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군이 신기록을 세웠군요. 축하할 일입니다. 우리의 박찬호도 한 이닝 같은 타자에게
두번 만루홈런이라는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세웠으니.. 이칠호군도 생각해보면 귀여운 데가 있어요. 내 아들 같다는 느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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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하는.. 시시한 이야기 되겠습니다. 요는 ‘정체성문제’인데.. 저번에 말한 바 있는 ‘노무현주의’.. 다들 막연히 개혁을 외치고 있을 뿐.. ‘신나게 개혁하자’.. 좋은데.. 멀 하자는 건지.. 일단은 조선일보를 때려잡고 그 다음은?
제가 주장하는 것은.. 정당의 본질인 ‘계급성’입니다. 무엇인가?
한 집안의 역할은 ‘아들 딸 잘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는’ 것입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한 정당의 역할은?
자원은 외부에서 공급됩니다. 이 나라의 정치자원은 신세대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바깥에서 새롭게 공급되는 신규자원입니다.
햇볕이 지구 바깥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므로써 지구상에 생물이 살 수 있듯이.. 바깥에서 새로운 유권자집단이 부단히 공급되므로써 정치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당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들을 제 몫을 해내는 한 사람의 민주시민으로 키워서 ‘신분상승의 경쟁시장’인 사회로 진출시키는 것이 정당의 첫번째 역할입니다.
또 사회의 약자에 속하는 노동자, 농민들을 조직하여 이들이 서슬프런 경쟁의 아수라장에서 상처입고, 소외되고, 금 밖으로 밀려날 때,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여.. 다시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는 역할입니다.
‘젊은이는 키우고 약자는 보호한다’ 이것이 정당의 본분입니다. 그거 안하려면 정당의 존재이유가 없지요.
제 주장은 우리가 이 본분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3년 앞의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 지금.. 막연히 개혁만 외치지 말고.. 더 길게 내다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노무현정권의 계급성’이라는 본질을 살펴야 합니다. 저변에서의 광범위한 신분상승 욕구 말입니다. 그 밑바닥의 욕망들이 요동친 결과로 바닥의 생리를 아는 사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입니다.
지역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80년대라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집있는 사람과 달동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도시민과 농민이 반반이었습니다. 그 경우 블루칼라의 편, 달동네사람의 편, 농민의 편을 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한 집단적 이해관계가 독재정권 하에서는 지역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독재정권이 경상도에 공장을 대거 유치하므로써, 특정지역 블루칼라들의 이해를 충족시켜준 것이지요. 호남은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들도 정치의 본질.. 즉 ‘저변의 신분상승욕구에 응답한다’는 본질에는 충실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의 흐름들은 80년대와는 다릅니다. 과거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이에서 발생했던 갈등이 지금은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달동네는 줄어들었고, 농민은 그 수가 현저히 감소하였으며, 국민의 대부분이 도시민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변한거죠. 작은 변화가 아니에요. 실로 무서운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왜 다시 진보이어야 하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가는가? 노동운동은 경쟁력 없는 중견기업들을 대거 몰락시키고 대기업을 더욱 살찌웁니다.
과거라면 사실 사장님들은 다 배불뚝이였지요. 왜 80년대 사장님은 배불뚝이여야만 했던가? 관료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요정에서 술을 마셔줘야 합니다. 밤마다 공무원들과 술을 퍼마시니 배불뚝이가 될 수 밖에요.
무엇인가? 그때만 해도 뇌물만 잘 바치면 은행돈 끌어다가 쉽게 사장님행세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경쟁력입니다.
경쟁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 재벌들이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는? 경쟁력 없는 중견기업들의 대몰락으로 나타납니다. 삼성, 현대, 포철과 같은 거대기업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됩니다.
좌파가 집권하는 서유럽국가들 보세요. 핀란드의 노키아는 국부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필립스의 네덜란드, 네슬레의 스위스, 볼보와 에릭슨의 스웨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벌의 힘은 갈수록 커집니다. 터무니없이 비대해진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의 힘도 더욱 커집니다. 정부의 힘이 커진다는 것은 ‘방임주의’가 아닌 ‘개입주의’를 채택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의 영구집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적대적 의존관계’입니다.
● 노동운동을 하면 경쟁력 없는 중견기업이 몰락한다.
● 중견기업이 몰락하면 재벌은 독점의 결과로 더욱 비대해진다.
