있다. 그는 참 근면하고 성실하다. 나는 그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넉넉한 팁을 준다. 그들에게도 훌륭한 미국인의 자격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언뜻 들으면 흑인을 동료로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차별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그 친구를 ‘나의 친구’가 아닌 ‘흑인 친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헐리우드영화에서 흑인이 맡는 배역은 정해져 있었다. 흑인도 존중하지만, 흑인을 존중해서 배역을 주기는 하지만, 흑인은 특정한 배역을 맡아야만 잘 어울린다는 생각.

주변의 다양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을 물론 존중하지만, 초졸은 이걸 해야 하고 중졸은 이걸 해야하고.. 고졸의 할 일과 대졸의 할 일이 별도로 나누어져 있다는 생각. 그렇게 사람 사이에 금을 긋고 포지션을 나누는 것이 맞다는 생각.

“군(君)은 군다이, 신(臣)은 신다이, 민(民)은 민다이”
(신라시대 충담사의 안민가.)

“남자는 남자의 도리를, 여자는 여자의 도리를”
(빌어먹을 이문열식 남녀평등, 또는 조선시대의 남존여비.. 하기사 그때 그시절 그들은 차별이 아니라 분별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변호사는 지역구로, 교수는 전국구로”
(한나라당의 공천규칙.)

그들은 차별(差別)이 아니라 분별(分別)이라고 믿지만 분별이 곧 차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성을 존중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모성의 역할, 혹은 아내의 역할로 규정짓고 그 울타리 안에 갇힌 여성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태도가 문제다.

박근혜와 전여옥이 생물학적으로 여성 정치인이긴 하지만 여성의 정치적 지위향상에 전혀 도움이 못되는 것은.. 부시정권 하에서 흑인인 라이스와 파월이 백인천하를 위한 구색맞추기로 동원되어, 실제로는 흑인의 정치적 지위향상에 도움이 못되는 것과 같다.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것 보다 고은광순님이 국회의원 되는 것이 훨씬 더 여성의 정치적 지위 향상에 기여한다. 왜인가? 고은광순님의 방식이 ‘물리적 차별에서 역할을 통한 분별’이라는 식의 더 교묘해진 기득권의 방어막을 정면으로 깨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박전들의 봉건주의가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봉건사상’ 그 자체다. 봉건주의는 ‘사농공상’의 역할분담에 의미가 있다. 계층간에 소통의 통로를 봉쇄하므로써 사회질서의 변동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초졸도 존중하고 중졸도 존중하지만 초졸은 농사를 짓는 것이 맞고, 중졸은 운전기사를 하는 것이 맞고, 고졸은 건설기사가 적당하고, 대졸은 관리직을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바로 틀려먹은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박근혜와 전여옥의 해명에는 자기네가 뭘 잘못 말했는지 알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니홈피 방문자 100만명 기록 올리면 뭐하나? 이렇게 한 방에 다 까먹어 버릴건데.

인간을 모욕한 죄, 인간의 존엄을 해친 죄, 인간을 다른 가치를 위한 구색 맞추기로 동원한 죄, 그것은 창조자 신(神) 앞에서의 범죄다. 종교를 믿든 안믿든 이 사실은 받아들여야 할 것.

무엇이 옳은가?

인터넷 시대다. 개똥녀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여자도 아마 대학을 나왔을 것이다. 그 개똥을 치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학을 안나왔을 것이다.

이젠 진짜로 잘난 인간들 뒤에 줄서서 묻어가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개개인의 인격이 낱낱이 판명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다움의 아름다움에 도달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자와 추한 자가 있을 뿐이다. 그 아름다움은 개인의 위치에서 판명된다.

추한 인간이지만.. 강남에 살고 있으므로 강남에 사는 잘난 인간들에게 묻어간다는 생각, 추한 인간이지만 서울대 나왔으므로 황우석 교수 뒤에 줄서서 묻어간다는 생각.. 그걸 버려야 한다.

세상의 평판에 의해 그룹단위로 자신이 규정된다는 생각 자체가 틀려먹은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자기 스스로 매기는 것이다. 전여옥이 박근혜의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한 그는 가방모찌에 불과하다. 전여옥이 자신에게 매긴 그의 값어치다.

(박근혜가 뜨면 전여옥도 뜬다는 식의 '묻어가자 주의' 말이다.)

지도자를 찾아 우르르 몰려 다니는(묻어가는) 나약한 군중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강한 개인이 될 것인가?

자신의 값어치를 타인의 평판에 맡기는 비겁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386 김동길병 조심합시다 김동렬 2005-07-18 15355
1385 강준만 이념이냐 인물이냐 김동렬 2005-07-18 14920
1384 포털사이트의 반역 김동렬 2005-07-17 14325
1383 연정에 찬성하면 대통령 된다 김동렬 2005-07-15 16275
1382 문희상은 대통령이 탈당하게 만들려는가? 김동렬 2005-07-13 15330
1381 홍준표법의 경우 김동렬 2005-07-05 14274
1380 민노당과의 연정 못할 거 없다 김동렬 2005-07-04 13919
1379 노무현 한방으로 사태평정 김동렬 2005-07-04 13945
1378 전인권을 생각하며 김동렬 2005-06-29 15442
1377 전여옥의 전성시대 김동렬 2005-06-29 14673
1376 위험인물 강준만 김동렬 2005-06-24 16119
1375 조선일보 불 내가 질렀다 김동렬 2005-06-23 14016
1374 강준만 아직도 더 망가질 건수가 남았다 김동렬 2005-06-22 14057
1373 전복의 전략 2 김동렬 2005-06-15 13374
1372 전복의 전략 1 김동렬 2005-06-15 13776
1371 전여옥의 질투 김동렬 2005-06-14 14312
1370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생각 김동렬 2005-06-12 14433
1369 정동영은 뭣하고 있나? 김동렬 2005-06-11 14330
» 전여옥과 박근혜의 막상막하 김동렬 2005-06-09 14649
1367 문희상은 왜 버티고 있나? 김동렬 2005-06-08 14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