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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360 vote 0 2005.04.20 (15:33:51)

일본을 이해하는 두 개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일본 특유의 와(和) 사상과 일본에서 발달한 선종(禪宗)의 문화를 들겠다. 선종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바 있다. 여기서는 와(和) 사상의 배경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와(和)로 칭한다. 일본옷은 와후쿠(和服), 일본음식은 와쇼쿠(和食), 일본과자는 와가시(和菓子), 일본풍은 와후(和風)가 되는 식이다.(와(和)나 왜(倭)나 발음도 비슷^^)

왜 일본은 화(和)가 되었는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반도에서 각축을 벌이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패배자들이 섬으로 도망가서 패자부활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나라이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싸웠듯이 일본에서도 박터지게 싸웠던 것이다. 안전한 일본으로 도망쳐서 이제 한숨을 돌렸다고 생각했더니 또 따라와서 괴롭히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전쟁을 그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대화왜(大和倭)가 성립하면서 화(和)가 일본정신으로 크게 주장되었는데, 그 의미는 일본은 모두 한가족이므로 이제는 싸우지 말고 화해하자는 거다. 그런데 이를 살짝 뒤집으면 ‘화해하지 않겠다는 자는 죽인다’는 뜻도 된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자. 일본인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위아래가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일본드라마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대놓고 반말을 한다. 농구만화 슬램덩크에는 학생이 선생님의 턱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는 장면이 묘사된다.

윗사람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이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은 없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직원이 외부인 앞에서 사장이름을 부를 때 존칭을 붙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왜인가?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일본은 ‘나’라고 한다. 문제는 그 ‘와따시와’가 일본인들에겐 상당히 광범위하다는 데 있다. 나만 나가 아니라 내가족, 내회사, 내이웃, 내나라가 다 와따시노 혹은 와따시와가 된다.

그 와따시와 그룹 안에 들면 위아래 없이 평등한 대접을 하고 와따시와에 포함되지 않으면 이지메를 가한다. 와따시와는 평등한 공동체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엄격한 질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이치는 참으로 미묘한 데가 있어서 일본인들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전여옥의 도작(盜作) ‘일본은 없다’는 ‘일본인은 전여옥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다’가 되어야 한다. 전여옥이 일본인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인의 와따시와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뜻 엄격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너그러운데 그 변화가 참으로 변화무상하여 외부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 만큼 사나운 종족이 없지만 또 일본인 만큼 순종적인 국민도 없다. 2차대전 때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항복 대신에 할복을 택했지만, 항복한 이들은 항복하자마자 일본을 배신하여 미군에 협조하였다.

무엇인가? 일본은 1이 결정하면 99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끝끝내 최선을 찾아내지만 일본은 대충 차선을 취해버린다. 왜? 그래야만 다들 따라오기 때문이다.

모두가 따라와야 하기 때문에 지도부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해버리고, 또 모두가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왜 최선의 방안을 찾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들이 항상 차선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의 분야에서는 특히 일본에서 발달한 선종(禪宗)의 영향 때문에 꼼꼼함과 세심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에 관한 한 일본은 지나치게 실용적이다. 그들은 최선의 결정에 따르는 살벌함 보다는 늘 차선의 결정에 따르는 평화를 구한다.

한국은 최선을 구하고 일본은 차선을 택한다

무엇인가? 일본은 근대 시민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다. 왜 그들은 혁명을 하지 않을까? 1이 결정하면 99가 따라오기 때문에 굳이 혁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혁명은 너무 일찍,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던 것이다.

프랑스만 해도 혁명의 불길은 근 100년 동안이나 불타올랐다. 한국은 동학민중항쟁 이후 3.1만세와 4.19를 거쳐 거의 백년 동안 줄기차게 싸웠다. 일본은? 메이지 이후 두드러진 움직임이 없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이다.

그들은 최선을 모색하기를 두려워 한다. 최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멱살잡이와 난상토론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순박하다. 겁이 많다. 그러니 도리어 야꾸자가 활개를 친다. 극우가 난리를 피우면 그게 먹힌다.

결론은? 시민사회의 성숙한 정도다. 시민사회의 성숙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에서 무려 100년 동안의 투쟁 끝에 얻어졌다. 무수한 피가 흘렀다. 미국에서는 독립혁명이 너무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20세기에 와서 마틴루터 킹의 민권운동으로 재점화 했다. 일본은? 그게 없었다.

