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년 전부터 알고지내던 후배녀석이 하나 있는데, 과거 나와 함께 연주회를 만들었던 연주자 중에 하나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지금도 종종 그 음악을 들을 때가 있다. 10년 전의 곡과 같은 연주를 하는데도, 음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전보다 테크닉이 늘은게 아니라 그 음 하나하나에 시간이 묻어나는 것이다.
내가 스무살 때 깨달은 사실은 하수는 "어떻게"를 생각하고, 중수는 "무엇을" 을 생각하고, 고수는 "왜?" 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 는 무엇인가? 바로 외부의 에너지고, 영감이다. 영감이 오면 "어떻게" 따위는 문제가 되질 않는다. 음표 하나하나 모으고 모아서 노래 한 곡이 되는 게 아니라, 영감이 오면 10분 안에 곡 전체가 완성되는 거다. 김태원이 호주여행 가니까 순식간에 노래 하나 뚝딱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임재범의 목소리는 허스키하다. 할퀴고 째지는 목소리가 곳곳에 있다. 그는 마치 발톱과 갈기가 빠진 백호와 같다. 그런데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위대한 탄생에 나와서 가수 지망생이 임재범 목소리 내면 당장에 "고향 앞으로". 백청강이 위대한 탄생 1등을 한 이유는 임재범과 다르지 않다. 노래가 아니라 노래 이전에 뭔가 있다.
무엇인가? 같은 노래, 같은 가사, 노래는 1 이다. 그런데 노래 이전에 2 가 있다. 자존심 드높은 락커 임재범과 딸과 아내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임재범. 하나의 인간에 모순된 두 개의 상황.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하나의 목소리. 사람들은 하나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이전에 두 개의 에너지를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이다. 거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루드비히 반 베토베의 음악도 그런 느낌이다. 천재적인 음악가로서, 또 아버지의 폭력에 헝클어져버린 인생으로서...
스티브 잡스 안에는 서구 문명과 동양 사상이 동시에 자리잡았고, 고흐 역시 신학과 미술이 있었다. 물론 모순된 상황이 있다하여 모두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순된 상황에서 발버둥 치는 가운데 최적의 문제해결 공식이 생겨난다. 밸런스가 있다.
임재범이 MBC 수요예술무대에 나왔을 때, 그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아내는 갑상선 암이 간으로 전이되었고, 딸은 자라나고, 돈은 없고... 벼랑끝에 몰렸을 때, 그는 TV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돈이 없어서... 그런데 왠걸. 관객 앞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노래를 부른다. 돈 없어 무대에 섰는데 비굴하지가 않다. 락커의 자존심과 가난한 아빠가 묘하게 뒤섞여있다. 삶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한 밸런스.
그가 고수다.
두 개냐 세 개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고, 중요한 것은 모순된 상황에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최적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구조라는 것 이지요.
하수들은 80을 가진 주제에 100을 넘어 120을 표현하려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요소들을 전부 한 줄에 꿰어야 합니다. 이때 꿰어낼 단단한 꼬챙이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경직됩니다. 경직되면 고저장단의 파격적 변신이 불안정해집니다. 기교를 부릴수록 위태롭다는 거죠.
고수들은 100을 가졌지만 80만 쓰고 20은 남겨둡니다. 유드리가 있다는 거죠. 이때 어떻게 해야 하죠? 나머지 부족분은 외부의 것을 씁니다. 즉 물에 뛰운다는 거죠. 물에 뛰워 물결따라 흔들리게 놔둡니다. 이때 고저장단의 파격적 변신이 매우 여유있게 소화되는 거지요. 무대에서 외부의 것은 돌발상황, 관객의 호응, 분위기, 개인의 복받치는 감정, 이런 거죠. 그러한 외부의 교란요인에 올라타는 거지요.
외부의 교란요인을 최대한 차단하려 하면 하수고 그걸 역이용하면 고수라는 거지요.
양모님의 소중한 개인의 음악적 취향의 영역에 태클을 거는 건 절대 아니고..
상업방송이 만들어낸 인간극장식 음악 혹은 가수의 인기몰이 현상, 이거 마냥 괜찮은가요? 임재범은 앨범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거고, 위대한 탄생의 백청강은 자신의 노래로 자신을 지지해준 대중 앞에서 증명해야 할 거요. 왜? 인간극장도 공짜는 없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돌아서는 것도 대중이니까. 그 인간극장의 음악이 가수적 역량이 가짜여서가 아니라 혹은 관객의 감동이 가짜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계속 가야만 하는 길이니까. 나가수 박정현은 정말 큰 일이오. 자존심 강한 가수들, 자기가 예능가수라는 명칭 아주 싫어할텐데.
