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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171 vote 0 2005.06.03 (17:50:19)

시바 료타로의 칼럼집 ‘고노쿠니노 카타치’가 참고할 만 하다. 요는 일본인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이다.

일본인을 알려면 ‘와카슈의 법칙’과 ‘대게대게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와카슈(若衆)인지 ‘와카슈야도’인지 혹은 ‘야도’인지 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신라의 화랑도 비슷한 청소년집단으로 생각된다.

메이지 시절에.. 시골사람의 야만적인 습속이라 해서 와카슈를 해체하고 일본청년단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와카슈가 하는 일은 마쓰리 때 가마를 메고 달리는 일이라든가 혹은 이웃마을과의 물싸움 때 돌격대 노릇을 한다든가.. 우리나라의 돌싸움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하고.. 또 ‘요바이’라고 해서 밤중에 이웃마을을 습격하여 멀쩡한 처녀를 어째버린다든가 하는 것도 있어서 사회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대개는 야만하였다고 한다. 국가에서 와카슈를 금지할 정도로.. 하여간 시바 료타로는 일본인의 정체성을 얼마간 와카슈의 전통에서 찾고 있다.

와카슈의 법칙과 대게대게의 법칙

‘데게’ 혹은 ‘데게대게’라는 것도 재미가 있다. 우리말로는 ‘대강대강’으로 추정되는데 의미와 쓰임새는 다르다. ‘대게’는 리더가 아랫사람의 일에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바 료타로에 따르면 일본에서 정치가로 성공한 사람은 대게를 잘 했으며 대게를 하지 않은 정치가는 몰락을 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예컨대.. 일본의 덴노(일왕)은 전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데게데게의 법칙에 따르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하기 때문이다. 히로히또는 실제로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을 수 있다.

레이건 시절.. 미국과 일본의 무역마찰 때 미국에서 항의를 하면 정부는 기업을 핑계로 대고 기업은 정부 핑계를 댄다. 일본의 극우언론은 교묘하게 스파이 역할을 해준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런 것이 일본이 잘나갈 때는 물론 좋은데.. 잘못될 때는 최악의 결과를 내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이유가 있다.

무엇인가?(여기서 부터는 시바 료타로가 아닌 필자의 의견.) 어느 나라든, 또 어떤 사회이든 나름대로 위기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이라면 한국적 합리주의가 있다. 과거에는 유교사상에 기반한 봉건질서가 있었고 지금은 민주주의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어떻게든 싸워서라도 단일한 질서를 만들고 만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역사 이래 전제군주가 있었던 적이 없다. 쇼군도 기껏 에도를 통치했을 뿐이다. 지방은 제멋대로였다.

예컨대.. 일본에는 존댓말이 전혀 없는 지역도 있고, 또 반말이 없어서 모두가 존댓말을 쓰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중앙집권적 의미에서의 국가통합이 안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일본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거기에 일본 특유의 역동성을 담보하는 다양성이 숨어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이렇게 제멋대로 다양해서는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적 합리주의에 따르면.. 먼저 국가의 공론이 정해지고 리더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조선시대에는 그 중심에 전제군주가 있었고 지금은 민주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 그들에게는 전제군주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다. 봉건군주는 있었지만 에도를 통치할 뿐이고, 지방은 다이묘들에 의해 제멋대로 따로 놀았다.

일본방식은 무엇인가? 이념을 초월한 극도의 실용주의 시스템이다. 그 배경에는 와카슈가 자리하고 있다. 위기가 닥치면 전제군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딕타토르(독재자)를 선출하는 절차로 들어간다.

독재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론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때 위기를 과장하여 떠들고 다니는 집단이 출현한다. 지금 일본이 별것 아닌 북한의 핵 위협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일본은 서구의 침략을 의도적으로 과장한 적이 있다.(귀축미영이라 해서 미영이 일본을 말살하려든다고 과장하는가 하면,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뿌렸다고 헛소문을 낸다든가 등등.)

한국이 전제군주를 중심으로 사대부들이 공론을 일으켜 침착하게 위기에 대응한다면.. 일본은 와카슈 집단을 중심으로 불안한 여론을 일으켜 위기대응반을 선출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급조된 위기 대응반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참모본부였다. 그걸로 일본을 말아먹었음은 물론이다.

● 한국.. 위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상설하고 있다. 유언비어 등을 통제하고 되도록 사회를 안정시키려 한다.

● 일본.. 위기대응 시스템이 없다. 위기가 닥치면 와카슈 집단을 중심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려 작은 위기를 몇 십배로 증폭시킨다. 이들에 의해 문득 사회질서가 바뀌는가 하면(대정봉환) 갑자기 전시체제(태평양전쟁)로 들어가기도 한다.

일본식 위기관리의 문제

일본인들은 대게대게의 법칙에 의하여 무슨 일이든 대강대강(우리말의 대강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질서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위기 때는 작은 위기를 부풀려 과장하는 집단이 출현하여,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그래야만 질서가 잡히니까.)

문제는 그 집단이 와카슈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와카슈는 말하자면 우리나라 군부의 ‘하나회’와 비슷하다. 일종의 사조직이다. 와카슈는 마을에도 있고 회사에도 있다. 시바 료타로에 따르면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은 이유는 군부 안에 와카슈 집단이 출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이 무리하게 중일전쟁을 촉발한 예라든가 혹은 노몬한 사변을 일으켜 러시아에 대책없이 줘터진 일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군부 내의 와카슈 집단이 폭주한 것인데..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일이 있어왔던 것이다.

