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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969 vote 0 2005.05.30 (22:23:31)

진중권이 유시민을 안타까워 한 건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십년 전에도 안타까워했고 십년 후에도 안타까워 할 것이다. 대안부재 세력의 대안세력에 대한 안타까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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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유시민 공격은 문제가 있다. 유시민을 치기 위해서 김근태를 끌어들이는 수법은 악랄한 데가 있다. 대통령의 국정장악력 약화를 우려하는 우리로서는 방어하기가 곤란하다. 그 약점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점에 정동영, 김근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의 30년 계획을 위해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강준만의 수법은 ‘A는 A 아닌 것이 아니다’는 동일률의 논법을 빌어 착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은 권모술수에 의존하는 마키아벨리스트이므로 진정성 있는 정치가가 아니다 식의 판단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호치민의 경우를 보자. 그는 뛰어난 전략가요 승부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별칭은 ‘호 아저씨’였다. 그는 한편으로 수행자이기도 했다. 종교의 사제와도 같은 금욕적인 생활을 한 것이다.

호치민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수도하는 현자의 얼굴을 가진 한편으로 냉정한 승부사의 얼굴을 가졌는가 하면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도 가졌다. 누구도 한 마디로 단정하여 호 아저씨를 정의할 수 없다.

호치민! 그는 거대한 산과 같다. 승부가 필요할 때는 잔인했고 물러서야 할 때는 부드러웠다. 많은 사람들은 호 아저씨가 가진 여러 개의 얼굴들 중 하나나 둘 만을 보았을 뿐이다.

무엇인가? 호치민은 유교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유교주의가 말하는 역할모델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역할모델이 있지만 호치민의 경우는 유교주의 가치로만 해석될 수 있는 독특한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샤르트르가 말한 체 게바라의 완전성은 예수를 닮아있다. 그는 가시관을 쓴 예수처럼 볼리비아의 정글에서 죽어갔다. 무엇인가? 별수 없는 기독교도들인 서구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역할모델은 결국 예수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동양의 경우는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지만 공자는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다. 석가는 장수했고 노자는 더 오래 살았다. 호치민의 역할 모델은 서구의 그것 곧 체 게바라 모델과 다르고 예수모델과 다르고 소크라테스모델과도 다른 것이다. 호치민은 공자와 가깝고 석가와도 가깝고 노자와도 가깝다 할 것이다.

유교합리주의의 숨은 파워를 알아채야 한다. 노무현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김이나 유는 이쪽 방향으로 상당히 훈련된 사람이다. 노무현이나 유시민이 또 김근태가 예수나 소크라테스 혹은 체 게바라처럼 단 하나의 얼굴만을 가진 사람이라 믿는다면 순진한 사람이다.

유-김 연대는 확실히 강이 예측 못한 방향으로의 전개이다. 강준만에게 있어 이러한 예견의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예측능력을 잃은 논객은 논객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강준만은 조만간 자신의 안목없음을 한탄해야 한다. 탄핵과 총선을 전후로 자아비판 한 적이 있지만 그 일을 한 번 더 해야하는 날이 다가온다.

무엇인가? 유가 먼저 일을 벌였는데 김이 유를 쫓아가는 형태로 뒤늦게 유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본다면 어리석은 경우다. 그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거꾸로 유가 김의 의중을 탐지한 상태에서 김쪽에 사전정지작업을 해놓고 뒤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진 후에 일을 벌인 것이다.

유는 치밀한 사람이다. 그의 행보는 계산된 것이다. 덤벙대는 인물인 척 할 뿐 실제로는 용의주도 한 사람이다. 그는 오른쪽에서 100을 탐하는 척 적을 기만해 놓고 실제로는 왼쪽에서 목표한 50을 달성하는 노하우를 터득한 사람이다.

이런 정도의 소식은 풍문으로 들어서라도 대략 알게 되는데 강준만이 이렇게도 모른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가 철저히 텍스트에만 의존하는 현실정치에서 고립된 논객이라는 의미도 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중 누구 말이 맞는지 맞춰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강준만이 이 글을 이해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예견을 해놓고 나중 확인해 보는 필자의 게임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개헌변수가 있는 차기 대선은 과거의 경우와 판이하게 다르게 진행된다. 지금 한나라당이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개헌변수를 고려하여 포괄적인 구도로 보면 오히려 개혁진영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특히 이해찬 변수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으로 될 것이라는 이해찬의 최근 발언이 가진 속뜻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단순한 인물평이 아니라 차기를 의식한 판짜기의 의도가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무엇인가? 개헌변수에 한나라당을 엮어 넣는 것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그림들 중에서는 가장 큰 그림이다. 모든 상황은 여기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정이든 김이든 판을 흔들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

2년이면 긴 시간이다. 정과 김이 당에 복귀한 후 무엇을 가지고 지리멸렬한 우리당을 일거에 장악하고 사태를 수습하여 대세반전을 일구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정답이 숨어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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