● 비대해진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좌파정부가 들어선다.
● 재벌과 정부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형성한 채 중도좌파의 영구집권을 낳는다.
땅값이 오를수록 재벌이 번다
저변에서의 본질은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양극화현상을 낳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예컨대.. 비유로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노동자의 임금이 비싸서 경영이 어렵다는 말은 중견기업에는 해당될수 있으나.. 재벌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예컨대.. 서울에 땅값이 비싸서 집을 못짓는다는 말과 같지요. 아무리 땅값이 비싸도 서울에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왜? 대신 건물의 층수를 올리면 되니까요.
땅값이 무지하게 올라버리면? 100층이 넘는 고층건물을 지으면 됩니다. 땅값에 비례해서 층수를 올리는 방법으로 재벌은 어떤 경우에도 이윤을 남길 수 있습니다.
영세한 중소기업은 땅값이 싼 변두리에 집을 지으면 됩니다. 재벌은 층수를 올리면 됩니다. 그 중간에 낀 중견기업은? 마땅히 집지을 곳이 없죠. 도태됩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 때문에, 재벌노동자들은 노조가입율과 무관하게(노조가입률은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그 영향권에 있는 재벌노동자는 많음) 커다란 이익을 봅니다. 즉 노동자계급의 양극화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지요.
대신 노동의 기회와 절대량이 증가합니다. 파트타임 노동, 여성의 노동,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 서비스업의 확충이 일어납니다. 또 생필품가격의 인하로 전반적으로는 먹고살게 됩니다. 대신 자녀를 적게 낳고 맞벌이를 해야하는 부담이 있지요.
노무현주의란 무엇인가?
정당의 본질은 계급성에 있습니다. 그 계층간의 갈등이 어느 부분에서 가장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재벌의 힘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도 더욱 늘어납니다.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하는 우리당이 먹는 장세가 계속됩니다.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정당은 영원히 집권할 수 없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독재정권이 서로 비난하면서 장기집권을 하듯이, 재벌과 중도좌파 정당이 서로 비난하면서 실제로는 서로의 힘을 키워줍니다. 이건희와 정몽구가 국부의 반을 창출하게 되면, 이에 공포를 느낀 국민은 우리당을 찍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규제의 거물을 치면 경쟁력없는 중견기업들이 그 거물에 걸려서 희생되고, 첨단의 경쟁력을 갖추고 인재를 독점하고 있는 삼성과 현대, 포철은 무슨 규제를 해도 다 빠져나갑니다.
이러한 본질에서의 변화를 읽고 거기에 대응해 나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당이 영구집권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가정의 역할은 자녀를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는 것입니다. 정당의 역할은 젊은 신세대를 성숙된 민주시민으로 키워 ‘신분상승의 경쟁시장’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그 역할을 포기했다는 것이지요.
보안법철폐나 과거청산이 50대 이상 되는 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에게 유리한 것이지요. 식민지와 독재에 순치된 제 2시민에서, 정상국가의 제 1시민으로 신분상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노예해방도 그렇습니다. 60살 먹은 늙은 흑인노예 입장에서는 해방을 얻어서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노예해방의 본질은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인데 60된 노인이 초등학교를 다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독재와 친일의 청산은 자라나는 젊은이들을 위해 가치있는 것입니다. 여기엔 명백히 신분상승의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인의 법적 지위는 ‘국민’입니다. 국민에서 ‘시민’으로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이지요.
(국민이란 표현은 국가을 개인에 앞세우는 파시즘의 의미가 있음..시민이란 표현은 소로우의 '시민불족종의 권리'를 전제한 민권개념에서의 시민)
과거청산과 보안법철폐는 젊은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상상력와 창의력을 주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독립적인 시민으로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는 정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자녀를 키우지도 않고 시집장가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집안의 가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호통을 치고 고함을 질러댈 뿐이지요. 그들은 불임정당입니다. 그들은 아이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문에는 결혼식이 끊어진지 오래이고, 그들의 마을에서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넘어 필요한 것
원칙과 상식..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스포츠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룰만 얻으면 된다구요? 천만의 말씀..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마을..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끊어진 생기없는 마을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왜 나는 노무현주의를 천명하는가? 노무현정부의 계급성에 주목하라는 말입니다. 계급은 결국 하층계급을 말하고, 이들은 청소년과 노동자, 농민, 여성, 노약자, 장애인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노무현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사회로 진출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회는 경쟁입니다. 전장에 가는데 누구는 총들고 가고 누구는 빈손으로 간대서야 되겠습니까?
