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재야의 숨은 인재를 몰라봐도 유분수지 어찌 지금껏
한승조군을 몰라보았단 말인가. 조선일보는 당장 한승조군을 영입하도록 하라! 조갑제군 보다는 백배 낫다.
조갑제군은 ‘이완용 선생은 역사상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제목의 독자글을 사이트 대문에 걸어놓은 일이 있다. 그런데 이건 독자글 뒤에 숨는 비겁한 행동이 아닌가?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의 정신에 맞지 않다. 당당하게 커밍아웃 할 수 있어야 한다. 한승조군이야 말로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승조군.. 지금까지 저 말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속이 얼마나 근질거렸을까? 이제 할 말을 했으니 속이 후련할 것이다. 지금 이순간 그는 행복할 것이다. 드디어 조국 일본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할 말은 하는 신문 조선일보
유비가 싸움에 져서 손건과 함께 도망치다가 유안(劉安)이라는 농민의 집에 들른 일이 있다. 유안이 고기를 구워서 저녁상을 차려왔는데 처음 보는 고기였다.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유안은 이리고기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유비가 길을 떠나려고 보니 부엌에 젊은 여자가 죽어 있었고 그 여자의 허벅지와 팔 다리가 예리한 칼로 베어져 있었다. 유비가 놀라서 유안을 불러서 물으니 유안이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죽은 여자는 그의 아내이며 존경하는 유비가 왔는데 대접할 것이 없어 아내를 요리해 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섬찟한 이야기다. 아마 민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나관중이 삼국지에 집어넣은 경우일 것이다. 나관중은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연의에 실었을까? 그 시대가 그런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승조의 가족들은 조심해야 한다. 존경하는 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제 가족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김일성 은혜 운운하는 북한주민, 박정희 은혜 운운하는 조선일보, 명나라 은혜 운운했던 조선왕조, 미국 은혜 운운하는 조용기, 일본 은혜 운운하는 한승조.. 이들은 닮은꼴이다. 무엇인가? ‘봉건적 주종관계’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봉건시대를 사는 사람들
근대(近代)란 무엇일까? 근대란 곧 근대의 질서를 의미한다. 근대의 질서는 수평적인 질서다. 전근대의 질서는? 봉건적 질서다. 그것은 상하관계를 위주로 하는 수직적인 질서다.
가족 안에서는 남존여비, 장유유서의 질서요 가족 밖에서는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다. 이때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고리는? 은혜와 충성의 알고리듬이다. 위는 아래에 은혜를 내려주고 아래는 위에 충성을 갚는다. 이를 연결고리로 삼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근대는? 근대사회는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언어와 문자 그리고 인쇄술의 보급, 언론과 방송의 역할, 결정적으로는 민주주의 그리고 최신 버전은 인터넷이다.
문제는 아직도 봉건적 신분질서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다. 한나라당이다. 그들은 아직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여전히 낡은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교과서에서 읽었을 것이다.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식을 땅 속에 파묻어 버리려는 손순의 돌종 이야기.. ‘자식이야 또 낳으면 되지’.. 하는 섬뜩한 발상!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아내를 친구에게 하룻밤 동안 빌려주는 삼국유사의 한 장면.. 그리고 마누라를 죽여서 그 고기를 존경하는 유비에게 바친 농부 유안.. 그것이 그 시대의 가치관이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근대주의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와 충성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그 족쇄를 사슬로 하여 세상을 향해 촉수를 내미는 것이다.
생각하면 세상은 두려운 것이다. 11세기 암흑시대 유럽의 어느 산골 소년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은혜와 충성의 연결고리가 믿을만한 길잡이가 되고 나침반이 된다.
16세기만 해도 제법 개명된 세상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돈키호테와 그의 부하 산초 판사 둘이서만 11세기를 살았던 것이다. 둘시네아공주에 대한 갸륵한 충성의 마음으로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장면.. 그런데 한국의 돈키호테는 21세기에도 산다. 떼로 산다. 조동에 살고 한나라당에 산다.
실제로 나이 많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실력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에 의해 성공했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정주영은 그의 자서전에서 사업에 실패하여 알거지가 된 정주영에게 거금을 선뜻 빌려준 은인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정주영 뿐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공한 그 시대의 어른들은 ‘나는 누구의 은혜 덕분에 성공했다’는 식의 은혜담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은혜담이 없으면 자서전을 쓸 수 없을 정도이다.
