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 '노무현'
내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구차하게 사느니, 죽음으로 주변을 정리했다.
차마, 아들이 고생만 하고 살아온 부인이 검사나 경찰의 고초를 당하는걸 보기 원하지 않았던거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때면, 난, 중학교 1학년 시절, 교실 창가에서 울려 퍼지던 확성기 소리가 기억난다.
'배추 팔아요, 한박스에 1000원 배추 팔아요'
하오의 햇살과, 수학선생님의 빼곡한 칠판과, 확성기의 울림.
옆분단 여학생의 빨간 머리핀.
삶과 죽음은 그렇게 일상에서 밀려왔다.
다른 이야기해보자.
유독 한국에서만 자살이 횡행한다? 아니, 자살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이건 일종의 메세지라고 본다.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개인의 '메세지'
예수의 죽음이 타살이지만, 개인이 선택한 길이니, '순교'라고 불러야하지 않겠는가.
여튼, 한국에서의 자살은
일본이나, 미국이나, 구미의 자살과 다르다.
공명의 '밀도'가 다르다는 말.
그 밀도차를 느낄수 있어야 진짜다.
르페
생의 어느 순간에 높은 밀도가 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찰나에 영원을 구겨넣은 듯한 황홀한 체험이겠지요.
길고 구차한 시간과 찰나의 순결함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지 않았을겁니다.
단지 '생활의 지속' 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로서는 아득히 먼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