원칙과 상식을 넘어 더 높은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입니다. 이념이 곧 동기부여입니다. 제가 노무현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동기부여’를 위해서입니다. 동기부여는 결국 신분상승입니다. 과거청산도 독재청산도 신분상승의 의미가 다분합니다.
세계화는 재앙이지만 동시에 숙명입니다.
이제는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시장입니다. 필연적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몇몇 초거대재벌이 먹습니다. 거대재벌은 거대노조를 낳습니다.(삼성은 노조가 없지만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대우를 개선하므로 효과는 동일)
거대노조와 거대재벌을 동시에 제압하고, 그들의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고 있는 비정규직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정당의 장기집권이 필요합니다. 운명적으로 이 흐름으로 갑니다.
● 본질은 세계화다.
● 세계를 상대하는 초거대기업이 인재와 시장의 독점으로 살아남는다.
● 1차적으로 대기업노동자의 지위가 먼저 향상된다.
● 대기업노조와 재벌의 고래싸움에 사회의 다른 부문이 희생되는 양상이 사회의 주요한 갈등을 낳는 현상이 21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으로 되어간다.
● 거대노조와 재벌을 동시에 제압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주의가 필요하다.
● 이 모델에서는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 정당이 영구집권한다.
필자의 노무현주의는 정당의 본질이 계급성이라는 전제 하에, 앞으로 일어나는 시장에서의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젊은이들, 소외된 이들, 이러한 변화에서 희생되는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본질에서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우리당의 보수화를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당이 이념없는 실용주의로 간다면.. 민노당(지금은 대기업노조의 이익에 복무하는데 충실한..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는)이 다 먹을 밖에요.
왜 계급성인가? 왜 다시 이념이어야 하는가? 왜 노무현주의여야만 하는가? 한마디로 이념이라는 동기부여를 통해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이해 안됩니까?
덧글.. 이런 이야기는 사실이지 더 충분한 배경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대략 간추렸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유발할 표현이 있어서 두렵군요. 더 정리하려 해도 지금은 시간이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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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하는.. 시시한 이야기 되겠습니다. 요는 ‘정체성문제’인데.. 저번에 말한 바 있는 ‘노무현주의’.. 다들 막연히 개혁을 외치고 있을 뿐.. ‘신나게 개혁하자’.. 좋은데.. 멀 하자는 건지.. 일단은 조선일보를 때려잡고 그 다음은?
제가 주장하는 것은.. 정당의 본질인 ‘계급성’입니다. 무엇인가?
한 집안의 역할은 ‘아들 딸 잘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는’ 것입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한 정당의 역할은?
자원은 외부에서 공급됩니다. 이 나라의 정치자원은 신세대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바깥에서 새롭게 공급되는 신규자원입니다.
햇볕이 지구 바깥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므로써 지구상에 생물이 살 수 있듯이.. 바깥에서 새로운 유권자집단이 부단히 공급되므로써 정치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당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들을 제 몫을 해내는 한 사람의 민주시민으로 키워서 ‘신분상승의 경쟁시장’인 사회로 진출시키는 것이 정당의 첫번째 역할입니다.
또 사회의 약자에 속하는 노동자, 농민들을 조직하여 이들이 서슬프런 경쟁의 아수라장에서 상처입고, 소외되고, 금 밖으로 밀려날 때,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여.. 다시 공동체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는 역할입니다.
‘젊은이는 키우고 약자는 보호한다’ 이것이 정당의 본분입니다. 그거 안하려면 정당의 존재이유가 없지요.
제 주장은 우리가 이 본분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3년 앞의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 지금.. 막연히 개혁만 외치지 말고.. 더 길게 내다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노무현정권의 계급성’이라는 본질을 살펴야 합니다. 저변에서의 광범위한 신분상승 욕구 말입니다. 그 밑바닥의 욕망들이 요동친 결과로 바닥의 생리를 아는 사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입니다.
