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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19 vote 0 2004.12.09 (20:07:35)

울트라뷰에 있는 열불님의 글을 부분 인용합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대통령이 아르빌을 방문한 다음날, 가장 씁쓸한 논조로
의견을 개진한 두 신문이 경향과 데일리섶이다.
경향은 ‘[사설] 盧대통령 이라크 방문 잘못됐다’ 로
데일리섶에는 김경혜기자가 '대통령의 씁쓸한 자이툰 방문'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다.
 
전문보기는 클릭을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대략 난감합니다. 경향사설과 김경혜기자의 지적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글쟁이 특유의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왜 한나라당은 날이면 날마다 오판을 저지르는가? 다른거 없습니다.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기 때문이지요. 조중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유연한데 그들은 굳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이유지요.
 
지금은 인터넷시대입니다. 피드백이 중요합니다. 글쟁이가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 현장성 있는 유연한 글을 쓰려면 내공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영화에 비유해 보지요. 관객인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그저 재미있는 영화를 볼 뿐입니다. 변덕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영화관객들 만큼 변덕스러운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평론가들이 문제입니다.  평론가들이 극찬한 영화는 대개 흥행이 죽을 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제작사 측에서 평론가들에게 ‘제발 별 셋만 달라’고 읍소를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평론가들에게 문제가 있는가? 평론가들은 민노당 논객들처럼 심사가 배배꼬인 삐딱한 사람들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평론가는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관객의 시선과 평론가의 시선 그리고 감독의 시선이 있습니다. 경향사설과 김경혜기자는 평론가의 시선으로 보았습니다.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평론가들은 어떻게든 관객을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조폭마누라를 재미있게 본 수백만 관객을 바보취급 해버리지요.
 
관객들의 태도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감독들이 관객들의 기호에 영합하면 한 두편은 어떻게 흥행에 성공할지 몰라도 영화시장이 통째로 붕괴하는 수가 있습니다. 홍콩영화가 괜히 무너졌겠습니까?
 
예컨대 이런거죠. 거리에서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의 비교 시음회를 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행인의 눈을 가리고 콜라의 맛을 비교해 보게 합니다. 대부분 펩시콜라가 더 맛있다는 판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더 많이 마실까요?
 
코카콜라가 햄버거와 피자 등 패스트푸드와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맛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음식과의 조화로 판단합니다. 맛 보다 궁합이 우선이지요. 예컨대 된장은 맛이 없지만 밥과 궁합이 맞지요.
 
‘액션영화가 재미는 있지만 이미 두어편 봤으니 이번에는 멜로영화를 보자.’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궁합입니다. 그 궁합은 영화에 내재한 작품성의 가치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인 요인들로 이루어집니다. 잘 만들지 않은 영화가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왜 영화가 관객의 기호에 영합하면 안되는가? 보리음료 맥콜의 흥망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맥콜은 한때 시장이 붕괴했으나 최근 다시 시판됨.)
 
당시 경쟁업체들이 보리텐, 보리보리, 보리콜 등 아류를 무지막지하게 시장에 풀었지요. 아류업체들은 설탕을 왕창 넣는 얍삽한 방법을 씁니다. 맛으로 비교하면 아무래도 단맛이 강한 아류가 더 낫지요.
 
맥콜은 위기를 느끼고 시장의 흐름(?)을 쫓아 달짝지근한 맥콜을 만들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경쟁업체들이 담합해서 ‘주윤발의 사랑해요 밀키스’ ‘왕조현의 반했어요 크리미’로 뒷통수를 때려버립니다.
 
맥콜의 ‘은근한 맛’이라는 본질을 아류들이 달콤한 맛이라는 화장발로 기만한 것입니다. 경쟁업체들이 일제히 더 달콤하고 자극성 있는 우유탄산음료를 내놓고 보리음료를 매장에서 빼는 방법으로 보리음료 시장을 붕괴시켜 버린 것입니다. 한 방에 넘어갔지요.
 
