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신부감을 데려오기만 하면 곧 트집을
잡아서 딱지를 놓습니다.
‘아들은 장가를 가야한다’는 대의에는 어머니도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감은 반드시 내가 정해야 한다며 고집을 피웁니다. 그 어머니 결국 아들 장가 못보냅니다.
결혼을 하는건 아들이지 시어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있습니다.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그 일을 홍위병(?)들이 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식이지요.
이문열의 대인(大人)의식도 그런 경우입니다. ‘내가 인터넷을 안해봐서 모르기 때문에’ 네티즌들을 믿을 수 없다는 식이지요. 최근에는 이문열도 인터넷을 좀 해봤는지 약간 전향된 발언을 내놓더군요.
‘알고보니 네티즌이 그렇게 위험한 집단은 아니더라’고 한마디 하길래 이 양반이 그새 정신 좀 차렸나 싶었더니 또 혼미해져서.. ‘일제 36년간 지배는 국제법상 합법’이라는 망언을 하니 도로아미타불.
보안법은 폐지가 먼저다
이문열이 늘그막에 철이 들려는지 또 바른 말을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마세요. ‘아들 장가는 보내야 한다’는 대의는 이문열도 인정을 하지만.. 막상 며느리감을 선보면 ‘발뒤축이 밉다’며 딱지를 놓곤 합니다.
그게 종가집 시어머니 근성이고 이문열의 대인의식이지요. 이문열이 그래도 작심하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중재안을 내놓긴 했는데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순서가 틀렸습니다.
형법을 보완하고 보안법은 폐지하자는건데 아니지요. 보안법은 일단 철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시청 앞에 인공기가 나부끼게 되고, 우리당이 총선에 지면 그때 가서 한나라당 좋을대로 하라 그러세요.
여당이 야당되고 야당이 여당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닙니까? 빼앗긴 정권은 언제든지 찾아오면 그만, 다수당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한나라당이 다수당 된 다음에 지들 좋을대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문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문인들 중에 이른바 ‘빨갱이’ 아버지를 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만다라’의 김성동과 ‘관촌수필’의 이문구는 남노당 간부의 아들로 부친이 총살당했고 ‘노을’의 김원일과 문제의 이문열은 월북한 아버지를 두고 있지요.
네분 다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연좌제로 몰려 다른 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요. 유일하게 허용된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된거지요. 그러나 네사람의 나아가는 방향은 다릅니다.
분단문학 하면 이문구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익 문인의 대표격인 김동리의 문하에 들어가 개죽음만은 피하고자 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나이의 기개는 꺾여진 겁니다. 그는 길들여져서 약해지고 만 것입니다. 그의 글은 나약하고 감상적입니다.
“내 아버지는 당대의 이상주의자였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헌걸찬 정신을 가지고 장부의 길을 갔다.”고 말한 사람은 김성동입니다. 공희준님 표현대로 ‘기죽지’ 않았습니다. 이게 좋은거죠.
김성동은 특히 여러 면에서 이문열과 대비가 됩니다. 이문열의 모든 소설은 ‘영웅’에 대한 비난 혹은 환멸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영웅’은 아마도 월북한 아버지의 그림자겠지요.
‘연좌제! 빨갱이의 아들!’.. 막다른 골목에 몰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구원을 찾아야겠지요. 김성동은 불교에서 구원을 찾았고 이문열은 기독교에서 찾았습니다. 김성동은 용서와 초월을 노래했고 이문열은 증오와 환멸을 말했습니다.(예수는 사랑하라 했거늘)
해원(解寃)하고 상생(相生)해야 합니다. 이문열은 해원이 안되니 상생도 안되고 있는 경우이지요. 그는 아직도 월북한 아버지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면서 식은 땀도 흘리고 헛소리도 좀 하는지는 저도 알수가 없지만 말이죠.