나가수나 위대한 탄생이 과정에서 나타난 외적인 사회적 현상이 의미가 크지만 주인이 무대 치워버리면 단발성으로 그친다는 것. 그리고 주인들은 지능이 더 향상되겠죠.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법이나 콘트롤하는 법을 더 교묘하게 말이죠.
세시봉 --조용필 -- 서태지 --원더걸스 --?
마디마디 시작하며 주도한 가수들인데요. 서태지 이후 그 이전과는 좀 다른 특징이 있어 보여요. 주도하는 장르와 함께 밑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발전하고 영역을 구축해왔다는 거 같아요.세대적 음악의 분화가 더 강해지기도 했고. .색깔이 강해지고 대신에 전통적 가창력의 중요성은 떨어지고 ..물론 조금만 관심 갖고 찾아보면 많이 있어요.
가창력과 인간극장식 나가수가 서태지 이후 이룩해 온 대중음악계의 자산에 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입니다.
음악이 계속 발전한다, 발전해야 한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사회가 계속 발전하는 것이며 음악이든 영화든 문학이든 그 사회상을 반영할 뿐입니다.
미국의 흑인음악은 흑인사회가 만든거지 그냥 미국음악이 발전한건 아닙니다.
미국음악? 원래 유럽에서 온 건데 그냥 망했어요. 흑인사회가 살린거죠.
영화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소위 전문가라 자칭하는 자들과는 기본적으로 대화가 안 되는게
영화는, 문학은, 음악은, 회화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아놓고 있거든요.
근데 그게 개소리입니다.
발전하긴 개뿔.
인상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은 옛날식 화가들은 다 망했다는 거에요.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남의 초상화나 그리던 옛날식 직업 화가들은 완전 망했다는 거.
근데 그걸 인정을 안 해요.
중요한건 사회고 답은 항상 사회에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 발전, 역동성, 전파와 교류, 희망 이런 거죠.
음악 안에서 답을 찾으려 들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건 환상이니까.
서태지의 충격, 임재범의 귀환.. 사실은 사회의 변화를 예고하는 지표입니다.
근데 꼴통들은 그런거 절대 인정 안 하지요.
전문가 행세하며 음악계 안의 어떤 내부적인 논리(쓸데없는)를 들이대며 서태지 죽이기에 바빴지요.
홍콩영화가 한국 극장가를 휩쓸었을 때 그 어떤 영화평론가도 영화평을 안 했어요.
마카로니 웨스턴은 아카데미에서 철저하게 외면되었고.
그들은 당연히 영화 안의 내밀하게 작동하는 어떤 논리.. 그게 싸구려 홍콩영화에 없다고
그게 싸구려 저예산 마카로니 웨스턴에 없다고 .. 이게 영화냐?
근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내밀한 논리가 켸켸묵은 영감소리가 되었고
젊은 평론가들이 홍콩영화를 평론하고 마카로니 웨스턴을 재평가 한 겁니다.
중요한건 사회에요.
영화인들이, 음악인들이, 미술가들이, 문학인들이
내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논리라는 것은 말짱 개소리입니다.
중요한건 우리가 임재범현상을 통해서 사회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이 없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현상입니다.
판단기준 자체가 바뀌는 거에요.
인상주의 이전의 도제시스템에는 수십명이 달라붙어서 대작을 그려야 그림이었는데
고흐라는 촌넘이 나타나서 혼자 긁적거리는 겁니다.
그림도 쪼매한 것을 수천점이나 다작을 해서리 고흐엄마가 밭 울타리로 만들어서 썩어갔지요.
그게 그림이냐? 장난하냐?
중요한건 집단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만화도 박봉성 화실 수십명이 일하는 만화공장에서, 웹툰처럼 혼자 그리는 식으로 바뀌고
물론 웹툰도 공장웹툰이 나올거지만.
대중음악계 내부의 어떤 돌아가는 시스템보다
보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는 기준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림은 그냥 파는게 아니고 액자에 끼워서 파는 거에요.
임재범이나 백청강의 인간극장류 개인사는 그 액자가 되는 겁니다.
개인의 시대에는 액자의 비중이 커지는 겁니다.
SM공장은 공장대로 돌아가겠지만.
김대중대통령도 그 나이뻘 영감쟁이들이 싫어하고
김어준 같은 젊은이들이 지지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고
임재범현상도 비슷하고
예로 든 홍콩영화나 서부영화도 젊은 세대들이 회고하는 식으로 좋아하는 건데
사실 그 당시에는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게 영화냐 하는 분위기..
