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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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Beholder
read 4007 vote 0 2011.06.29 (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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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여 졸문에 매달려 있는 사이 대단한 토론이 진행됐더군요.

제때 한 마디 끼어들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선각자'들 덕분에 오히려 제 의욕이 꺾이는 경우가 되지 않아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워낙 모처럼만의 의욕이라 말이죠. ;

 

wson님은 답글 중에서 "반복해서 얘기하면,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wson님께서 '과학/비과학을 분별하는 생각의 도구'를 이미 갖고 계신 이상,

님의 가치체계 속에 그런 경계선은 분명히 실재할 것입니다.

저 역시 한때 -주제넘게- 스캡틱을 자처했고, 과학/비과학을 분별하는 생각의 틀로서 님과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리한다면 James Lett의 <비판적 사고의 현장지침(a field guide to critical thinking)> 여섯가지 원칙이지요.

굳이 옮겨봅니다.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그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생각해 낼 수 있어야만 한다(it must be possible to conceive of evidence that would prove the claim false).

 

논리성(logic)

어떤 주장의 지지 증거로 제시된 어떤 증명도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어야 한다(any argument offered as evidence in support of any claim must be sound).

 

포괄성(comprehensiveness)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제시된 증거는 망라(網羅)하는 것이어야 한다―즉 이용가능한 모든 증거가 고려되어야만 한다(the evidence offered in support of any claim must be exhaustive―that is all of the available evidence must be considered).

 

정직성(honesty)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제시된 증거는 자기 기만없이 평가되어야만 한다(the evidence offered in support of any claim must be evaluated without self-deception).

 

반복가능성(replicability)

어떤 주장에 대한 증거가 실험 결과에 근거한 것이거나,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제시된 증거가 논리적으로 우연의 일치로 설명될 수 있다면, 그 증거는 후속 실험이나 시행(試行)에서 반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if the evidence for any claim is based upon an experimental result, or if the evidence offered in support of any claim could logically be explained as coincidental, then it is necessary for the evidence to be repeated in subsequent experiments or trials).
 

충분성(sufficiency)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제시된 증거는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그 주장의 진실을 확증하는데 충분해야만 한다:

1. 어떤 주장의 입증 책임은 주장자에게 있다,

2. 범상하지 않은 주장은 범상하지 않은 증거를 요구한다,

3. 권위 및 또는 증언에 근거한 증거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항상 불충분하다.

(the evidence offered in support of any claim must be adequate to establish the truth of that claim, with these stipulations:

•1. the burden of proof for any claim rests on the claimant,
•2. extraordinary claims demand extraordinary evidence, and
•3. evidence based upon authority and/or testimony is always inadequate for any paranormal claim)
 

 

 

 

순서대로 제가 차원개념도라는 이름으로 묘사한 0~5차원에 각각 대응합니다.

 

답글이 35회나 교환되고 나서도 "인지부조화" 같은 살벌한 말로 토론이 중지된 건 상기한 지침 가운데 다섯번째 항목에 대한 합의가 님과 저 같은 구조론자 사이에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봅니다.

 

반복가능성 또는 재현가능성은 과학을 하는 과학도의 입장(doing science)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그것은 치명적인 유혹을 뜻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진실의 추구자'로부터 '성취욕의 노예'로의 전락이니까요.

 

그러나 과학적으로 존재를 사유하는 입장(being science)에서도 재현가능성에만 집착하는 것은 또한 더욱 위험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지침들이 모두 '반드시 ~해야한다(must be)'의 형태를 취한 것에 반해, 재현가능성은 '경우에 따라 필요하다'는 식으로 한 수 접고 있음에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러한 비일관성(inconsistency)을, 사람이 구조를 지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비약'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조론이 강조하는 '역설'의 개념 또한, 개념의 경계가 확정되지 않으면서도 '상상 속에 존재'하는 모순된 상황을, 논리적으로는 비약함으로써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해서 단 하나의 비약도 허용할 수 없는 과학도의 태도로서는 구조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조론 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질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란도님께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잘 설명해주셨습니다만 아무래도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보니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르페님의 글은 지난 한달 제가 매달려 있던 화두와 거의 일치하는 바람에 뒷통수 맞은 기분이 들기도 했구요. ㅎㅎ

 

wson님의 "과학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미완성의 시스템"이란 선언에 대하여

아란도님은 "그것이 과학의 숙명"이라고 받으셨지요.

