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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047 vote 0 2005.06.05 (18:16:13)

역사는 흐른다. 그것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뉘라서 그 흐르는 강물 위에 금을 그어 구획을 나눌 수 있겠는가?

어느 순간 누군가가 선언한다. ‘지금부터는 근대다!’ 많은 사람이 맞장구를 쳐준다. ‘맞아 이제부터 근대야. 우린 중세를 졸업하고 근대를 살아가고 있는 거라구!’ 이러한 선언과 동의로 하여 문득 그 이전 시대는 중세의 뒷방으로 밀려난다.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선언한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시대야! 정보화 혁명 이후 우리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를 맞이한 거라구.’

그것은 도도히 흐르는 대하의 강물 위에 금을 긋는 일과 같다. 그러나 다수가 동의하고 나서면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 기정사실로 된다.

칸트와 계몽사상가들

누가 그런 일을 했는가? 임마누엘 칸트다. 칸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뉴튼이다. 칸트는 뉴튼의 성과를 모든 방면에 적용하려고 했다. ‘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이 하나의 방점으로 된다.

군중들은 질문한다. ‘근대와 중세가 뭐가 다르지?’ 칸트는 대답한다. ‘마녀사냥을 하면 중세고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면 근대지!’ 또 말한다. ‘교회가 판단하면 중세고 지식인의 총의에 따른 공론이 결정하면 근대지.’

무엇인가? 뉴튼의 성과는 교회의 가르침과 충돌할 수 있다. 군중들은 혼란에 빠져버린다. ‘교회가 옳은가 아니면 과학이 옳은가?’ 뉴튼이 하느님의 교회를 파괴하러 온 사탄의 앞잡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마녀사냥의 전통에 익숙한 그들의 방식대로라면 뉴튼을 화형에 처해야 맞다. 어리둥절한 군중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에 칸트가 나선다.

불도적한 프로메테우스

불은 태양의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태양은 그 자체로 신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에 인간이 신을 흉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비로소 문명의 시발이다.

문명이라는 엔진에 기어이 발동이 걸려버린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질주.

중세인들의 태양은 기독교의 신이다. 신은 완전무결하다. 그 완전성의 표상은 성경이다. 구텐베르크는 성경의 비밀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달하였다. 이에 인간이 신의 역할을 얼마간 흉내낼 수 있게 되었으니 곧 근대의 시발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의해 첫 번째 불똥이 튀었고, 뉴튼에 의해 그 불은 너른 대지로 옮겨붙었다. ‘불이야!’하고 소리지른 사람이 칸트다.

무엇인가? 이성이다. 신은 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문명의 불’을 소지할 자격이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그러하였듯이 불도적질은 코카서스의 바위 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혀야 하는 큰 죄다.

인간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무시무시한 죄를 저질러 버린 것이다.

‘겁 먹지 말라!’ 하고 두려워 하는 군중을 진정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신의 완전성을 흉내낼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 인간은 문명이라는 위험한 불을 적절히 컨트롤할 자격을 가졌을 정도로 훌륭한 존재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성(理性)이다. 이성이란 신의 완전성을 흉내낼 수 있는 인간의 자격이다. 곧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러나 믿을 수 있을까? 뉴튼의 발견이 ‘위험한 질주’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뉴튼은 신의 비밀을 엿본 자다. 화형에 처해야 한다. 황우석 교수 역시 신의 영역에 도전한 자다. 마땅히 처단해야 한다.’

머저리 ‘부시’의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 당시에도 많았던 것이다. 누가 부시 따위의..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나서는 마녀사냥꾼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백과전서파 계몽사상가들이 나타난 것이다.

● 신의 완전성(신권) - 성경 - 교회.
● 인간의 이성(인권) - 백과전서 - 학교.

신의 완전성은 성경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권을 가진 집단이 교회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버려서 카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성경해석권을 뺏겨 버렸다.

교회의 권위는 무너졌다. 신의 완전성을 대리할 인간의 이성이 칸트에 의해 주장되고 교회의 성경을 대리할 백과전서가 제작되고, 성문헌법이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실험된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신의 진리를 해석할 권리가 교회에서 학교로 넘어온 것이다.

무엇인가?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했다고 해서 혹은 뉴튼이 역학을 발견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누군가가 외쳐야 한다. 다수가 맞장구를 쳐주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수의 지식인에 의해 문명사적 차원의 거대한 엔진교체 작업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등장은 금속활자의 등장과 같다. 신문명 시대의 뉴튼이 필요하고 칸트가 필요하고 디드로와 달랑베르와 룻소가 필요하다. 근대주의자가 나타나서 ‘근대’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인간들은 도무지 근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다.