왜 흘러간 후에 뜨는가 하면 시대가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시대가 만드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가 임재범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임재범의 전성기에는 씹혔습니다.
시대를 보지 못하면 징기스칸은 그냥 살인자일 뿐입니다.
시대를 봐야 징기스칸이 르네상스를 촉발시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요즘 징기스칸이 뜨느냐?
딴지일보와 허영만 때문이 아니고
중국이 다시 일어나고 조만간 중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될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임재범은 앨범으로 증명할 필요없고
대한민국은 이미 임재범으로부터 얻을걸 얻었습니다.
그것은 신호탄과 같은 겁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그 자체로 신뢰를 창출하는 것이며
자칭 전문가들이 점수매기는건 걍 무시입니다.
2011년 초여름에 대한민국은 이명박의 가짜염병을 응징할
진정성의 상징성을 원했고 임재범은 그 인생을 통하여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한 겁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단순 음악기술자보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진짜배기를 필요로 합니다.
진짜는 리얼.. 리얼은 사회상을 반영하는 겁니다.
임재범현상은 분명히 가짜민국 이명박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네티즌들의 표현은 말하자면 옥주현의 가짜나라와 임재범의 진짜나라가 대결하는 구도죠.
기교위주의 노래실력은 중요한게 아닙니다.
옥주현이 김세황에게 전화걸어 '오빠' 하는걸 네티즌은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이명박식 가짜가 주변조건을 교활하게 이용했다고 보니까.
공정사회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고.
이건 음악 외적인 에피소드지만 이게 중요한 시대가 된 거죠.
인터넷 쌍방향 참여의 시대에는
참여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쪽이 승리하게 되고
임재범과 백청강의 인간극장은 그 고리를 갖고 있지요.
옥주현은 안티참여의 고리를 가지고 있고.
내부적인 노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김성근 감독을 좋지 않게 보는 것도 이런 것인데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인간의 삶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돌집에 사는데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나요?
시멘트, 목조, 벽돌, 유리, 강철빔.. 이런건 근대의 삶이며
삶이 바뀌자 매너리즘이 극복된 겁니다.
외부에서의 질의 신규투입 없이 내부에서 자가발전으로 절대 발전 안 합니다.
미국음악이 발전한건 자가발전이 아니고 걍 주변부 흑인사회가 주류로 들어온 겁니다.
한국사회가 발전한건 봉건조선이 자가발전한거 아니고
그냥 서구문명이 들어온 겁니다.
서구문명도 사실은 징기스칸 충격에 놀란 아랍문명이 들어간 거지요.
르네상스는 피렌체인이 만든게 아니고 아랍에서 쑥 들어온 거에요.
그걸 자기것인양 사기치고 있는 거지.
내부에서 자가발전하여 어떻게 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주목해야 하며 시대를 해석해야 합니다.
시대가 임재범을 요구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객석에 머물렀던 관객이
인터넷을 무기로 무대에 뛰어들고자 하는 욕망이 발동한 것이며
임재범 백청강 김태원의 인간극장은 그 시대분위기와 운좋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운이 나빴다면 임재범은 여전히 아웃사이더고
백청강은 연변에서 노래방을 주름잡고 있고 김태원도 별 일이 없었겠죠.
주변부에 포지셔닝 하고 있던 임재범이 갑자기 주류로 쑥 들어온 거에요.
임재범 음악이 발전한게 아니고. 박지성도 뜻밖의 패스를 받으면 골을 넣는 거죠.
조기숙 교수의 기사에 보면 미국은 대학에 의대가 없고 전문대학원이 있는데
의사들은 아프리카 가서 봉사하고 와야 좋은 데로 간다는 겁니다.
의사가 병을 알기 전에 사람을 알아야 한다고.
인문정신이죠.
인문정신.. 임재범이 가지고 있고 옥주현이 못 가지고 있는 거죠.
요즘 왜 인문학이 다시 주목을 받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개인도 누구나 자기 인간극장 한편씩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인터넷 시대니까. 개인의 시대니까.
개인이 원하는건 결국 자기 자신의 인간극장이니까.
식당에 가서 짜장을 먹더라도 춘장에 면발을 먹는게 아니라 인생을 먹는 시대가 된 겁니다.
완성된 종은 혼자 매달려야 소리를 냅니다. 누가 옆에서 붙잡고 있으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네티즌 시비는 옥주현은 누가 뒤에서 붙잡고 있더라는 거죠.
그게 사실인지 억울한 누명인지는 차지하고 하고.
