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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710 vote 0 2005.05.30 (22:22:04)

우리가 토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대안은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집단이 공유할 수 있는 모델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모델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형태의 새로운 질서에 관한 모델이어야 한다.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는데 성공한 모델은 전파되어야 한다.

백가쟁명으로 각자 떠드는 수준에서 벗어나 어떻게 우리 안에서 다수가 동의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질서를 형성할 수 있을까의 차원에서 토론해야 한다.

서프라이즈의 존재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는 변화되었다. 그러한 변화로 인하여 조중동이 주장하는 낡은 질서는 깨졌다. 조중동이 강요하는 낡은 질서 안에서 우리의 무궁한 잠재력은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성공하여 보이므로써, 우리가 찾아낸 바 우리의 숨은 잠재력을 꽃피워낼 수 있는 신질서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여보여야 한다.

성공모델은 무엇인가?
모델로 말하면 미국모델과 일본모델을 추종하는 집단이 조중동의 신탁통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다. 서구모델을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민노당이다. 필자의 견해는 우리 안에서 새로운 본보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역사가 결정하게 되어 있다.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된 변화는 권위주의 질서에서 민주질서로의 이행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서프라이즈에서 토론하는 내용은 이 문명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문명이 질서를 만들어낸다. 문명의 진보가 낡은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요청한다.

그 질서는 19세기의 봉건질서일 수도 있고 20세기의 근대주의 질서일 수도 있고 21세기 신문명의 또다른 질서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신질서를 찾아내느냐 하는 것은 이 문명이 어떤 성격을 가지느냐 하는 본질에 달려있다. 문명의 성격은 산업화의 진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또 기독교문명이냐 유교문명이냐와도 상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으려는 신질서는 산업화의 이행단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과 그러한 산업화의 단계를 기독교 혹은 유교문명과 어떻게 접합시킬 것이냐에 달려있다.

기성질서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인들은 명치시대를 거치면서 스스로 낡은 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일본에서 수입된 관료주의 성격의 권위주의 질서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적어도 민주화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회사와 양복을 입지 않고 넥타이도 매지 않는 회사로 구분되고 있다. 완전히 다르다. 벤처업계 뿐만이 아니다. 언론계나 방송계, 문화계 쪽은 예전부터 그래왔다.

낡은 질서에서는 중간관리자 집단이 중요했다. 그 시대의 교육목표는 우수한 관료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관료들은 학연, 혈연, 지연의 형태로 인맥을 갖추고 있으면서 접대의 노하우 위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회의 발전이 주로 외부에서 수입되어 들어오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힘들여서 기술을 개발하느니 눈치껏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곤 했다.

그러므로 인맥이 필요하고 접대문화가 필요하다. 또 이렇게 받아들여진 기술을 빠르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중간관리자 집단이 필요했다.

학문도 그렇고 경제분야도 마찬가지다. 뭐든 좋은건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이다. 그것을 들여오는 주체는 결국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잡기 위해서는 연줄이 필요하고 접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그런 일은 점차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 좋은 것이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고 있다. 인맥도 접대도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다 그러한 것은 아니고 벤처회사들에서 특히 그렇다.

과부장제도가 철폐되고 팀제가 보편적으로 정착되면서 중간관리층이 무의미해졌다. 보스가 중간관리층을 거치지 않고 주요한 팀장 및 팀원들과 직접 소통하게 되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두드러진 배경은 학력의 평준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최근 십수년 사이에 급격하게 진행된 것이다. 회사가 과부장 체제에서 팀제로 개편되는 이유는 보스와 중간관리집단 그리고 신입사원 간에 격차가 존재하지 않으며 중간관리자가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인맥의 고리 및 접대의 노하우가 불필요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빠른 정보의 소통 현상 때문이다. 이 점을 축구시합에 비유해 보자.

중국축구와 한국축구는 무엇이 다른가? 프로와 아마는 또 무엇이 다른가? 히딩크와 그 이전의 국대는 무엇이 다른가?