예컨대.. 회사에서도 와카슈 집단이 있어서 그 동아리에 들면 갑자기 서열이 붕괴해서 한 가족처럼 되어버린다. 사장이 부하직원을 집안 식구 정도로 보고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부하직원은 사장을 ‘형님’ 정도로 보고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부하가 사장님의 볼을 잡아당기고 장난을 쳐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반면 와카슈에 들지 못하면 이지메를 당하게 된다.

일본인들이 단결하는 방식

흔히 말하기를 일본인들은 찰흙처럼 단결이 잘되고 한국은 모래알처럼 단결이 안 된다고 한다. 동의할 수 없다. 단지 뭉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2002년 월드컵을 보라! 한국인들도 단결할 때는 일본인 못지 않다.)

일본인의 단결에는 와카슈의 법칙과 대게대게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일본은 대게대게의 법칙 때문에 질서가 없어서.. 위기 때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다. 그들은 와카슈를 중심으로 위기를 부풀린다. 그래서 일본인은 겁이 많다.

와카슈의 법칙은 특정 그룹 안에서 사조직 비슷한 것이 생겨나서 위계서열도 없이 모두가 한 가족처럼 되어서.. 한덩어리로 끈끈하게 뭉쳐서 제멋대로 폭주하는 것이다. 와카슈의 소행일 경우 문책이 따르지 않는다. 다들 위기라고 생각하므로 그러한 폭주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대게대게의 법칙에 따라 일본에서는 리더가 통치하지 않고 신(神)처럼 군림하려 든다. 리더는 일종의 제사장과 같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종교적 상징으로 존재하며 구체적인 통치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시바 료타로의 표현을 빌면.. 일본의 전성기는 50년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일본의 급진에는 와카슈가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끈끈한 동지애와 단결력 그리고 무책임으로 무장한 와카슈의 폭주는 한 세대로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와카슈 집단은 전두환의 하나회와 비슷하다. 역동적으로 대응하지만 합리주의에 기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달아올랐다가 내부 모순으로 한꺼번에 자멸해 버린다. 또 다른 위기를 만나 또 다른 와카슈 집단이 등장할 때 까지 시스템은 작동을 정지한다. 그러므로 일본식의 흥행은 50년을 가지 못한다.

와카슈는 원래 소방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불이 나면 ‘부랴부랴’ 하고 동네방네 외치고 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위기 때 위험을 과장하면서 갑자기 강해진다. 그러나 위기가 소멸하면 다시 나약한 개인으로 돌아가 버린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결론적으로 명치 이후 일본의 경제적 급성장과 전쟁의 폭주를 만들어낸 배경이 되는 와카슈-대게대게 시스템은 불안정하나 일회용으로 써먹을 수 있는 위험한 시스템이라는 거다.

지진이 많은 만큼 위험도 많았던 일본 특유의 위기관리 시스템이다.

그들은 위기에 민감하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와카슈들이 위험을 부풀려서 소동을 벌이면 사회 전체가 그 불온한 흐름에 넘어가고 만다. 일시적으로 집중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반드시 폭주하는 자가 있고 그 폭주는 대게대게의 원칙에 따라 무책임하게 방치되고 만다.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의 망언에는 본래 소방대 조직으로 불 끄러 다녔던 와카슈 집단의 ‘부랴부랴’ 하는 과장법과 선동이 작용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지진이 많은 나라여서.. 누군가 한 사람쯤 극우파의 역할을 맡아서 위험을 과장하고 다녀야 도리어 안전하다고 믿는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말하면 도리어 불안해지는 것이 일본인들이다.)

고이즈미의 무책임한 언동의 배경에는 대게대게의 법칙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이 사는 법이며 동시에 죽는 법이기도 하다. 리더는 종교적 상징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시마네 현의 독도유린 소동은 모른 척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시하라는 지금 와카슈의 전통에 따라 또 다른 위기를 조작해 내려고 한다. 그 방법으로만이 대게대게로 하여 느슨해진 일본을 다시 한 번 바짝 조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러한 일본을 우리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피곤하고도 답답한 노릇이다.

시바 료타로의 한계가 일본의 한계

시바 료타로 역시 위험인물이다. 그는 한국의 합리주의를 경멸하기도 하고 두려워 하기도 한다. 그는 시큰둥하고 냉소적인 인물이다. 무질서하고 산만한 채로 적당히 굴러가는 게 좋다는 식이다.

그는 일본 특유의 선종불교 영향을 받은 즉 적당히 세련된(와카슈에 따른 일본인 특유의 광기가 없다는 점에서) 측면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적당히 수구적인(데게대게의 법칙에 따라 이시하라가 망언한들 어떠리 하는 식의 은근한 방조) 인간이다.

지금 일본의 지식인들은 ‘대게대게’ 하고 있고 서민들은 ‘와카슈’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위기에 강했지만 지금 일본은 위기가 아니므로 강해질 수 없다.

일본인들이 와카슈야도(와카슈의 회관)에 모여서 으샤으샤 해야만 힘을 받는 나약한 군중들이라면 한국인들은 유교 합리주의에 의해 단련된 강한 개인들이다.

한국축구 대 일본축구

개인기에 조직력을 더하면 금상첨화, 조직력에 개인기를 더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조직을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다. 둘다 필요하다면 무엇을 먼저 하고 어느 것을 나중 할 것인가? 한국축구는 박,박,차,안,이의 개인기에 조직력을 더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조직력 위주로 꾸려온 일본축구에 개인기를 더하기는 이미 늦었다.

한국은 강한 개인에 민주주의의 팀워크를 더하기만 하면 된다. 일본은 팀워크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지금이 최상이고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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