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데모가 유권자를 설득해서 우리나라가 민주화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 데모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손해다. 표만 떨어진다. 시위를 한번 하면 10만표가 날아가고 두번하면 50만표가 날아간다.
우리는 시위를 통해 국민을 설득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데모하면 노동자들은 오기가 발동해서 악착같이 전두환 찍는다. 역효과만 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민주화에 성공했는가? 다른거 없다. 이유는 둘이다. 첫째는 민주적인 선거 그 자체를 했기 때문이다.(전두환 때는 엄밀한 의미에서 선거가 없었다.)
둘째는.. 이것이 진짜인데(밑줄 쫙이다).. 데모를 해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관망하고 있던 중도파들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때 그시절 데모를 하던 그 대학생들이 학교 졸업하고 유권자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정답을 말하자. 데모는 유권자를 설득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의 반감만 불러 일으킨다. 데모는 비상시에 최종적으로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수단이거나, 혹은 우리 자신을 무장시키는 수단이다.
80년 광주 이후 민주화운동이 무려 20년이다. 20년이면 긴 세월이다. 그때 그시절 데모하며 대학 다녔던 그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유권자들의 평균학력이 높아진 것이,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본질에서의 이유이다.
그 20년 동안 엄청난 숫자의 의식화된 유권자집단이 새로이 사회에 공급된 것이다. 87년의 넥타이부대가 다 무엇인가? 70년대 말 돌멩이 들었던 그 대학생들이 80년대 넥타이부대로 변신한 것이다.
알아야 한다. 중도파가 설득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무장한 것이다. 이게 진짜다.
무엇인가? 조용기들의 데모는.. 시청앞에 모인 10만명을 확실한 수구로 무장하는데 성공하겠지만.. 대신 그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들을 적으로 돌리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한나라당 지지율은 크게 곤두박질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시위를 하면 할수록 이익이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그 어린 10대들이 곧 유권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참여해 본 경험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촛불시위는 자랑할 만한 성공사례다. 그 성공의 체험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그거 자랑하다가.. 주위의 친구 10명을 설득해서 우리편으로 만든다. 이런 성공의 체험이 필요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시위를 할수록 손해다. 유권자의 반감만 불러 일으킨다. 그들의 시위에는 새롭게 유권자층에 진입할 10대들과 대학생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시위는 역효과를 낸다. 그래도 우리는 이 손해보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왜인가? 그것으로 유권자를 설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자신을 무장시킬 수는 있기 때문이다.
노사모나 서프라이즈도 마찬가지다. 당장 노사모 해체하면 대통령 지지율 5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은 무장해제와 같다. 노사모는 찌질이와 꼴통들을 계몽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무장시키는 수단이다.
노사모가 시끄럽게 굴어서 대통령이 지지율 5프로 손해보더라도, 개혁전사 10만명 양성하면 정권재창출이 거뜬하다.(지지율은 심리게임에 불과. 현혹되지 말기를.)
변희재씨의 경우
튀고 싶어 안달난 사람 있다. 소원 풀어줘야 한다. 튀고 싶은 사람은 튀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변희재씨의 경우가 그렇다. ‘연애저널리즘’이라는 틈새시장을 발굴하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시장은 된다.
문제는 그가 그 길로 곧장 가지 않고, 왜 잠시나마 서프라이즈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서프라이즈를 이용하려는 목적이 있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 끝까지 갈 사람이 있고 중간에 옆길로 샐 사람이 있다. 변씨는 처음부터 옆길로 샐 사람이었다. 가짜다. 필자가 지난번 글에서 가짜라고 규정한 것은 이런 거다.
진짜는? 끝까지 갈 사람이다. 노무현이 좋아서 왔다면 가짜다. 그들은 취미생활 즐기러 온 사람이다. 진짜는 무엇인가? 그 동기가 외부에 있지 않고 자기 내부에 있어야 한다.
상승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 있다. 진짜다. 끝까지 간다.
진중권씨도 비슷하다. 그는 안티조선을 이용하려 했다. 성공했다. 그는 원하던 명성을 얻었다. 목표달성하고 안티조선이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지니 침뱉고 떠난거.
외연의 확대에 대해서
료마와 그 일당들은 극소수였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외연확대가 아니다. 동학은 한때 수백만이나 되었지만 의미없다. 양반과 상인집단이 가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외연의 확대인가? 개나 소나 끌어들인다고 해서 외연확대가 아니다. 구색이 맞아야 한다. 떼거리가 많으면 짐이 될 뿐이다. 유사시에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숫자가 많을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 허다한 농민반란이 일어났지만 대개 실패한 이유는? 황건적이든 백련교도이든 태평천국이든 숫자만 많았지.. 다양성이 부족했다.