흔히 말하기로 큰 경기에서는 고참들이 해결사로 나서줘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 말은 결국 선수들 간에 실력이 고르지 않다는 말이다.

고교 아마추어 팀이라면 특정한 선수 한 사람이 그 팀의 승수 전부를 책임지는 일이 흔하다. 혼자서 승수를 모조리 챙기고 타점도 혼자서 올리는 경우가 있다.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몸집 부터가 차이가 난다. 어떤 선수는 덩치가 최희섭 같고 어떤 선수는 아직 앳된 어린이 같다. 같은 팀 선수인데 체격에서 실력까지 너무나 차이가 크다.

이런 경우 중간관리자 집단이 적절하게 허리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팀이 붕괴된다. 즉 감독과 코치의 조율이 중요한 것이다. 선배의 자상한 지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라면 어떨까?

선수들 간에 실력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인간성이라든가, 선후배를 알아본다든가, 기자들의 취재에 성실히 답해준다든가 하는 부분이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실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대별하여 보기로 하면

● 봉건모델.. 사적인 충성과 은혜, 의리로 연결되어 있다. 천하의 개념, 공(公)의 개념, 시민사회의 개념, 공동체 개념, 대의와 명분의 개념이 없거나 약하다. 생산수단을 특정인이 독점하고 있다. 소규모 가족회사에서 잘 나타나는 특징이 존재하고 있다. 박승대가 실패한 모델이다.

● 근대모델.. 공(公)의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대의 명분 혹은 이념이 등장한다. 공동체의 동기부여가 존재한다. 어떤 뛰어난 한 사람이 단절된 두 세계 사이에 통로를 개설하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권위주의가 등장하고 중간간부와 관료의 역할이 중요하다.

● 혁신모델..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이 중요하다. 공동체의 성원 사이에 수준차가 크지 않다. 가치가 외부에서 도입되지 않고 내부에서 창조된다. 팀원들 사이의 팀워크가 중요하다. 동시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왜 우리는 근데모델을 폐기하고 혁신모델을 준비해야 하는가? 사회가 그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외국에서 수입될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외국에서 신통한 것을 들여와서 재미보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옛날에 영화감독도 했던 이규형이라는 자가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에서 베끼기만 하면 한국에서 대박나는 아이템 100가지 어쩌구 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요즘은 그 반대로 되어가고 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신문의 칼럼들은 주로 독일의 수준높은(?) 질서의식을 배우자는 내용, 홍세화의 프랑스를 배우자는 내용, 또는 친미파들의 미국을 배우자는 내용이 90프로 이상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식으로 재미보던 시대가 지났다. 박노자의 기묘한 사대주의 놀음도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

무엇인가? 20세기는 격변의 시대였다. 너무 많은 변화가 짧은 시기에 집중되다 보니 맨 처음 물꼬를 트는 역할이 중요했다. 앞서가는 사람이 도시계획을 잘 해놓으면 뒤에 가는 사람은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앞서가는 한 두명의 선각자의 혜택을 보았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일은 드물어졌다. 물론 지금도 중국이라면 한국의 앞선 것을 들여가기만 하면 대박이 난다. 티코를 베껴서 짝퉁으로 쿠쿠를 만들면 된다. 그런 후진한 사회일수록 감독의 카리스마가 중요하고 코치의 지도와 자상한 선배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인가? 기본적으로 자원 자체가 한정되고 불량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그런거 없다. 양키즈라면 자원 자체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코치고 선배고 필요없다. 오직 실력으로 질문하면 연봉으로 응답한다. 선수가 인간성이 좋아야 되고 선후배 깎듯이 모셔야 하고 기자들의 인터뷰에 성실히 대답해야 하고 하는 따위는 코트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에게는 안통하는 이야기다.