이에 wson님이 "난 운명 따위 믿지 않아" 해버리면 여기서 얘긴 끝나는 겁니다.

 

 

 

다만 과학을 "영원한 미완성"이라고 하시고 또한

"과학은 가장 자유롭고 열린 사고임과 동시에 가장 완고한 시스템"이라고 하신 데서

구조론적 '깨침'의 가능성이 엿보여 많은 분들이 미련(?)을 보이신 것 같습니다.

 

과학이 영원한 미완성이라면, 바로 지금 여기의 과학이 '현재태(態)이자 완성태'입니다.

말씀하신 바대로 과학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존재에 양면성이 깃들 수 있다는 시공간적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구조론입니다.

 

 

 

쓰고 보니 조금 우스운 입장이 됐습니다.

저 역시 구조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제 자신을 '믿을 수 없는' 판

또 어디 싸움난 것 같으니 기웃거리는 것 같아 갑작스레 한심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군요.ㅋ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6.29 (13:45:25)

이건 간단한 이야기인데

예컨대 어떤 사람이 '무한동력장치'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구조론의 주장은 '처음부터 대뜸 장치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발견->발명'이므로 먼저 발견을 들고나와야 하는 거죠.

장차 무한동력장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어떤 발견을 들고와야지

발명이 발견을 앞지르면 안 되는 거죠.

순서대로 하자는 겁니다.


임신 다음에 출산이지 출산 다음에 임신 이건 아니거든요.


그럼 과학은 맨 처음 무엇부터 해야하느냐?

모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조론은 

과학이 맨 처음 해야 하는 작업.. 

간단한 수학적 모형 만들기를 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과학계는 한의학처럼 

신약을 임상들어가기 전에 치료부터 먼저 합니다.

물론 아무거나 먹여보고 일단 치료가 되면 거기서부터 거꾸로 신약을 찾아낼 수도 있죠.

그러나 이건 과학의 방법론이 아니죠.


구조론의 입장은 무슨 과학적 주장을 하든 간에

수학적모형이 1번이고 그 다음에 개별적인 응용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근데 현재 과학계가 그렇게 하지 않죠.

모형이 없습니다.

그것은 공식이 없는데 계산은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공식없이 방정식 문제를 끙끙거리며 푼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답은 맞췄는데 재현이 안되더군요.


한 마디로 과학계가 주먹구구식이라는 거죠.

근데 주먹구구라도 한의학은 수천년간 환자를 치료해 왔습니다.

과학도 지금 잘 하고 있는데 웬말이냐 뭐 이런 거죠.

지금 과학계 잘하고 있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지름길이 없는건 아니죠.

추상클래스를 만들면 작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됩니다.

추상클래스 없이도 잘 해왔는데 왜 지롤이냐 이러면 안 되죠.

개발자들끼리 호환이 안되어서 낭패를 봅니다.

매뉴얼 없이도 잘 해왔는데 웬말이냐 이러면 안 되죠.


구조론은 말하자면 추상클래스를 만들고 매뉴얼을 만든 것인데

그것 없이도 과학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지요.

아프리카 주술사들은 그것 없이도 잘만 해왔습니다.

심지어 고대 잉카인들은 문자가 없이도 고도의 계산을 하고 건축물도 만들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문자없이 건물짓기를 계속할 겁니까?

잉카인들은 기억술사를 이용해서 문자없는 문명은 만들었지만 

언제까지 기억술사에게 의존하겠습니까?


수학적 모형이 먼저 제시되고 논쟁은 그 모형을 중심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건 뭐 의학을 하려면 일단 해부를 해야한다는 것처럼 당연한 겁니다.


앞에서 예를 든 신문기사의

"이성은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천만에… "理性은 남과 싸워 이기려고 발달한 것"


이런게 논쟁으로 해결될 거 같습니까?

모형이 있어야 답이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의사결정 모형을 먼저 도출해놓고 연구 들어가야 합니다.

의사결정 모형도 모르는 자들이 무슨 이성타령이야?


의사결정 1, 2, 3, 4, 5단계가 있고 그 단계를 따라가는 겁니다.