우리는 어떤가? 다양하다. 우리 안에 노동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다. 공통점은?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계급적 정체성은.. 신분이 노동자든, 소시민이든, 중산층이든 이게 중요한거 아니다.
왜 노무현인가?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노무현이야 말로 먹물 중에 먹물이고 엘리트 중에 엘리트다. 노무현 만큼 출세한 사람 있나? 노무현 만큼 지식있는 사람 있나? 이회창보다 훨 낫다.
문제는 그가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점이다.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모두 우리편이다.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설사 노무현을 지지한다 해도 취미생활에 불과하다.
백범도 마찬가지다. 그는 상놈 출신이지만.. 그 어떤 양반보다도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당대의 어떤 지식인 보다도 많은 지식을 가졌다. 그러나 자신이 상놈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거다.
노무현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고, 이회창은 위에서 아래를 굽어본다. 이 차이가 바로 필자가 말하는 계급적 정체성이다.
손바닥에 굳은 살 박힌 노동자 신분이라 해도 상승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완고한 가부장이 되어서 집안에서 떵떵거리며 큰소리 치고 만족해 하는 노동자는 필요없다. 이미 정신이 죽은 거다.
계급성이란 무엇인가? 직업을 떠나.. 지위고하를 떠나.. 대학을 나왔고 안나왔고를 떠나.. 한번 하늘을 본 사람이다.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이들은 끝까지 간다. 중간에 옆길로 새지 않는다.
말년병장 되어서, 부하들 갈구는 재미로 사는 인간들.. 밖에선 찍소리 못하지만.. 그가 속한 작은 동아리 안에서 큰소리 치며 대접받고 사는 말년병장들 있다.. 직업이 노동자이건 농민이건 의미없다. 정신이 살아야 진짜다.
덧글.. 필자가 한편으로 외연확대를 주장하면서.. 왜 찌질이와 꼴통을 구박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외연은 물론 확대해야지만 주도권은 절대 안내줍니다. 승객자리는 비워두지만 운전대는 확실히 잡고갑니다.
괜찮은 운전기사 하나 키우는데 적어도 3년 걸립니다. 중도보수들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딱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소거법 쓰면 간단합니다. 10만 개혁주체 양성해서.. 명박이든, 근혜든, 학규든 간단히 소거해 버리지요.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 자신을 아래에 두고 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손을 잡을 것. 직업이 노동자라 해도 말년병장 되어서 자기가 소속한 소집단 안에서 왕초노릇 하며.. 작은 기득권에 연연해 하는 자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
우리는 시위를 통해 국민을 설득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데모하면 노동자들은 오기가 발동해서 악착같이 전두환 찍는다. 역효과만 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민주화에 성공했는가? 다른거 없다. 이유는 둘이다. 첫째는 민주적인 선거 그 자체를 했기 때문이다.(전두환 때는 엄밀한 의미에서 선거가 없었다.)
둘째는.. 이것이 진짜인데(밑줄 쫙이다).. 데모를 해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관망하고 있던 중도파들을 우리편으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때 그시절 데모를 하던 그 대학생들이 학교 졸업하고 유권자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정답을 말하자. 데모는 유권자를 설득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의 반감만 불러 일으킨다. 데모는 비상시에 최종적으로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수단이거나, 혹은 우리 자신을 무장시키는 수단이다.
80년 광주 이후 민주화운동이 무려 20년이다. 20년이면 긴 세월이다. 그때 그시절 데모하며 대학 다녔던 그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유권자들의 평균학력이 높아진 것이,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본질에서의 이유이다.
그 20년 동안 엄청난 숫자의 의식화된 유권자집단이 새로이 사회에 공급된 것이다. 87년의 넥타이부대가 다 무엇인가? 70년대 말 돌멩이 들었던 그 대학생들이 80년대 넥타이부대로 변신한 것이다.
알아야 한다. 중도파가 설득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무장한 것이다. 이게 진짜다.
무엇인가? 조용기들의 데모는.. 시청앞에 모인 10만명을 확실한 수구로 무장하는데 성공하겠지만.. 대신 그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들을 적으로 돌리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한나라당 지지율은 크게 곤두박질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시위를 하면 할수록 이익이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그 어린 10대들이 곧 유권자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참여해 본 경험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촛불시위는 자랑할 만한 성공사례다. 그 성공의 체험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그거 자랑하다가.. 주위의 친구 10명을 설득해서 우리편으로 만든다. 이런 성공의 체험이 필요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시위를 할수록 손해다. 유권자의 반감만 불러 일으킨다. 그들의 시위에는 새롭게 유권자층에 진입할 10대들과 대학생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시위는 역효과를 낸다. 그래도 우리는 이 손해보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왜인가? 그것으로 유권자를 설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자신을 무장시킬 수는 있기 때문이다.