수구를 하려면 지조있게 일관된 수구를 할것이지 왔다갔다 하는건 또 뭡니까? 그 잘난 대인의식 때문이지요. 나는 대인인데.. 이넘도 내 식구 저넘도 내식구.. 미운 며느리도 내식구인데.. 다 거두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인간이 그릇은 작은데 대인답게 모두 다 아우르려고 하니 동분서주. 부악문원에 제자가 안들어오니 갈팡질팡.
이문열, 지조있는 수구가 되라
이문열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일관되게 영웅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문열의 영웅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르의 시기심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스필버그는 천재일 뿐 거장은 아닙니다. 스필버그라 천재라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거장이지요. ‘조스’나 만들던 재주꾼 스필버그가 답지않게도 역사의식을 담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이유는?
자기도 거장 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지요. 재능 만으로 부족합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이 있어야지요. 거장이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필버그의 재주를 배워가는 사람은 많지만 스필버그의 정신을 흠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장이 되려면 재주만으로 안되고 정신이 올곧아야 합니다.
이문열이 그토록 혼미한 가운데서도 가끔 정신이 돌아온 척 하는 이유는 곧 죽어도 대인(大人)이 되고야 말겠다는 집념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인 못됩니다. ‘불신과 증오와 질투심을 파는 환멸장사’ 해서 절대로 노벨상 못받습니다.
왜 스필버그는 1류가 못되는가?
유홍준의 화인열전에 댄다면.. 스필버그는 단원 김홍도 격이고 코폴라는 능호관 이인상 격이죠. 추사의 표현을 빌면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입니다.
은근한 향의 아우라가 넘치고 있는가 또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굳센 기운이 작품에 서려 있느냐입니다.
하다 못해 오원 장승업의 그림에도 생동감이 넘치고 있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바가 있습니다. 능호관의 그림에는 서릿발 같은 기(氣)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원의 나긋나긋한 그림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그린 단원의 불화들에는 제법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굳이 말하면 기가 없기로 소문난 스필버그도 영화제에서 수상할 목적으로 작심하고 찍은 ‘칼라 퍼플’ 이후로는 약간 기가 비치고 있습니다.)
왜 기가 중요하고 또 향이 중요한가? 왜 문학작품에 ‘울림과 떨림’이 필요한가?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 때문입니다. 두말하면 잔소리로 그것은 ‘이념미’지요. 작품에 반영된 이념미가 없으면 기가 없는 것입니다.
추사가 말한 서권기는 유교주의에 입각한 이념미, 곧 선비정신을 말합니다. 추사의 세한도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기개.
이문열, 영혼이 죽어버린 영원한 2류
1류가 있는가 하면 2류도 있습니다. ‘삼총사’, ‘철가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써서 장안의 지가를 올려놓았다는 뒤마와 ‘적과 흑’의 스탕달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뒤마는 떼돈을 벌었고 스탕달은 소설이 안팔려 가난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모든 작가들이 스탕달을 흉내내게 되었습니다. 사실주의문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고 발자크와 더불어 프랑스의 2대거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문열과 뒤마는 ‘독자를 만드는 작가’이고, 날개의 이상과 스탕달은 ‘작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이문열이나 뒤마의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상이나 스탕달의 작품을 읽습니다.
그래서 1류니 2류니 하는 말이 생겨난 거죠.
앞에서 말했듯이 단지 재능이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릴 뿐 ‘서권기 문자향’이 부족했던 단원 김홍도라도 말년의 ‘염불서승도’나 ‘수월관음도’에 이르러서는 제법 기운이 넘치는 걸작을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스’나 ‘인디애나 존스’ 따위의 흥행영화나 만들던 스필버그도 말년이 되어가니 ‘쉰들러 리스트’ 등 제법 묵직한 작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문열은 여전히 초한지 따위나 쓰고 있습니다. 이건 창의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쓰는게 아니라 단순 노가다작업을 하는 거지요.
천만부를 팔아먹은 작가가 돈이 아쉬워서 노가다 번역업자로 전락하다니 그래서 어느 세월에 대인 되겠습니까?