예컨대.. 극장가에서 조폭영화가 인기라 칩시다. 영화사들이 너도나도 흥행이 된다는 조폭영화만 만들면 일시적으로 관객 수는 늘지만 관객층은 점차 좁아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여성관객이나,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관객들이 떠나고 조폭영화를 좋아하는 청소년 관객만 남지요. 이 상황에서 헐리우드 영화가 멜로물로 공습을 때려버리면 한국영화는 박살이 납니다.
 
80년대 변강쇠전, 가루지기전 등 고전에로붐으로 국산방화시장이 붕괴한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에로영화가 일시적으로 관객을 늘리지만 장기적으로 관객층을 좁혀서 관객들이 전반적으로 극장가를 떠나게 만듭니다. 거기에 비디오시장이라는 결정타를 맞고 완전히 뻗어버린 것입니다.
 
어느 분야를 가도 그 분야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주류가 있고 본질이 있습니다.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할 곁가지들이 본질을 압도하게 되면 시장의 토대가 붕괴되는 수가 있습니다.
 
'안티조선 우리모두'는 동호회의 지나친 활성화로 본질인 쟁토방이 죽어서 사이트가 썰렁해진 경우로 저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노하우21에서 볼 수 있는 지나친 친목의 강조도 좋지 않습니다. 
 
주와 종을 구분해야 합니다. 양자 사이에 건강한 균형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서프라이즈에 댄다면 노짱방과 대문칼럼 그리고 서프랑의 균형이지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뉴스≫동호회≫유머’의 서열구조입니다. 이 관계가 뒤집어지면 안됩니다.
 
바다가 넓어야 고래가 산다
조폭영화에만 관객이 든다 하더라도 안팔리는 멜로영화나 작가주의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관객들이 조폭영화에 식상했을 시점에 있을 헐리우드의 융단폭격을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궂은 일을 해줄 것인가입니다. 누구는 흥행영화를 해서 돈을 갈쿠리로 긁어모으고 있는데 누가 흥행도 안되는 작가주의영화를 해서 한국의 영화시장을 지켜갈 것인가입니다. 이건 굉장한 딜렘마지요.
 
정리하면
 
● 관객의 시선과 평론가의 시선 그리고 감독의 시선이 있다. 다양한 시선을 거부하고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강조하면 편식효과가 나타나 건강을 해친다.
 
● 평론가들은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 경우 현장성을 잃고 전략적 유연성을 상실하게 된다. 원칙에 얽매이는 고지식한 판단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항상 현장을 살피고 독자들과의 피드백을 이어가야 한다.
 
사실이지 평론가들의 90프로는 조중동 이상으로 뻣뻣합니다. 늘 관객의 수준을 탓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영화를 예찬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화를 알아보는 10프로의 진짜를 위하여 평론가의 시선은 존중해야 합니다.
 
조폭영화 마니아를 추종하다 망한 남프라이즈, 평론가 우대하다가 망한 시대소리, 기획사의 입김이 지나친 프레시안들의 오류를 극복하고 서프라이즈는 황금비례의 건강한 길을 가야합니다.
 
최후의 진실은 무엇인가?
중심이 1 만큼 움직이면 주변은 10 만큼 움직입니다. 중심의 1은 감독인 노무현대통령이고 주변의 10은 논객을 자처하는 말 많은 평론가들입니다.
 
바다가 넓어야 고래가 살 수 있습니다. 노무현호를 띄우는 것은 눈팅들의 바다입니다. 작은 만이나 복잡한 항구에서는 선장의 판단에 의지하지만 거대한 바다 위에서는 바다 그 자체가 결정권을 가집니다.
 
서프라이즈는 복잡한 항구를 빠져나온 거함과 같습니다. 눈팅의 바다에 떠 있으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선장은 그 바다의 깊이와 크기를 믿어야 합니다.
 
잘나가던 맥콜이 한 방에 무너진 이유는 맥콜과 궁합을 맞출 다른 음식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의 아성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궁합을 맞출 패스트푸드가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평론가들은 진보에서 보수까지 다양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글쟁이’라는 획일성에 지배됩니다. 눈팅들이야말로 진보, 보수를 떠나 진정한 다양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눈팅들과 궁합을 맞추느냐에 서프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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