노사모나 서프라이즈도 마찬가지다. 당장 노사모 해체하면 대통령 지지율 5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은 무장해제와 같다. 노사모는 찌질이와 꼴통들을 계몽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무장시키는 수단이다.
노사모가 시끄럽게 굴어서 대통령이 지지율 5프로 손해보더라도, 개혁전사 10만명 양성하면 정권재창출이 거뜬하다.(지지율은 심리게임에 불과. 현혹되지 말기를.)
변희재씨의 경우
튀고 싶어 안달난 사람 있다. 소원 풀어줘야 한다. 튀고 싶은 사람은 튀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변희재씨의 경우가 그렇다. ‘연애저널리즘’이라는 틈새시장을 발굴하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시장은 된다.
문제는 그가 그 길로 곧장 가지 않고, 왜 잠시나마 서프라이즈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서프라이즈를 이용하려는 목적이 있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 끝까지 갈 사람이 있고 중간에 옆길로 샐 사람이 있다. 변씨는 처음부터 옆길로 샐 사람이었다. 가짜다. 필자가 지난번 글에서 가짜라고 규정한 것은 이런 거다.
진짜는? 끝까지 갈 사람이다. 노무현이 좋아서 왔다면 가짜다. 그들은 취미생활 즐기러 온 사람이다. 진짜는 무엇인가? 그 동기가 외부에 있지 않고 자기 내부에 있어야 한다.
상승하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 있다. 진짜다. 끝까지 간다.
진중권씨도 비슷하다. 그는 안티조선을 이용하려 했다. 성공했다. 그는 원하던 명성을 얻었다. 목표달성하고 안티조선이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지니 침뱉고 떠난거.
외연의 확대에 대해서
료마와 그 일당들은 극소수였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외연확대가 아니다. 동학은 한때 수백만이나 되었지만 의미없다. 양반과 상인집단이 가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외연의 확대인가? 개나 소나 끌어들인다고 해서 외연확대가 아니다. 구색이 맞아야 한다. 떼거리가 많으면 짐이 될 뿐이다. 유사시에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숫자가 많을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 허다한 농민반란이 일어났지만 대개 실패한 이유는? 황건적이든 백련교도이든 태평천국이든 숫자만 많았지.. 다양성이 부족했다.
우리는 어떤가? 다양하다. 우리 안에 노동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다. 공통점은?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계급적 정체성은.. 신분이 노동자든, 소시민이든, 중산층이든 이게 중요한거 아니다.
왜 노무현인가?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노무현이야 말로 먹물 중에 먹물이고 엘리트 중에 엘리트다. 노무현 만큼 출세한 사람 있나? 노무현 만큼 지식있는 사람 있나? 이회창보다 훨 낫다.
문제는 그가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점이다.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모두 우리편이다.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설사 노무현을 지지한다 해도 취미생활에 불과하다.
백범도 마찬가지다. 그는 상놈 출신이지만.. 그 어떤 양반보다도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당대의 어떤 지식인 보다도 많은 지식을 가졌다. 그러나 자신이 상놈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거다.
노무현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고, 이회창은 위에서 아래를 굽어본다. 이 차이가 바로 필자가 말하는 계급적 정체성이다.
손바닥에 굳은 살 박힌 노동자 신분이라 해도 상승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완고한 가부장이 되어서 집안에서 떵떵거리며 큰소리 치고 만족해 하는 노동자는 필요없다. 이미 정신이 죽은 거다.
계급성이란 무엇인가? 직업을 떠나.. 지위고하를 떠나.. 대학을 나왔고 안나왔고를 떠나.. 한번 하늘을 본 사람이다. 상승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이들은 끝까지 간다. 중간에 옆길로 새지 않는다.
말년병장 되어서, 부하들 갈구는 재미로 사는 인간들.. 밖에선 찍소리 못하지만.. 그가 속한 작은 동아리 안에서 큰소리 치며 대접받고 사는 말년병장들 있다.. 직업이 노동자이건 농민이건 의미없다. 정신이 살아야 진짜다.
덧글.. 필자가 한편으로 외연확대를 주장하면서.. 왜 찌질이와 꼴통을 구박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외연은 물론 확대해야지만 주도권은 절대 안내줍니다. 승객자리는 비워두지만 운전대는 확실히 잡고갑니다.
괜찮은 운전기사 하나 키우는데 적어도 3년 걸립니다. 중도보수들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딱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소거법 쓰면 간단합니다. 10만 개혁주체 양성해서.. 명박이든, 근혜든, 학규든 간단히 소거해 버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