지역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80년대라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집있는 사람과 달동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도시민과 농민이 반반이었습니다. 그 경우 블루칼라의 편, 달동네사람의 편, 농민의 편을 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한 집단적 이해관계가 독재정권 하에서는 지역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독재정권이 경상도에 공장을 대거 유치하므로써, 특정지역 블루칼라들의 이해를 충족시켜준 것이지요. 호남은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들도 정치의 본질.. 즉 ‘저변의 신분상승욕구에 응답한다’는 본질에는 충실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의 흐름들은 80년대와는 다릅니다. 과거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이에서 발생했던 갈등이 지금은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달동네는 줄어들었고, 농민은 그 수가 현저히 감소하였으며, 국민의 대부분이 도시민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변한거죠. 작은 변화가 아니에요. 실로 무서운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왜 다시 진보이어야 하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가는가? 노동운동은 경쟁력 없는 중견기업들을 대거 몰락시키고 대기업을 더욱 살찌웁니다.
과거라면 사실 사장님들은 다 배불뚝이였지요. 왜 80년대 사장님은 배불뚝이여야만 했던가? 관료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요정에서 술을 마셔줘야 합니다. 밤마다 공무원들과 술을 퍼마시니 배불뚝이가 될 수 밖에요.
무엇인가? 그때만 해도 뇌물만 잘 바치면 은행돈 끌어다가 쉽게 사장님행세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경쟁력입니다.
경쟁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 재벌들이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는? 경쟁력 없는 중견기업들의 대몰락으로 나타납니다. 삼성, 현대, 포철과 같은 거대기업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됩니다.
좌파가 집권하는 서유럽국가들 보세요. 핀란드의 노키아는 국부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필립스의 네덜란드, 네슬레의 스위스, 볼보와 에릭슨의 스웨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벌의 힘은 갈수록 커집니다. 터무니없이 비대해진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의 힘도 더욱 커집니다. 정부의 힘이 커진다는 것은 ‘방임주의’가 아닌 ‘개입주의’를 채택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의 영구집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적대적 의존관계’입니다.
● 노동운동을 하면 경쟁력 없는 중견기업이 몰락한다.
● 중견기업이 몰락하면 재벌은 독점의 결과로 더욱 비대해진다.
● 비대해진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좌파정부가 들어선다.
● 재벌과 정부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형성한 채 중도좌파의 영구집권을 낳는다.
땅값이 오를수록 재벌이 번다
저변에서의 본질은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양극화현상을 낳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예컨대.. 비유로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노동자의 임금이 비싸서 경영이 어렵다는 말은 중견기업에는 해당될수 있으나.. 재벌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예컨대.. 서울에 땅값이 비싸서 집을 못짓는다는 말과 같지요. 아무리 땅값이 비싸도 서울에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왜? 대신 건물의 층수를 올리면 되니까요.
땅값이 무지하게 올라버리면? 100층이 넘는 고층건물을 지으면 됩니다. 땅값에 비례해서 층수를 올리는 방법으로 재벌은 어떤 경우에도 이윤을 남길 수 있습니다.
영세한 중소기업은 땅값이 싼 변두리에 집을 지으면 됩니다. 재벌은 층수를 올리면 됩니다. 그 중간에 낀 중견기업은? 마땅히 집지을 곳이 없죠. 도태됩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 때문에, 재벌노동자들은 노조가입율과 무관하게(노조가입률은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그 영향권에 있는 재벌노동자는 많음) 커다란 이익을 봅니다. 즉 노동자계급의 양극화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지요.
대신 노동의 기회와 절대량이 증가합니다. 파트타임 노동, 여성의 노동,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 서비스업의 확충이 일어납니다. 또 생필품가격의 인하로 전반적으로는 먹고살게 됩니다. 대신 자녀를 적게 낳고 맞벌이를 해야하는 부담이 있지요.
노무현주의란 무엇인가?
정당의 본질은 계급성에 있습니다. 그 계층간의 갈등이 어느 부분에서 가장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80년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재벌의 힘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도 더욱 늘어납니다.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하는 우리당이 먹는 장세가 계속됩니다.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정당은 영원히 집권할 수 없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독재정권이 서로 비난하면서 장기집권을 하듯이, 재벌과 중도좌파 정당이 서로 비난하면서 실제로는 서로의 힘을 키워줍니다. 이건희와 정몽구가 국부의 반을 창출하게 되면, 이에 공포를 느낀 국민은 우리당을 찍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규제의 거물을 치면 경쟁력없는 중견기업들이 그 거물에 걸려서 희생되고, 첨단의 경쟁력을 갖추고 인재를 독점하고 있는 삼성과 현대, 포철은 무슨 규제를 해도 다 빠져나갑니다.
