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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147 vote 0 2004.11.03 (19:35:46)

빈 라덴이 이겼다. 테러범이 이겼고 깡패가 이겼다. 정글의 법칙이 이상주의를 이겼다. 노예와 노예주들이 결속하여 자유인들을 추방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여기서 졌다. 반성하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식의 정치적 발언은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전선을 포기하고 바깥에서 더 큰 싸움판을 열어가는 일 뿐이다. 아마 나는 그래도 승리하지 못하겠지만 더 저변을 넓히고 더 많은 우리편들을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나의 못다한 임무를 이어가게 할 것이다.
 
정치는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다. 어쩌면 스트레스와의 싸움에서 졌는지도 모르겠다. 진작부터 계획해 왔던 일이지만 당분간은 정치색을 줄이고 사람냄새 나는 글을 써볼 계획이다.
 
터 닦아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릴 터
흑인이 백인과 경쟁하여 이기는 유일한 길은 인구를 늘리는 방법 뿐이다. 적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면, 적과 경쟁하여 이기지 못한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다.

 
아직 피아간에 편이 결정되지 않은 새로운 세대를 발굴하고 거기에 뛰어들어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방법으로 잠재적인 우리편의 숫자를 늘려가는 수 밖에 없다.
 
일제 35년도 버텨왔는데
우리의 선조들은 일제 치하의 35년도 버텨왔다. 난리통에서 또 독재 치하에서도 살아내기에 성공했다. 그때는 몰랐다. 어려서는 세상이 다 내편인지 알았다. 머리가 굵어지고 난 다음에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배신이었음을.

 
누구도 내 친구는 아니었다. 배신당하느니 내 쪽에서 먼저 절교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나는 세상과 친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은 모색의 끝에 작은 희망을 발견했고 그걸로 빌미삼아 나는 다시 세상에 돌아왔다.
 
그러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이만하면 살아볼 만큼은 살아본 셈이다. 신통한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후회할 일도 없었다. 이 언저리에서 나의 한계를 본 느낌이다. 이 선에서 1라운드의 종료를 선언하고 평가와 기록에 전념할 생각이다.
 
커다란 집을 한 채 지을 것이다. 그 집은 아마 나에 의해서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설계도만 그릴 생각이다. 터만 닦아볼 계획이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내 미완성의 터를 발견하고 안타까움 느껴줄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최종결론.. 깡패와 테러범의 승리.. 개인적으로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준 격이라고나 할까..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예정되었으나 정치에 대한 과도한 개입 때문에 미루어왔던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의인 김대업님을 환영하며
(데일리 서프라이즈 파워온라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노무현정치의 본질을 ‘다이내미즘’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한국인들은 지금껏 이처럼 다이나믹한 정치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노무현정치의 역동성을 가능케 한 것은 민중의 자발적 참여다.
 
거기에 필자가 주장해 온 ‘노무현 정치의 계급성’이 숨어 있다. 변방의 가용자원이 총동원 되고 있다. 수면 하에 잠복해 있던 다양한 세력들이 지분을 주장하며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가깝게로는 헌재의 정치적 커밍아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이전에 ‘노빠’라 불리는 네티즌세력의 전면적인 등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변방의 세력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소소한 마찰들이 일어난다.
 
그들의 거칠음, 익숙하지 않음, 매너없음, 생경함들 때문에 새로운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이에 유권자들의 스트레스가 유발된다. 그 덕분에 노무현정부는 참으로 인기없는 정부가 되었다.
 
이는 어차피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통과의례다. 더 많은 세력이 참여하므로서 궁극적으로 정치판의 파이는 커지고 장기적으로 판은 안정화 된다. 음지에 잠복해 있던 불안요소들이 노출되면서 더 예측가능한 정치가 되어가고 있다.
 
요는 그 과정에 나타나는 소소한 오류들을 용해시켜 낼 수 있는 역동성이다. 그러한 활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저변의 넓음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그러한 대단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자문해야 한다.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한 바깥에서의 서투르고 이질적인 존재의 개입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들을 환영하기는 커녕, 그 새로운 정치세력의 매너없음에 짜증을 내고 있지는 않은가이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아는가?
남미의 어느 독재국가에서 서방국가의 종군기자 두 사람이 반정부 게릴라에 납치되었다. 그들은 정부군의 총격을 받아 이틀 전에 사망한 반군 지도자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허위사실을 보도해주기를 요구받는다.
 
두 기자는 기자정신을 어기고(?) 기꺼이 반군의 거짓에 협력한다. 죽은 시체를 일으켜 앉혀 놓고, 반군 지도자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실린 정부측 신문의 1면과 함께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찍는다.
 
죽은 반군 지도자와 가상의 인터뷰를 한다. 그 기사에 힘을 얻은 민중의 봉기가 일어난다. 독재정권은 붕괴하고 민주주의가 승리한다. 대략 이런 내용의 실화에 바탕한 영화가 있었다. 20년 쯤 전에 텔레비젼 흑백화면으로 본 기억이다.
 
