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모든 과정은 선으로 그어놓은 테두리를 보지 말고 관측자와 관측대상 혹은 작용과 반작용의 대칭구조
그 자체를 살펴야 한다. 선은 임의로 그어서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
밀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물체를 관측하는 그 자체로 밀도성립이다. 또 힘을 작용
시키는 그 자체로 이미 밀도는 성립하고 있다.
정육면체를 관찰할 때 인간의 눈과 정육면체의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정육면체가 만들어진다. 두 정육면체
를 통일하는 계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밀도다.
두 당구공을 접촉시키면 닿는 점이 보이고, 공을 던져보면 날아가는 선이 보이고, 바위를
망치로 때리면 갈라지면서 쪼개진 단면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과 선이 보이지 않는다. 두 당구공 사이에 잉크로 점을 찍지 않는 한 점은
인간의 생각속에 있다. 공이 날아가는 선도 생각속에 있다. 허공에 선이 그어지는 일은 없다.
점과 선이 실제로는 없으므로 면도 없다. 실제로 힘의 작용은 각으로 일어난다. 보이지 않지
만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주로 보는 선은 사물의 테두리 선이다. 실제로 거기에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가 해석해서 테두리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물체를 충돌시켜 보면 점과 선과 각이 만들어지듯이 입체도 만들어진다. 힘의 밸런스가
보이지는 않아도 입체를 이룬다.
최종적으로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닫힌계를 성립시켜 내적으로 균일한 밀도의 평형을 이
룬다. 허공에도 사물에도 기본적으로 힘이 걸려 있음을 아는 것이 밀도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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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차원 개념은 면은 선 곱하기 선, 혹은 선분의 제곱.
부피는 선 곱하기 선 곱하기 선, 혹은 선분의 세제곱으로 표현한다.
가로, 세로, 높이의 세 선이 전부 다르다.
'선의 선'과 '선곱하기 선의 선'은 위상이 다르다.
선 1과 선 2는 다르다.
그냥 선과 선을 품은 선으로 두번째 선은 전혀 다른 선이다.
동양식 산술에서 가감승제의 승수(乘數)는 '올라탄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입체의 가로세로높이를 이루는 '심 1과 날 2'의 구조에서 세 선분의 위상이 각각 다르다.
하나는 선이고, 둘은 그 선에 올라타는 선이고, 셋은 그 날2에 동시에 올라타는 심 1이다.
심은 날을 올라타고, 날 1은 날 2를 올라탄다.
2층이 1층 위에 올라타듯이 태우고 가는 것이다.
윳놀이에서 여러 말을 한 동에 태우고 가듯이 아기를 무등태우듯 태우고 간다.
심 1은 날 2를 태우고 가는 것이다.
밀도(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과 평형)는 심을 태우고
심은 날을 태우고 날 1은 날 2를 태우고
날 2는 자리를 태우고 간다.
결론적으로 구조론의 공간개념은
선, 면, 입체의 3차원을 가운데 두고 거기에다 시작과 끝을 추가한 것이며
이들 셋의 위상을 깔리는 쪽과 올라타는 쪽으로 구분하고
왜 올라타는지를 규명해 놓은 것이다.
심이 날을 올라타는 것이 구조다.
올라타는 1은 태우고 가는 2를 해결한다.
그림판에서 사각형을 그릴 때
마우스를 사선으로 끌어주면 가로세로가 동시에 생기듯이
1로 2를 동시에 해결해버리는 것이 올라타는 것이다.
구조의 대칭성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심과 날의 대칭성에 의해 올라타기는 가능하다. 심이 날을 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