왜 혁신모델이 필요한가?
퍼즐을 풀다보면 어떤 하나의 문제를 풀었을 때 나머지 문제들이 일제히 한꺼번에 풀려버리는 일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동시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최근 인터넷 분야에서 혁신은 대개 이런 형태로 일어난다. 자원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의 아햏햏 시리즈도 이 원리와 관련이 있다. 이 경우 우수한 자원을 대량공급하는 충분한 크기의 모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즉 디시인사이드에서 되는 쌍방향의 붐업이 타 군소사이트에서 안되는 이유는 모집단의 숫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패러디로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식의 붐업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본래 열명 쯤 있었는데 그 열명이 모두 딴지일보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류 패러디사이트는 성공할 수 없었다. 딴지는 되는데 짝퉁 딴지는 죽어보자고 안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디시인사이드에서 되는 일이 다른 사이트에서도 통할 걸로 믿는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 미디어가 물량을 투입해도 디시인사이드를 흉내낼 수 없다. 다음이 싸이월드 아류를 기획했다 실패한 일이 전형적인 예다. 마찬가지로 서프라이즈에서 되는 일이 다른 사이트에서도 된다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무엇인가? 딴지일보의 성공사례를 근대모델의 방식으로 우수한 관료와 인맥있는 중간관리자 집단이 표절과 모방과 학습의 방법으로 다른 사이트에서 재현할 수 있을까? 천만에. 그게 된다면 다음 플래닛이 성공했어야만 한다.

서프라이즈의 성공사례를 한나라당이 우수한 관료와 중간관리자 집단을 투입하여 표절과 모방과 학습과 강제의 방법으로 다른 사이트에서 재현할 수 있을까? 천만에. 그건 원래 안되는 거다.

구조적으로 안되게 되어 있다. 이런 점이 20세기의 근대모델과 21세기의 혁신모델이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다. 모방과 표절과 짝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혁신의 패러다임이 아래에서 위로 하나씩 쌓아가는 피라밋형이 아니라 동시에 화음을 내는 퍼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문화계에서 관찰된다. 동시성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피라밋구조에서는 보스의 명령이 중간관리자 집단을 거쳐 아래에 까지 하달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퍼즐형 패러다임에서는 동시에 공명(共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예컨대 디시인사이드의 아햏햏 시리즈나 싱하형 시리즈나 을룡타 시리즈는 일제히 붐업에 성공해야지 시간을 두고 그걸 하나씩 만들어간다는 것은 불능이다.

과거의 모델은 예컨대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가 먼저 가서 도로를 닦아두면 뒤에 가는 정주영이나 김우중이 그 도로를 씽씽 달리면서 돈을 번다는 식이다. 여기서 박정희가 고속도로를 닦는 일과 정주영이 그 도로 위를 달리는 현대차를 파는 일은 충분한 시간간격을 두고 진행된다.

그러나 혁신모델에서는 정보의 소통이 광속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차가 걸리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지 않으면 붐업에 실패하고 만다. 을룡타나 싱하형이 전파되는 데는 일주일이 멀다. 빠르면 하루 길면 사흘이면 충분하다. 좋은 아이템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는 즉 실패하게 된다.

필자가 이심전심에 의한 쌍방향 소통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동시성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면 붐업이 안된다. 2002년 월드컵의 길거리 응원,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시위, 그리고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다 이 원리가 적용된 것으로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1세기에 주요한 혁신은 항상 이러한 패턴으로 일어난다. 이는 문명 그 자체의 성격이다. 문명이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5인 이하의 사업장이나 구멍가게에서는 여전히 봉건모델이 적용될 수 있다. 5인 이하라면 박승대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서프나 디시인사이드나 웃대는 규모가 크다.

촛불시위도 단위가 크고 길거리 응원도 단위가 크다. 이런 큰 단위에서의 주요한 혁신은 반드시 이런 형태로만 일어난다. 그 문명의 성격 자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문명의 성격에 맞는 패러다임의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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