덧글.. 과거 '우리모두' 시절에 쓴 제 글을 검색해 보니 이문열을 참 많이도 씹었더군요. 이야깃거리는 아직도 태산같이 많지만 글이 산만해 졌으므로 이만 줄입니다.
‘아들은 장가를 가야한다’는 대의에는 어머니도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며느리감은 반드시 내가 정해야 한다며 고집을 피웁니다. 그 어머니 결국 아들 장가 못보냅니다.
결혼을 하는건 아들이지 시어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있습니다.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그 일을 홍위병(?)들이 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식이지요.
이문열의 대인(大人)의식도 그런 경우입니다. ‘내가 인터넷을 안해봐서 모르기 때문에’ 네티즌들을 믿을 수 없다는 식이지요. 최근에는 이문열도 인터넷을 좀 해봤는지 약간 전향된 발언을 내놓더군요.
‘알고보니 네티즌이 그렇게 위험한 집단은 아니더라’고 한마디 하길래 이 양반이 그새 정신 좀 차렸나 싶었더니 또 혼미해져서.. ‘일제 36년간 지배는 국제법상 합법’이라는 망언을 하니 도로아미타불.
보안법은 폐지가 먼저다
이문열이 늘그막에 철이 들려는지 또 바른 말을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마세요. ‘아들 장가는 보내야 한다’는 대의는 이문열도 인정을 하지만.. 막상 며느리감을 선보면 ‘발뒤축이 밉다’며 딱지를 놓곤 합니다.
그게 종가집 시어머니 근성이고 이문열의 대인의식이지요. 이문열이 그래도 작심하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중재안을 내놓긴 했는데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순서가 틀렸습니다.
형법을 보완하고 보안법은 폐지하자는건데 아니지요. 보안법은 일단 철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시청 앞에 인공기가 나부끼게 되고, 우리당이 총선에 지면 그때 가서 한나라당 좋을대로 하라 그러세요.
여당이 야당되고 야당이 여당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닙니까? 빼앗긴 정권은 언제든지 찾아오면 그만, 다수당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한나라당이 다수당 된 다음에 지들 좋을대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문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문인들 중에 이른바 ‘빨갱이’ 아버지를 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만다라’의 김성동과 ‘관촌수필’의 이문구는 남노당 간부의 아들로 부친이 총살당했고 ‘노을’의 김원일과 문제의 이문열은 월북한 아버지를 두고 있지요.
네분 다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연좌제로 몰려 다른 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요. 유일하게 허용된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된거지요. 그러나 네사람의 나아가는 방향은 다릅니다.
분단문학 하면 이문구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익 문인의 대표격인 김동리의 문하에 들어가 개죽음만은 피하고자 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나이의 기개는 꺾여진 겁니다. 그는 길들여져서 약해지고 만 것입니다. 그의 글은 나약하고 감상적입니다.
“내 아버지는 당대의 이상주의자였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헌걸찬 정신을 가지고 장부의 길을 갔다.”고 말한 사람은 김성동입니다. 공희준님 표현대로 ‘기죽지’ 않았습니다. 이게 좋은거죠.
김성동은 특히 여러 면에서 이문열과 대비가 됩니다. 이문열의 모든 소설은 ‘영웅’에 대한 비난 혹은 환멸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영웅’은 아마도 월북한 아버지의 그림자겠지요.
‘연좌제! 빨갱이의 아들!’.. 막다른 골목에 몰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구원을 찾아야겠지요. 김성동은 불교에서 구원을 찾았고 이문열은 기독교에서 찾았습니다. 김성동은 용서와 초월을 노래했고 이문열은 증오와 환멸을 말했습니다.(예수는 사랑하라 했거늘)
해원(解寃)하고 상생(相生)해야 합니다. 이문열은 해원이 안되니 상생도 안되고 있는 경우이지요. 그는 아직도 월북한 아버지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면서 식은 땀도 흘리고 헛소리도 좀 하는지는 저도 알수가 없지만 말이죠.