그리고 개인>집단, 부분>전체, 현재>미래로 확대되는 단계를 따라 의사결정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의사결정에 타인과 공동체를 개입시키는 절차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특별한 능력 맞지만

그 능력은 인간의 인격 자체에 있는게 아니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시스템 자체에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남과 싸워 이기려고 발달했다는 말도 아주 틀린건 아니에요.


의사결정모형이 없으므로 논쟁이 중구난방인 거죠.


즉 인간은 틀린 결정을 해도

개인>집단, 부분>전체, 현재>미래으로의 확대만 되면 만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른 결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바른 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개입되는 결정이 필요한 거죠.

어떤 사람이 1+1=3이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칩시다.

그건 틀린 결정이지만

그 문제에 인류 전체가 관심을 기울였다면

대성공입니다.

그걸 인간은 예술이라고 부르죠.


바른결정보다 공동체 전체가 개입하는 큰결정을 추구하는 겁니다.

왜냐?

큰 결정을 한번 성공시키면 반복할 수 있고 유익하기 때문이죠.

즉 옳은 결정보다

반복하여 써먹을 수 있는 결정구조를 결정하는 겁니다.

이것이 의사결정의 결입니다.

이건 하나의 모형이고 인간은 먼저 모델을 구축합니다.


모형, 모델, 모듈을 중심으로 과학은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진흙을 붙여 소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커튼을 펼치듯이 한꺼번에 펼쳐내는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Beholder

2011.06.29 (14: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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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는 과학계의 "주먹구구식"(귀납적) 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하시며

"추상클래스"의 구성(연대? 육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계신 데

제 경우, 오랜 검토 끝에야 그 길이 답이라는 데 동의한 입장입니다.

 

대표적 '식민지 지식인'인 이문열 옹은 선생과 같은 문제를 두고

"문화제국의 '변경'에 위치한 주변국-식민지의 숙명"으로 해석했습니다.

모국어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소통의 한계와, 한국어 사용권이라는 좁은 바운더리 자체의 한계로

식민지 지식인은 대외로의 '진출'이 불가능하다는,

곧 인류의 집단지능 형성에 기여할 수 없다는 비관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오래 매달려 있었습니다. ;

 

그러나 같은 문제라도 "제국과 제국 사이, 에너지가 정면 충돌하는 다이내믹 코리아"로 보면

잠재된 폭발력, 인화성, 확장성의 측면에서 우리야말로

특수한 상황이 특수한 결과를 낳기에 적합한 상황이고 환경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딴에는 구조론의 도움을 많이 얻었습니다. 또한 대세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구요.

구조강론도 강론이지만, 선생님의 단호한 직진을 지켜보다 제 안의 중요한 뭔가가 움직여버린 듯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6.29 (16:38:45)

wson님의 "과학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미완성의 시스템"이란 선언에 대하여

아란도님은 "그것이 과학의 숙명"이라고 받으셨지요.

"난 운명 따위 믿지 않아" 해버리면 여기서 얘긴 끝나는 겁니다.

 

 

...이 세 문장 관계가 제가 좀 이해가 안되어서...

그것이 과학의 숙명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전에 댓글로 설명했지만...

 

과학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미완성의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해서...

과학의 어떤 성과물들이 현재와 결합하여 진보해 나가지만, 과학 그 자체에 만족은 없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불만족이 과학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여기서의 불만족은 어떤 완성도에 의한 상대적인 불만족이 아니라,

불만족 그 자체를 충족시키려 하는 불만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애초부터 만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만족을 계속 충족시켜야 과학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불만족 상황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불만족이 개인의 이성이나 인격의 불만족 혹은 결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만족이라는 것을 결여하고 있다라는 것에서 불만족이라는 만족스런 상황을 도출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과학은 불만족 스러울 때가 만족스런 상황이 된다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지요.

이러한 모순된 상황이 과학의 주 동력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언듯보면 과학이 만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과학은 불만족을 추구한다라는 것이지요.

끝없이 실험하거나 혹은 끝없이 발명하거나 혹은 끝없이 탐사하거나 등등에 비춰보면 뭔과 결과를 내기위해 움직이지만, 어찌보면 결과물 자체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과물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의 나타난 성과물들을 사회에 접목시키는 것은 인간과 자본의 역할이 개입되므로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과학 그 자체의 목적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학이 끝없이 추구하는 불만족 때문에 과학은 영원한 미완성의 시스템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고,

그 방식에 있어서 과학이 안고 있는 것은 숙명이라는 것이지요.

