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군은 무적이었다. 싸울 때 마다 이겼다. 그들은 승리하는 방법을 알고 싸웠던 것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초기 로마의 근간을 이룬 에트루리아인은 본래 건축기술자들이었다고 한다. 건축가의 사고방식을 가졌던 그들은 건축가가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듯이 교범 위주의 전투기술을 창안한 것이다.
한 두번의 전투에 지기도 했지만.. 그 경우 전쟁을 장기화 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단 시간을 끌면서.. 적의 전쟁기술을 재빨리 습득하여 적의 전술로 적을 제압한다. 결국은 로마가 승리한다.
전쟁은 초기의 정열과 흥분 곧 군중심리가 만드는 기세에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무조건 보급이 강한 쪽이 이긴다.
로마는 불리할 경우.. 거미줄처럼 연결된 아피아가도의 보급선을 믿고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때 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보급이 강한 로마군은 지치는 법이 없다. 적이 지치면 격파한다.
이 정도면 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같은 로마군끼리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때도 역시 로마군이 승리한다.
안토니우스를 비롯하여 많은 로마의 맹장들이 로마를 떠나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스 등에서 군대를 모아 로마군의 몇 배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똑 같은 로마식 전술로 로마와 싸웠지만 로마에 패배하고 있다.
왜 로마와 로마가 싸울 때도 로마가 강한가?
힘이 대등할 경우 명분이 있는 쪽이 이긴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분일까? 공화정의 수호가 명분인가? 황제의 적통을 이어받음이 명분인가? 더 많은 속주와 자유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명분이 되는가?
우습게도.. 당시 최고의 명분은 로마와 지리적인 거리가 가까운 정도가 결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같은 로마군 끼리 로마 밖에서 전투를 벌일 경우 로마와 가까운 군대가 명분을 얻어 승리하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명분이라는 것이 도무지 무엇인지 검토해봐야 한다. 왜 로마와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 명분이 되는가?
한나라당의 3연속 삼진
한국인들만큼 정치에 관심있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진지하지 않다. 침을 튀겨가며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지만.. 실제로 정치를 알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은 이 나라에 많지 않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를 혐오한다. 그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참여적인 관심이 아니라 ‘정치가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냉소적인 관심이다. 한국인들은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정치혐오증에 편승하여 정치에 침을 뱉고 정치판에 불을 질러 버리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허경영식 전술로 일관하는 바보들이 있다. 한나라당이다.
아무리 정치가 밉더라도 희망은 정치에 있다. 정치 그 자체에 불을 질러서는 안된다.
로마사의 많은 장면들에서 그러하다. 아무리 로마가 썩었어도, 아무리 자기네가 그럴사한 명분을 가졌다 해도 로마 안에서 싸워야지 로마에 등을 돌리고, 로마를 뛰쳐나가서, 로마 밖에서 군대를 편성하는 즉시 반로마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공화정이 명분이 아니다. 카이사르의 족보도 명분은 아니다. 속주와 식민지 및 자치도시들의 지지도 명분이 아니다. 가장 큰 명분은 그 겨누어진 칼 끝이 어디를 가리키느냐이다.
이철우의원에 대한 모함이 다 무엇인가? 국회의원이 국회에 폭탄을 던진 것이다. 세상에.. 자기들이 사는 집에 불을 질러서 어쩌자는 것인가? 이보다 더 미친 짓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을 향하여 칼을 겨눈 한나라당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혐오한다는 이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정치에 기대를 걸면서도 정치를 비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이 혐오보다 크다. 기대가 냉소보다 크다.
겉으로는 ‘에이 마누라 꼴도 보기 싫어’, ‘영감쟁이 어디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무뚝뚝하게 대꾸하지만 그 심중에 된장뚝배기같은 묵은 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이런거다.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과 북한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한국인은 둘 다 선택한다.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당에 투표했고, 북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나라당을 찍었다. 그것은 자동차에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가 공존하는 것과 같다.
왜 정형근 따위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했을까? 그들은 귀찮았던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짜증났던 것이다. 정형근이 적절히 브레이크를 걸어준다면.. 내가 정치에 무관심한 채로 있어도 우리당이 나 모르게 폭주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정형근을 선출한 것이다.