그들은 각자 자기 안의 둘시네아 공주님을 하나씩 모시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수첩공주가 공연히 뜨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욕보인 서울대 이영훈군의 망언, 조선일보의 앞잡이라 할 한승조군의 망언.. 그걸 대문에 떠억하니 걸어놓은 조갑제군의 사이트, 그리고 '한승조 선생의 글을 진지하게 공부하자’며 대문에 걸어놓은 신혜식의 독립신문.
은혜와 충성의 봉건적 가치관으로 세계를 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아내 쯤은 죽여도 된다는 발상의 소유자들.. 위험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꼴통이라 부른다. 꼴통이 달리 꼴통이랴. 냉엄한 국제 사회에서 순진하게 은혜 운운하고 뒤처져 있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헛소리 늘어놓으니 꼴통이다.
말이 꼴통이 아니라 그들은 진짜 꼴통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정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꼴통의 가치관, 꼴통의 세계관, 꼴통의 인생관을 가지고 그렇게 돈키호테의 화석으로 굳어있는 것이다.
폭행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심리적 공황상태.. 어쩌면 옛날에는 그것이 생존본능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승조는 한승조의 생존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치 장교들은 나치 장교의 생존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본능의 명령에 따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아내의 고기를 구워서 바치고.. 죄의식 없이 유태인을 학살하고.. 소름끼치는 사실이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일면이므로 정확히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령이 보는 서프라이즈
[중앙일보 이정민] 노무현 대통령이 요즘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회의를 주재하거나 업무보고와 같은 공식일정이 없는 시간엔 대부분 책을 읽거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며 보낸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중략)
요즘 노 대통령이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는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국정브리핑'과 각 정부 부처 사이트의 게시판, 그리고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다. '서프라이즈'나 '국민의 힘' 같은 친노(親노무현) 사이트, 청와대 홈페이지의 '업무혁신공유방'에도 자주 들어간다고 한다. jmlee@joongang.co.kr
더 한층 어깨가 무거워지는 군요.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더 멋진 사이트를 만들어 봅시다.
조갑제군은 ‘이완용 선생은 역사상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제목의 독자글을 사이트 대문에 걸어놓은 일이 있다. 그런데 이건 독자글 뒤에 숨는 비겁한 행동이 아닌가?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의 정신에 맞지 않다. 당당하게 커밍아웃 할 수 있어야 한다. 한승조군이야 말로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승조군.. 지금까지 저 말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속이 얼마나 근질거렸을까? 이제 할 말을 했으니 속이 후련할 것이다. 지금 이순간 그는 행복할 것이다. 드디어 조국 일본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할 말은 하는 신문 조선일보
유비가 싸움에 져서 손건과 함께 도망치다가 유안(劉安)이라는 농민의 집에 들른 일이 있다. 유안이 고기를 구워서 저녁상을 차려왔는데 처음 보는 고기였다.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유안은 이리고기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유비가 길을 떠나려고 보니 부엌에 젊은 여자가 죽어 있었고 그 여자의 허벅지와 팔 다리가 예리한 칼로 베어져 있었다. 유비가 놀라서 유안을 불러서 물으니 유안이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죽은 여자는 그의 아내이며 존경하는 유비가 왔는데 대접할 것이 없어 아내를 요리해 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섬찟한 이야기다. 아마 민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나관중이 삼국지에 집어넣은 경우일 것이다. 나관중은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연의에 실었을까? 그 시대가 그런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승조의 가족들은 조심해야 한다. 존경하는 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제 가족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김일성 은혜 운운하는 북한주민, 박정희 은혜 운운하는 조선일보, 명나라 은혜 운운했던 조선왕조, 미국 은혜 운운하는 조용기, 일본 은혜 운운하는 한승조.. 이들은 닮은꼴이다. 무엇인가? ‘봉건적 주종관계’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봉건시대를 사는 사람들
근대(近代)란 무엇일까? 근대란 곧 근대의 질서를 의미한다. 근대의 질서는 수평적인 질서다. 전근대의 질서는? 봉건적 질서다. 그것은 상하관계를 위주로 하는 수직적인 질서다.
