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전투가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긴박감 넘치게 진행되는 일은 실제로는 잘 없다고 합니다. 전투는 보통 지루하게 전개됩니다. 워털루 전투의 그날도 그랬습니다. 오전 내내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지만 사망자 1명, 부상자 몇십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돌연 거대한 살육전이 벌어집니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에 가깝지요. 그러다가 다시 지루한 대치와 소강상태. 그리고 끝 없는 신경전,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
 
먼저 지치는 쪽이 집니다. 처음에는 미세한 실금이 나지만 어느 순간 일제히 대오가 무너져 버립니다. 대쪽처럼 쪼개집니다.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히 갈라지고 맙니다. 대파멸이지요. 그래서 더 두려운 것입니다.
 
증권가 격언에 2층 밑에 1층 있고, 1층 밑에 지하층 있고, 지하층 밑에 지하 2층이 있다고 합니다. 바닥이 없이 추락한다는 말이지요. 지금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추락했는데도. 그렇게 지지자의 피를 말렸는데도 아직 더 추락할 바닥이 남아있고 더 말릴 피가 남아있다는 것인지.
 
지금이 데프콘 쓰리 상황인지 데프콘 투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데프콘 원은 아니라는 겁니다. 한겨레에 노심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노심 나왔다면 데프콘 쓰리에서 데프콘 투로 넘어가는 상황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겨레 기사 ‘보안법’ 노심 초심대로 일까? 보기
 
보안법 철폐를 위하여 우리가 네티즌의 미약한 힘으로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현상을 어영부영 이부영으로 적당히 넘겨서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을 치는 것입니다. 데프콘 원 상황이 닥치면 그 한 사람을 치기 위해서 저도 마지막 실탄 한 발은 남겨 놓겠습니다.
 
한겨레 기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로 사람을 보내, “국민들보다 반 발자국만 앞서야 한다”며 보안법 강행 처리에 부정적인 견해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그러한 이유로 대통령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는 일각의 해석도 곁들이고 있습니다.
 
틀렸습니다. 설사 DJ가 사람을 보내서 그렇게 전했다 하더라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면 하수입니다. 정치를 모르는거지요.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보안법 철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 노태우정권은 이철우의원을 비롯하여 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하고, 간첩단사건을 조작하고 그랬을까요? 오직 DJ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도 민주화라는 세계사 차원의 대세를 끝내 거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YS의 집권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유독 DJ 한 사람만 철저하게 비토했습니다. 왜? 무엇때문에?
 
여러 말이 필요없습니다. 박정희와 DJ의 30년 대결입니다. 이제 최후의 승부가 나려고 합니다. DJ가 뜸을 들이는 것은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이지 결코 승부를 포기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DJ가 자신의 발에 채워진 족쇄를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DJ는 안전한 이인제가 아닌, 리틀 DJ 한화갑이 아닌, 바보 노무현의 상황을 용인한 것입니다.
 
민주당은 끝내 박살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최대의 피해자는 DJ입니다. 살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DJ와 노무현의 이심전심을 꾸준히 말해왔습니다. 탄핵에도 불구하고 DJ와 노무현은 절대로 갈라서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안법? 김대중 죽이기입니다. 호남고립화 전략입니다. 한나라당은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지역주의 하고도 영남패권주의입니다. 그들이 보안법 고수에 올인을 한다는 것은 결국은 기존의 지역구도를 차기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지요. 데프콘 원 상황이 되면 아껴둔 마지막 한발을 쏠거라고요. 현상을 유지하여 이익을 볼 그 한 사람을 겨냥하겠다고요. 지역구도가 그대로 유지되어 정치적 이득을 볼 우리 안의 그 사람을 겨냥하겠다고요.
 
그 사람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야 할 것입니다. 이부영이나 천정배는 아닙니다. 그들은 논할 가치도 없는 밑에 사람들입니다. 이부영이나 천정배가 비판받고 있다면 데프콘 쓰리입니다.
 
더 윗선에서 결정이 납니다. 피를 말리는 지리한 대치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국민을 계몽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의 사악한 깽판질로 양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무엇이 옳은지 이제는 거진 알게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왜 김혁규 같은 보수정치인들이 뜬금없이 보안법 철폐에 앞장을 서려 할까요? 지금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야 합니다. 보안법이 이번에 철폐되지 않으면? 누가 그 죄를 전부 덮어쓸까요? 제가 이렇게 힌트를 줍니다.
 
서프라이즈에서도 그렇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실용주의 독자들도 최근에는 보안법철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왜인가? 역설적인, 너무나 역설적인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다? DJ를 한번 더 죽이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호남을 한번 더 린치하겠다는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안에 있다면? 나는 그를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제 마지막 한 발이 예비하고 있는 그 사람은 지금 의회의 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저 혼자서 살판 난듯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기어이 칼날이 제 목줄을 겨누어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독자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편집장님께 노트북도 사주고 싶고, 서버도 증설하고 싶고, 리뉴얼도 하고 싶고, 산맥처럼님께 활동비도 챙겨주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조흥은행 562-04-221460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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