그 기자들의 보도는 거짓된 것일까? 기자들이 독자를 속인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진실이 텍스트에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정의가 헌재의 판결문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사실은 토막나고 단편적인 것이며 진실은 맥락을 수용한 총체적인 의미에서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회창의 두 아들은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그쪽 동네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병역을 기피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인간들만 한나라당에 쪼로록 모여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들이 그러한 방법으로 대한민국 안에 특권계급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케리는 전쟁영웅이고 부시는 도망병이다. 혹자는 부시는 도망치지 않았으며 그것이 사실(fact)이라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부시는 도망병이다. 그것이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이다.   
 
반군의 조작에 협력한 그 보도는 물론 비판받아야 할 허위이지만 그 이전에 반군의 납치가 있었고 그 이전에 독재정권의 쿠데타가 있었다. 선과 악은 그 개별적인 행위들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주고받는 상호과정에서 개별적인 사실의 의미는 용해되고 만다. 총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김대업님의 진실을 수용하라
김대업님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김대업님은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가 김대업님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정의가 아니다. 김대업님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변방의 가용자원을 수용하는 태도가 아니다.
 
누가 김대업님의 유죄를 판결했는가? 이회창의 아이들이 판결하고 있다. 이러한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한다. 김대업님의 일부 불투명한(?) 어법에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을 낸다면 계급적 정체성이 결여된 즉  잘난 지식인의 허위의식일 수 있다.
 
언론운동을 한다는 사람 중에도 일부 이상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다. 2년전 연평총각의 발언이 주체문예소조의 작품이라고 우긴 진중권류, 뜬금없이 SBS를 편들고 있는 모범 사외이사 김동민류가 그렇다.
 
물론 그들의 발언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방식의 출현에 낯설어 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는 먹물들의 짜증이라고 본다.
 
김동민의 본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부터 잘하자는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변방에서의 가용자원들이 성난 파도처럼 몰려올 것이다. 그들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무장하고 난폭하게 개입할 것이다.
 
잘난 먹물들이 그들을 괄시하고 배척한다면 노무현정치의 본질인 다이내미즘에 맞지 않다. 포용력 부족이다. 그따우 속좁은 태도로 대응해서 변혁은 애초에 무리다.
 
NLL과 관련한 연평총각의 발언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에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다. 인터넷으로 한번 길이 뚫렸기 때문에, 제 2 제 3의 연평총각들이 불확실한 팩트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막을 수 없다.
 
MBC 신강균의 '사실은..’이 일부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호간의 공방이 있을 것이며 시청자들은 전체를 보고 판단한다. 팩트가 틀린 MBC가 1라운드에서 진다해도 본질이 썩은 SBS와 장기전으로 가면 2라운드에서 역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적들보다 더 깨끗하고 더 순결하기 때문에 옳다는 발상은 결국은 기득권의 이른바 법치주의 이데올로기에 맹종하는 짓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과 함께 큰 길을 가자
개혁이란 무엇인가? 막힌 것을 뚫는 것이다. 금제되었던 변방의 가용자원들이 일제히 쏟아져 들어온다. 그들은 예의가 없다. 기어이 룰을 바꿔놓는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그렇게 쏟아져 들어온 대중과 함께 큰 길을 가는 것이다. 사소한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장길산의 무리들이 조정의 양반들 보다 더 결백하고 더 신사이고 더 정의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장길산의 오류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많은 대중을 투입하는 것이다. 장길산이 100명을 지휘할 때는 사기꾼일 수 있지만, 100만명을 지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길산의 정의는 장길산의 무오류가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 100만명이라는 숫자가 보증한다.
 
왜인가? 거짓으로는 결코 100만명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개입과 능동적인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기계적인 균형을 추구하여 우리편이 아무런 일도 못하게 발목을 잡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의인 김대업님을 지지하며
우리는 그에게 유능한 변호사를 붙여주지 못했고 여론을 몰아주지 못했다. 이회창의 아이들과 홀로 싸우는 김대업님의 전술은 훌륭하지 못했다. 우리는 옳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단지 승리하지 못했을 뿐이다.

 
조선일보가 악의적으로 오보를 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며, 우리는 오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발상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사회는 발전하고 있다. 그 발전하는 곳에서 정보가 나온다. 조선일보는 그 발전하고 있는 정보원들에 많은 촉수를 심어놓고 있다. 우리가 밀리는 이유는 이 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에 우리의 촉수를 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조중동이 밀리는 이유는 인터넷의 주요 정보생산자들이 조선일보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정보생산자들이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본질의 차이가 중요하다.
 
사회는 발전하고 있다. 가장 역동적인 호흡이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측하라. 기업에도 있고 군(軍)에도 있고 관료집단에도 있다. 조선일보는 그 정보생산자들에 촉수를 심어놓고 그들을 컨트롤하고 있다. 그것이 본질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방법은 하나 뿐이다. 우리가 직접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보 소스는 어디서 나오는가? 군(軍)과 관료와 기업은 조중동이 먹은 지 오래이다.
 
우리의 경쟁력은 김대업님과 같은 변방의 가용자원에서 얻어진다. 그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변방의 자원들을 적보다 한걸음 먼저 발굴하고 또 포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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