자식이 부모를 결정할 수 없듯이 과학은 불만족이라는 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과학의 속성은 얼핏 예술의 속성과도 비슷한 점이 있지요.

예술 역시 불만족 상황을 만족스런 상황으로 대체시키고 싶어하지만, 그 원동력은 불만족에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예술은 미학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하므로 어떤 완성도를 꿈꾸기 때문에 만족이 결여된 것은 아니지요.

예술은 이미 완성도에 대한 모형을 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혹은 과학자가 미학이라는 안목을 가지게 된다면 과학이 가는 그 길위에서 과학이 추구하는 불만족에 대하여 조금은 더 큰 불만족 혹은 조금은 더 높은 수준위에서의 불만족을 발견하게 됨으로 인해서 불만족의 방향을 향상 시킬 수 있다라는 것이지요. 즉 방향을 바꿀 수 있다라는 것이지요.(한단계 상승)

그러므로 과학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도약만을 할 뿐이기에 기존의 자신의 지식 그 자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라는 의미이지요. 하여 미학적인 모형을 품는다면 불만족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도 상승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고,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다시한번 생각을 그저 내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Beholder

2011.06.29 (18: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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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본문을 수정했습니다. 분명치 않은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에 wson님이 "난 운명 따위 믿지 않아" 해버리면 여기서 얘긴 끝나는 겁니다.

 

운명 또는 숙명이란 화두는 짧게 정리하기 어려울 듯해서 아직 궁리 중입니다.

 

<운명이다>와 <운명>, 어떤 차이로 설명해야 적당하려나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6.29 (18:35:20)

 

제 생각에는

 

숙명, 운명 그 자체는 존재론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되네요.

숙명, 운명은 그 자체의 시작점이 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숙명이다, 운명이다.라는 것은 인식론적인 성격이라고 생각되구요.

이것은 결과로서 시작과 지나온 시간들을 관찰함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운명과 숙명은 같이 가는 것이지만, 숙명 그 자체는 스스로 제어가 안된다는 점이 있다고 보이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그 전체 패턴은 제어할 수 없지요. 운명은 시작부분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운명의 시작점을 스스로가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운명은 그 운명의 패턴을 결정하는 시작점이 반드시 있다라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큰 의미에서는 숙명의 개념이 더 크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운명이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특히 오늘날에는 더욱 더...

 

과학이 숙명론을 따르는 것 역시 존재론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왜냐하면, 진보 그 자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요.

이것을 그냥 그대로 놓아두면 인간사회에서는 제어가 안되지요.

그래서 어떤 개입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이 볼 때 자연의 어떤 법칙들을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을 때 숙명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자연의 숙명의 속성이 이식된 과학을 인간 사회에서는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개입이 가능하다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과학에 대한 개입이나 통제나 제어는 철학, 혹은 미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운명 역시 한 사람이 뭔가를 시작할 때 자신이 보는 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므로 이미 시작부터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시작의 관점이 과정과 결과를 담고 있으니까...? 질에서 시작되는 것과 같으므로 존재론적인 방향이라는 것이지요. 하여 운명에도 철학과 미학은 개입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자신의 어떤 관점을 획득할 수 있으니까요.

 

과학의 숙명은 끝없이 불만족의 상황이 됨으로 인해서 오히려 그 상황인 만족 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통제나 제어가 어려워서 철학, 혹은 문화예술이 관여를 하게 됩니다. 철학이 관여하게 될 때는 아무래도 인간과 윤리성이라는 부분이 크겠지요. 문화 예술이 관여가 될 때는 수준과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될 것이구요.

 

숙명에 개입할 때는 어떤 전반적인 더 큰 포괄적인 시스템이 개입이 되는 것 같고, 운명에 개입 될 때는 인간 개인이 세상과 대척점을 갖는 관점에서 개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숙명이나 운명에 모두 철학과 미학이 개입이 된다는 것이지요.

큰 시스템적인 접근이냐, 개인의 관점의 접근이냐의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철학은 대체로 숙명에 개입하여 인간이 어떤 관점을 획득하여 운명을 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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