이러한 본질에서의 변화를 읽고 거기에 대응해 나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당이 영구집권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가정의 역할은 자녀를 키워서 시집장가 보내는 것입니다. 정당의 역할은 젊은 신세대를 성숙된 민주시민으로 키워 ‘신분상승의 경쟁시장’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그 역할을 포기했다는 것이지요.
보안법철폐나 과거청산이 50대 이상 되는 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에게 유리한 것이지요. 식민지와 독재에 순치된 제 2시민에서, 정상국가의 제 1시민으로 신분상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노예해방도 그렇습니다. 60살 먹은 늙은 흑인노예 입장에서는 해방을 얻어서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노예해방의 본질은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인데 60된 노인이 초등학교를 다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독재와 친일의 청산은 자라나는 젊은이들을 위해 가치있는 것입니다. 여기엔 명백히 신분상승의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인의 법적 지위는 ‘국민’입니다. 국민에서 ‘시민’으로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이지요.
(국민이란 표현은 국가을 개인에 앞세우는 파시즘의 의미가 있음..시민이란 표현은 소로우의 '시민불족종의 권리'를 전제한 민권개념에서의 시민)
과거청산과 보안법철폐는 젊은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상상력와 창의력을 주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독립적인 시민으로 키워서 사회로 내보내는 정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자녀를 키우지도 않고 시집장가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집안의 가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호통을 치고 고함을 질러댈 뿐이지요. 그들은 불임정당입니다. 그들은 아이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문에는 결혼식이 끊어진지 오래이고, 그들의 마을에서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넘어 필요한 것
원칙과 상식..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스포츠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룰만 얻으면 된다구요? 천만의 말씀..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마을..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끊어진 생기없는 마을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왜 나는 노무현주의를 천명하는가? 노무현정부의 계급성에 주목하라는 말입니다. 계급은 결국 하층계급을 말하고, 이들은 청소년과 노동자, 농민, 여성, 노약자, 장애인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노무현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사회로 진출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회는 경쟁입니다. 전장에 가는데 누구는 총들고 가고 누구는 빈손으로 간대서야 되겠습니까?
원칙과 상식을 넘어 더 높은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입니다. 이념이 곧 동기부여입니다. 제가 노무현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동기부여’를 위해서입니다. 동기부여는 결국 신분상승입니다. 과거청산도 독재청산도 신분상승의 의미가 다분합니다.
세계화는 재앙이지만 동시에 숙명입니다.
이제는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시장입니다. 필연적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몇몇 초거대재벌이 먹습니다. 거대재벌은 거대노조를 낳습니다.(삼성은 노조가 없지만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대우를 개선하므로 효과는 동일)
거대노조와 거대재벌을 동시에 제압하고, 그들의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고 있는 비정규직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정당의 장기집권이 필요합니다. 운명적으로 이 흐름으로 갑니다.
● 본질은 세계화다.
● 세계를 상대하는 초거대기업이 인재와 시장의 독점으로 살아남는다.
● 1차적으로 대기업노동자의 지위가 먼저 향상된다.
● 대기업노조와 재벌의 고래싸움에 사회의 다른 부문이 희생되는 양상이 사회의 주요한 갈등을 낳는 현상이 21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으로 되어간다.
● 거대노조와 재벌을 동시에 제압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주의가 필요하다.
● 이 모델에서는 개입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 정당이 영구집권한다.
필자의 노무현주의는 정당의 본질이 계급성이라는 전제 하에, 앞으로 일어나는 시장에서의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젊은이들, 소외된 이들, 이러한 변화에서 희생되는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본질에서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우리당의 보수화를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당이 이념없는 실용주의로 간다면.. 민노당(지금은 대기업노조의 이익에 복무하는데 충실한..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는)이 다 먹을 밖에요.
왜 계급성인가? 왜 다시 이념이어야 하는가? 왜 노무현주의여야만 하는가? 한마디로 이념이라는 동기부여를 통해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이해 안됩니까?
덧글.. 이런 이야기는 사실이지 더 충분한 배경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대략 간추렸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오해를 유발할 표현이 있어서 두렵군요. 더 정리하려 해도 지금은 시간이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