브레이크는 브레이크다. 그 자동차를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정형근이 촐랑거리고 전면에 나서기를 원하는 유권자는 한나라당 안에도 없다. 정형근은 음지에 있을 때 한나라당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1) 로마군은 교범 위주의 전쟁을 한다.
2) 교범 위주의 전쟁을 할 경우 바둑의 정석과도 같아서 우연성이 배제된 결과 미세한 실력차이에 의해 확실한 승부가 난다.
3) 같은 로마군 끼리 싸울 경우 명분이 있는 쪽이 승리한다.
4) 로마 밖에서 로마를 향해 칼을 겨눈 군대가 명분을 잃는 경향이 있다.
5) 한나라당은 국민 다수의 정치혐오증에 편승하여 이를 명분으로 착각하고 로마를 향해 칼날을 겨누는 우를 범하였다. 이 경우 가족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생존본능이 작용하여 한나라당을 망하게 한다.
생각하라! 가족의 보호보다 더 큰 명분이 있다는 말인가?
희망이 냉소보다 울림이 크다. 결국은 길이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총력전으로 가면 무조건 우리가 승리한다.
지난해 재신임 때 부터 똑같은 방식이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당이 먼저 지지도 하락을 무릅쓰고 아슬아슬하게 국면을 가져가면, 참지 못한 한나라당이 돌연 폭주하여 미친듯이 날뛰며 대한민국을 향해 칼날을 겨눈다.
먼저 정치를 사랑하라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났다. 형과 동생이 서로 명분을 주장한다. 여론은 수시로 변한다. 형이 지지를 받는가 하면 동생이 지지를 받기도 한다. 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가?
가족을 등지고 싸우는 쪽이 이긴다. 가족을 향해 칼 끝을 겨누는 순간 그 어떤 명분도 소용없는 것이다.
재신임, 탄핵, 그리고 이번 사건의 공통점은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치혐오증에 편승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향하여 칼끝을 겨누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에 경고한다. 당신네들은 곧 죽어도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정치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라. 의회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건 당신네들이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들은 정치할 자격이 없다.
도무지 정치를 모르는,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 한나라당 초재선들이 문제다. 우리당은 초선이라도 학생운동 경험이 있어서 그걸로 정치를 배웠다는 점이 다르다. 한나라당 초선들은 진짜 정치를 모른다.
초기 로마의 근간을 이룬 에트루리아인은 본래 건축기술자들이었다고 한다. 건축가의 사고방식을 가졌던 그들은 건축가가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듯이 교범 위주의 전투기술을 창안한 것이다.
한 두번의 전투에 지기도 했지만.. 그 경우 전쟁을 장기화 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단 시간을 끌면서.. 적의 전쟁기술을 재빨리 습득하여 적의 전술로 적을 제압한다. 결국은 로마가 승리한다.
전쟁은 초기의 정열과 흥분 곧 군중심리가 만드는 기세에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무조건 보급이 강한 쪽이 이긴다.
로마는 불리할 경우.. 거미줄처럼 연결된 아피아가도의 보급선을 믿고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때 까지 끈기있게 기다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보급이 강한 로마군은 지치는 법이 없다. 적이 지치면 격파한다.
이 정도면 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같은 로마군끼리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때도 역시 로마군이 승리한다.
안토니우스를 비롯하여 많은 로마의 맹장들이 로마를 떠나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스 등에서 군대를 모아 로마군의 몇 배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똑 같은 로마식 전술로 로마와 싸웠지만 로마에 패배하고 있다.
왜 로마와 로마가 싸울 때도 로마가 강한가?
힘이 대등할 경우 명분이 있는 쪽이 이긴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분일까? 공화정의 수호가 명분인가? 황제의 적통을 이어받음이 명분인가? 더 많은 속주와 자유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명분이 되는가?
우습게도.. 당시 최고의 명분은 로마와 지리적인 거리가 가까운 정도가 결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같은 로마군 끼리 로마 밖에서 전투를 벌일 경우 로마와 가까운 군대가 명분을 얻어 승리하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명분이라는 것이 도무지 무엇인지 검토해봐야 한다. 왜 로마와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 명분이 되는가?
한나라당의 3연속 삼진
한국인들만큼 정치에 관심있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진지하지 않다. 침을 튀겨가며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지만.. 실제로 정치를 알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은 이 나라에 많지 않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를 혐오한다. 그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참여적인 관심이 아니라 ‘정치가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냉소적인 관심이다. 한국인들은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정치혐오증에 편승하여 정치에 침을 뱉고 정치판에 불을 질러 버리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허경영식 전술로 일관하는 바보들이 있다. 한나라당이다.