왜 일본은 약한가? 한국은 반도다. 반도의 경우 경쟁에서 패배한 쪽이 도망갈 곳이 있다. 한국에서의 경쟁에서 패배한 자는 하나같이 일본으로 튀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각각 한번씩 패배했다. 그들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구려 내부의 왕위계승경쟁에서 밀린 사람들, 아우였던 온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백제의 비류일파, 박석김이 돌아가면서 해먹은 신라의 번잡한 왕위계승 경쟁에서 패배한 무리들이 다투어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일본에서 가야 포함 4국의 패자부활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 도망갈 곳은 없다. 죽을 때 까지 싸우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싸움을 두려워 한다. 한번 싸움이 일어나면 한쪽이 전멸되어야만 싸움이 끝난다.

그러므로 싸움을 말리는 기술이 발달되었다. 일본의 와(和) 사상은 싸움을 말리는 기술이다. 그래서 그들은 웬만해서 싸우지 않는다. 대신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 오늘도 일본 TV에서는 피바람이 난무한다.

반도기질과 섬나라기질

분명히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반도기질과 섬나라기질이 있다. 유럽에서도 유독 섬나라 영국이 혼자 EU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대륙과 등을 돌린 예와 비슷하다. 지정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도에서는 경쟁에서 패배한 쪽이 도망가 숨을 곳이 있기 때문에 악착같이 싸워서 최선을 구한다. 불교의 경우 한국의 선종이 세계에서 제일 엄격하고 유교의 경우 한국의 성리학이 가장 드세다.

또 한국의 재외교포 비율이 가장 많다. 뜻대로 안되면 튄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비유가 이상하지만 양해를^^)

우리의 경우 삼한시대부터 ‘소도’가 있어서 패자가 보호받았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명동성당이 소도의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운동권이 득세하여 정권을 낸 나라는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동경대 야스다 강당에 불을 지르는 등 기세좋게 타올랐던 60년대 일본의 전공투운동이 나중 적군파로 변질되어 몰락한 것과 비교가 된다. 일본은 패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였던 것이다.

한국의 학생혁명인 4·19가 5월의 광주로 6월항쟁으로 타올랐던데 비해 일본의 학생혁명은 시민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이 결정하면 99가 따라가는 문화 때문이다. 너무 일찍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그 반대의 힘도 함께 강해진 것이다.

독일이 사과한 이유는 프랑스와의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EU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어차피 섬나라이기 때문에 대륙에서의 주도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아세아대륙에서의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아세아에 관심이 없다. 유럽을 짝사랑하고 미국을 짝사랑할 뿐이다.

우리가 동북아균형자를 자처하는 이유는 대륙에서 벌어지는 주도권경쟁에서 캐스팅보드의 잇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최근 삼성전자가 잘나가는 이유가 다 무엇인가? 러시아의 기술자들을 빼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어떤가? 관심조차 없다. 또 그들은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다. 쉽게 아세아대륙에 진출하지 못한다. 구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급성장이라는 대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가 지난 수천년간 무수히 많은 외침을 당하며 또 섬나라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부대껴본데 비하여 그들은 외부세계와 부대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반도의 경우 긴장에 강하다. 우리는 스트레스에 강하다. 아슬아슬한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끝끝내 최선을 구하고 만다.

일본은? 그들은 스트레스에 약하다. 그들은 혹시나 자신이 무슨 실수나 저지르지 않았을까 지레 겁을 먹고 미안해 하며 안절부절한다. 약간의 신세라도 지면 난처해 하며 간이라도 빼줄듯이 감사해 한다.

한국은? 그들은 스트레스에 강하다. 강한 정도를 넘어서 뻔뻔스럽기 까지 하다. 자녀들이 전철 안에서 장난을 치고 수선을 피워도 모르는 척 한다. 그 정도로 무신경하다. 그러한 한국인의 단점이 때로는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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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민족주의라 한다. 정확하지 않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한번은 거쳐야 하는 자기재발견의 과정이다. 물론 자기몰입의 경향을 보이는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특히 해외로 뻗어나가서 새로운 정보를 물고와야 할 상층부 지식인의 역할이다. 평범한 대중들 앞에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헛소동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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