가족 안에서는 남존여비, 장유유서의 질서요 가족 밖에서는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다. 이때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고리는? 은혜와 충성의 알고리듬이다. 위는 아래에 은혜를 내려주고 아래는 위에 충성을 갚는다. 이를 연결고리로 삼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근대는? 근대사회는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언어와 문자 그리고 인쇄술의 보급, 언론과 방송의 역할, 결정적으로는 민주주의 그리고 최신 버전은 인터넷이다.
문제는 아직도 봉건적 신분질서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다. 한나라당이다. 그들은 아직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여전히 낡은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교과서에서 읽었을 것이다.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식을 땅 속에 파묻어 버리려는 손순의 돌종 이야기.. ‘자식이야 또 낳으면 되지’.. 하는 섬뜩한 발상!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아내를 친구에게 하룻밤 동안 빌려주는 삼국유사의 한 장면.. 그리고 마누라를 죽여서 그 고기를 존경하는 유비에게 바친 농부 유안.. 그것이 그 시대의 가치관이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근대주의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와 충성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그 족쇄를 사슬로 하여 세상을 향해 촉수를 내미는 것이다.
생각하면 세상은 두려운 것이다. 11세기 암흑시대 유럽의 어느 산골 소년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은혜와 충성의 연결고리가 믿을만한 길잡이가 되고 나침반이 된다.
16세기만 해도 제법 개명된 세상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돈키호테와 그의 부하 산초 판사 둘이서만 11세기를 살았던 것이다. 둘시네아공주에 대한 갸륵한 충성의 마음으로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장면.. 그런데 한국의 돈키호테는 21세기에도 산다. 떼로 산다. 조동에 살고 한나라당에 산다.
실제로 나이 많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실력이 아니라 오로지 은혜에 의해 성공했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정주영은 그의 자서전에서 사업에 실패하여 알거지가 된 정주영에게 거금을 선뜻 빌려준 은인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정주영 뿐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공한 그 시대의 어른들은 ‘나는 누구의 은혜 덕분에 성공했다’는 식의 은혜담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은혜담이 없으면 자서전을 쓸 수 없을 정도이다.
그들은 각자 자기 안의 둘시네아 공주님을 하나씩 모시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수첩공주가 공연히 뜨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욕보인 서울대 이영훈군의 망언, 조선일보의 앞잡이라 할 한승조군의 망언.. 그걸 대문에 떠억하니 걸어놓은 조갑제군의 사이트, 그리고 '한승조 선생의 글을 진지하게 공부하자’며 대문에 걸어놓은 신혜식의 독립신문.
은혜와 충성의 봉건적 가치관으로 세계를 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아내 쯤은 죽여도 된다는 발상의 소유자들.. 위험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꼴통이라 부른다. 꼴통이 달리 꼴통이랴. 냉엄한 국제 사회에서 순진하게 은혜 운운하고 뒤처져 있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헛소리 늘어놓으니 꼴통이다.
말이 꼴통이 아니라 그들은 진짜 꼴통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정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꼴통의 가치관, 꼴통의 세계관, 꼴통의 인생관을 가지고 그렇게 돈키호테의 화석으로 굳어있는 것이다.
폭행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심리적 공황상태.. 어쩌면 옛날에는 그것이 생존본능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승조는 한승조의 생존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나치 장교들은 나치 장교의 생존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본능의 명령에 따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아내의 고기를 구워서 바치고.. 죄의식 없이 유태인을 학살하고.. 소름끼치는 사실이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일면이므로 정확히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령이 보는 서프라이즈
[중앙일보 이정민] 노무현 대통령이 요즘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회의를 주재하거나 업무보고와 같은 공식일정이 없는 시간엔 대부분 책을 읽거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며 보낸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중략)
요즘 노 대통령이 자주 접속하는 사이트는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국정브리핑'과 각 정부 부처 사이트의 게시판, 그리고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다. '서프라이즈'나 '국민의 힘' 같은 친노(親노무현) 사이트, 청와대 홈페이지의 '업무혁신공유방'에도 자주 들어간다고 한다. jmlee@joongang.co.kr
더 한층 어깨가 무거워지는 군요.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더 멋진 사이트를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