앙시앙레짐의 고통 속에서

기어이 혁명의 불길은 당겨졌으나 그 불길은 너무 일찍 꺼져 버렸다. 앙시앙레짐의 반동이 시작되었다. 백과전서 제작에 참여한 일단의 지식인들은 그 고통 속에서 100년 가는 긴 싸움을 한 것이다.

민중을 계몽시키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 참담할 뿐이다. 분명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는데도.. 다수의 민중들은 오히려 그들의 적인 왕당파에 가담하여 혁명을 방해했다는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분명 새로운 시대가 왔다. 그러나 그것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금 하나 긋는 것이다. 표시가 날 리가 없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우리의 외로운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피와 눈물의 결정체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백과전서다. 백과전서는 읽혀지는 책이 아니라 일단의 지식인들이 그들이 신념을 보여준 하나의 일대사건이다. 남은 것은 진정성 하나 뿐이다.

그것은 성계육을 씹었던 두문동 선비들의 불출과도 같으리라. 그들은 낙담하고 떠나 새로운 터전에서 긴 싸움을 준비했던 것이다.

왜 강한 개인이 필요한가?

중세의 신권시대는 진리의 해석권을 교회가 독점하고 있었다. 금속활자의 보급 이후 그 독점이 깨져서 다수의 지식인들이 진리의 해석에 참여하므로써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결정적 승부는 뉴튼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승리를 최종 확인한 사람은 칸트라면 이를 전파한 사람이 백과전서파였다. 진리의 해석에 관한 교회의 권한이 학교와 언론으로 넘어간 것이다.

제 2의 금속활자라 할 인터넷의 보급으로 진리의 해석에 관한 지식인들의 독점이 깨졌다. 곧 진리의 해석권한이 신권의 교회에서 인권의 학교로 넘어온 것이 중세와 근대의 가름이라면..

엘리트 지식인들에게서 진정한 정보의 생산주체인 네티즌 모두에게로 넘어와야 하는 흐름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꿈틀꿈틀 일어나고 있는 변화인 것이다.

누가 정보를 생산하는가? 지식인이 생산하고 엘리트가 생산한다. 대중은 단지 정보를 소비할 뿐이다. 그러나 달라졌다. 이제는 민중 개개인이 모두 정보 생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준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 하느님 - 성경 - 교회.(독점시대)
● 지식인 - 백과전서 - 학교.(일방향시대)
● 네티즌 - 서프라이즈의 역할 - 네트워크.(쌍방향시대)

새로운 시대는 개인이 정보생산의 주체가 된다. 엘리트에의 의존이 불필요한 사회가 된다. 그러나 과연 훈련되지 않은 네티즌들에게 그러한 자격이 있는가이다.

전여옥의 망언을 듣고 커다란 깨우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문명의 소비자로 안주하지 말고 문명의 생산자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달라지고 있다.

엘리트간 경쟁에서 만인 대 만인의 경쟁으로 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감독과 코치 그리고 고참들이 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선수가 고르게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이 변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질이 그 사회 전체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개화기 일본이 조선보다 강하고 청나라 보다 강했던 것은, 그들 일본인 개개인의 자질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몇몇 선각자들이 강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조직력의 승부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이다.

그 시대엔 리더가 명령하면 민중은 복종하는 것이 맞았다. 그 시대는 스타나 감독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박찬호가 있었고 우리에게는 없었다. 당시 일본에는 히딩크가 있었고 조선에는 히당크가 없었다.

조직력의 일본인들은 리더에게 복종했고 그 결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자질이 뒤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는 다르다. 구성원 개개인의 질이 결정한다. 앉아서 영웅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 박정희가 우리를 구원해줄 히딩크가 아닐까 혹은 히틀러가, 혹은 스탈린이, 혹은 김일성이.. 하고 요행수를 바라던 그런 시대는 지났다.

뉴욕 양키즈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면 어떤가? 몇몇 스타나 감독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모든 선수가 강해져야 한다.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히딩크를 바래서 안된다.

이제는 정말 박지성과 이영표와 박주영과 안정환과 차두리가 다 잘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러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여옥에서 황우석까지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세주를 갈망하는 나약한 군중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강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21세기의 부름소리를 듣을 귀 있다면 말이다.

나약한 군중 전여옥에게는 강한 개인 노무현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 심정 이해한다. 그래서 그때 그 시절 칸트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즈막히 말해주었던 것이다.

겁 먹지 말라고.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고. 인간은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신은 말 잘 듣는 노예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고독을 덜어줄 수 있는 자유인을 원한다고.

겁 많은 노예 부시에게는 신의 비밀을 탐구한 황우석 박사가 못마땅할 것이다. 신의 벌이 두려울 것이다. 그 심정 이해한다. 그래서 그때 그 시절 계몽사상가들이 머저리 부시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앙시앙레짐의 고통속에서 백과전서 간행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재현되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선인들이 먼저 간 길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옷을 입고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 임무가 주어졌다 해서 두려울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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