아무리 정치가 밉더라도 희망은 정치에 있다. 정치 그 자체에 불을 질러서는 안된다.
로마사의 많은 장면들에서 그러하다. 아무리 로마가 썩었어도, 아무리 자기네가 그럴사한 명분을 가졌다 해도 로마 안에서 싸워야지 로마에 등을 돌리고, 로마를 뛰쳐나가서, 로마 밖에서 군대를 편성하는 즉시 반로마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공화정이 명분이 아니다. 카이사르의 족보도 명분은 아니다. 속주와 식민지 및 자치도시들의 지지도 명분이 아니다. 가장 큰 명분은 그 겨누어진 칼 끝이 어디를 가리키느냐이다.
이철우의원에 대한 모함이 다 무엇인가? 국회의원이 국회에 폭탄을 던진 것이다. 세상에.. 자기들이 사는 집에 불을 질러서 어쩌자는 것인가? 이보다 더 미친 짓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을 향하여 칼을 겨눈 한나라당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혐오한다는 이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정치에 기대를 걸면서도 정치를 비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이 혐오보다 크다. 기대가 냉소보다 크다.
겉으로는 ‘에이 마누라 꼴도 보기 싫어’, ‘영감쟁이 어디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고 무뚝뚝하게 대꾸하지만 그 심중에 된장뚝배기같은 묵은 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이런거다.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과 북한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한국인은 둘 다 선택한다.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당에 투표했고, 북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나라당을 찍었다. 그것은 자동차에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가 공존하는 것과 같다.
왜 정형근 따위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했을까? 그들은 귀찮았던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짜증났던 것이다. 정형근이 적절히 브레이크를 걸어준다면.. 내가 정치에 무관심한 채로 있어도 우리당이 나 모르게 폭주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정형근을 선출한 것이다.
브레이크는 브레이크다. 그 자동차를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정형근이 촐랑거리고 전면에 나서기를 원하는 유권자는 한나라당 안에도 없다. 정형근은 음지에 있을 때 한나라당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1) 로마군은 교범 위주의 전쟁을 한다.
2) 교범 위주의 전쟁을 할 경우 바둑의 정석과도 같아서 우연성이 배제된 결과 미세한 실력차이에 의해 확실한 승부가 난다.
3) 같은 로마군 끼리 싸울 경우 명분이 있는 쪽이 승리한다.
4) 로마 밖에서 로마를 향해 칼을 겨눈 군대가 명분을 잃는 경향이 있다.
5) 한나라당은 국민 다수의 정치혐오증에 편승하여 이를 명분으로 착각하고 로마를 향해 칼날을 겨누는 우를 범하였다. 이 경우 가족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생존본능이 작용하여 한나라당을 망하게 한다.
생각하라! 가족의 보호보다 더 큰 명분이 있다는 말인가?
희망이 냉소보다 울림이 크다. 결국은 길이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총력전으로 가면 무조건 우리가 승리한다.
지난해 재신임 때 부터 똑같은 방식이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당이 먼저 지지도 하락을 무릅쓰고 아슬아슬하게 국면을 가져가면, 참지 못한 한나라당이 돌연 폭주하여 미친듯이 날뛰며 대한민국을 향해 칼날을 겨눈다.
먼저 정치를 사랑하라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났다. 형과 동생이 서로 명분을 주장한다. 여론은 수시로 변한다. 형이 지지를 받는가 하면 동생이 지지를 받기도 한다. 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가?
가족을 등지고 싸우는 쪽이 이긴다. 가족을 향해 칼 끝을 겨누는 순간 그 어떤 명분도 소용없는 것이다.
재신임, 탄핵, 그리고 이번 사건의 공통점은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치혐오증에 편승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향하여 칼끝을 겨누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에 경고한다. 당신네들은 곧 죽어도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정치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라. 의회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건 당신네들이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들은 정치할 자격이 없다.
도무지 정치를 모르는,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 한나라당 초재선들이 문제다. 우리당은 초선이라도 학생운동 경험이 있어서 그걸로 정치를 배웠다는 점이 다르다. 한나라당 초선들은 진짜 정치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