김태원 백청강 임재범처럼 시대와의 공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시대, 공진. 아주 지당하신 말씀. 거기엔 누구도 반대 안할 겁니다.
제 발전이란 의미는 장르의 다양화. 청취자도 다분화. 그게 발전이죠. 음악자체내용에서도 발전은 있는 거 같고..제한적인 거지만. 현 시점에서 누군가 "나만 가수다" 하는 거라면 그건 아니라는 거고. 아이돌도 가수다. 10센티의 아메리카노 도 노래다. 하는 거.
걸맞는 액자. 좋으신 말씀. 근데 액자 그거 얼마짜리냐? 너무 호사스럽나 초라하나?
공진, 자연발생적이냐 작위적이냐? 그 에너지는? 방향은? 사람들은 제각기 검증하죠. 근데 임재범(공진)은 제게는 영 시원치 않다는 건데,
방송사는 기업이다. 제 아무리 공영의 탈을 썼다해도. 그 기업의 가장 주품목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쨌든) 떴다. 근데 일단 순서가 안맞다. 대중은 파티가 끝나면 검증하고 싶어한다.
임재범 등장에 맞춰,유명작곡가의 말을 빌어 " 나만 가수다" "왕의 귀환" "상처받은 짐승" "야인" 등등. 기업의 상품 이미지 작업. 사실과 다르다.
상품을 보고 나서,
임을 예전에 아는 이들 " 예전 같지 않네...그래도 저력은 살아있어"
임을 모르던 이들 " 와 뭐 있나봐. 한번 보까? 와~"
대중의 아쉬움만 가득 안긴 채 갑작스런 나가수 하차. 개인 컨서트 시작.
소리없는 엇갈린 반응들. 실망까진 아니어도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 많아.
그건 임의 잘못이 아님. 대중의 자기발견.
대충 시작이 이러한 걸로 저는 봅니다.
옥주현과 임재범이 맞물리는 구석이 분명 있기에 거론이 되는 거 같은데
이점에 대해 보면 좀 생각해봐야 할게 있어 보여요. 네티즌과 일반 대중사이의 간극. 아주 가까울 때도 있고 아주 멀때도 있고 . 인터넷의 옥의 안티 세력에 비해 일반 대중은 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할 듯...말없는 증거들.
임재범 김태원을 백청강하고는 조금 다르게 놓고 싶네요 저는. 현상이 다르다고 봅니다.
시대 공진 액자 인간극장 스토리 뭐 다 단일하게는 동의하는 것들입니다.
나가수에 대해 바라는 건 혹여 누군가 "나만 가수다" 한다면 그건 아니라는 거... 알고 보면 티비에는 없는 음악들이 무진장 많이 잇잖습니까?
그리고, 방송은 기업이다. 라는 거..
개인적으로 상기한 것. ' 인생은 절대 절박해서는 안된다. 절박해지면 노예가 된다. 생명 이외는 절대 절박하지 말자.'
'인터넷 시대에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단순 음악기술자보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진짜배기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K-pop'이 아이돌로 채워져 세계의 '어린애'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가슴아프다.
'K-pop'이란 이름이 그런 이미지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다.
겨우 그런 공장생산품들의 싸구려 이미지가 유럽아그들을 즐겁게 해주었건말건
'made in China' 의 이미지와 도찐개찐 'made in K-pop'
유럽 어린애들이 눈물을 흘리건 말건 그게 무슨 대수라고.
죽어라고 연습한 춤= '도리도리짝짝꿍' 재롱 팔지 말고,
진짜 세계를 감동시킬 문화를 얘기할 수 있어야지. 진짜지.
오히려 SM등 공장들이 나서서 재롱잔치하고 다니는 한류는
진짜 최고의 한국문화가 아님.
어느정도는 재롱잔치가 필요하겠지만
한류열풍? JYP SM 공장시스템 자산?들은 오버하지 말았음한다.
K-pop 이란 말 많이 쓰지 않았음 좋겠다.
앞으로 진짜배기들의 등장과 그 이미지에 방해가 되지 않게.
결과적으로 그건 진짜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없는것.
그냥 '산업생산능력'
'산업생산능력'과 '문화적 자산'은 다름.
한류? 진짜배기 문화가 파급될 때가 진짜 한류본게임시작이고 세계에 받아들여지는 것.
아직 '한류' 아님.
음악 잘 들었습니다.
고수로 가기 위해~ "왜~?" 라는 질문을 자주 던져야 하는것은 알지만..
단지 흉내내기 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부에너지의 개수가 많을 때 정말 잔가지 다 버리고
진짜인 외부에너지가 뭔지 모르겠네요. 2개만 되어도 헷갈리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