수구를 하려면 지조있게 일관된 수구를 할것이지 왔다갔다 하는건 또 뭡니까? 그 잘난 대인의식 때문이지요. 나는 대인인데.. 이넘도 내 식구 저넘도 내식구.. 미운 며느리도 내식구인데.. 다 거두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인간이 그릇은 작은데 대인답게 모두 다 아우르려고 하니 동분서주. 부악문원에 제자가 안들어오니 갈팡질팡.
이문열, 지조있는 수구가 되라
이문열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일관되게 영웅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문열의 영웅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르의 시기심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스필버그는 천재일 뿐 거장은 아닙니다. 스필버그라 천재라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거장이지요. ‘조스’나 만들던 재주꾼 스필버그가 답지않게도 역사의식을 담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이유는?
자기도 거장 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지요. 재능 만으로 부족합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이 있어야지요. 거장이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필버그의 재주를 배워가는 사람은 많지만 스필버그의 정신을 흠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장이 되려면 재주만으로 안되고 정신이 올곧아야 합니다.
이문열이 그토록 혼미한 가운데서도 가끔 정신이 돌아온 척 하는 이유는 곧 죽어도 대인(大人)이 되고야 말겠다는 집념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인 못됩니다. ‘불신과 증오와 질투심을 파는 환멸장사’ 해서 절대로 노벨상 못받습니다.
왜 스필버그는 1류가 못되는가?
유홍준의 화인열전에 댄다면.. 스필버그는 단원 김홍도 격이고 코폴라는 능호관 이인상 격이죠. 추사의 표현을 빌면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입니다.
은근한 향의 아우라가 넘치고 있는가 또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굳센 기운이 작품에 서려 있느냐입니다.
하다 못해 오원 장승업의 그림에도 생동감이 넘치고 있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바가 있습니다. 능호관의 그림에는 서릿발 같은 기(氣)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원의 나긋나긋한 그림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그린 단원의 불화들에는 제법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굳이 말하면 기가 없기로 소문난 스필버그도 영화제에서 수상할 목적으로 작심하고 찍은 ‘칼라 퍼플’ 이후로는 약간 기가 비치고 있습니다.)
왜 기가 중요하고 또 향이 중요한가? 왜 문학작품에 ‘울림과 떨림’이 필요한가?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 때문입니다. 두말하면 잔소리로 그것은 ‘이념미’지요. 작품에 반영된 이념미가 없으면 기가 없는 것입니다.
추사가 말한 서권기는 유교주의에 입각한 이념미, 곧 선비정신을 말합니다. 추사의 세한도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기개.
이문열, 영혼이 죽어버린 영원한 2류
1류가 있는가 하면 2류도 있습니다. ‘삼총사’, ‘철가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써서 장안의 지가를 올려놓았다는 뒤마와 ‘적과 흑’의 스탕달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뒤마는 떼돈을 벌었고 스탕달은 소설이 안팔려 가난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모든 작가들이 스탕달을 흉내내게 되었습니다. 사실주의문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고 발자크와 더불어 프랑스의 2대거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문열과 뒤마는 ‘독자를 만드는 작가’이고, 날개의 이상과 스탕달은 ‘작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이문열이나 뒤마의 소설을 읽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상이나 스탕달의 작품을 읽습니다.
그래서 1류니 2류니 하는 말이 생겨난 거죠.
앞에서 말했듯이 단지 재능이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릴 뿐 ‘서권기 문자향’이 부족했던 단원 김홍도라도 말년의 ‘염불서승도’나 ‘수월관음도’에 이르러서는 제법 기운이 넘치는 걸작을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스’나 ‘인디애나 존스’ 따위의 흥행영화나 만들던 스필버그도 말년이 되어가니 ‘쉰들러 리스트’ 등 제법 묵직한 작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문열은 여전히 초한지 따위나 쓰고 있습니다. 이건 창의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쓰는게 아니라 단순 노가다작업을 하는 거지요.
천만부를 팔아먹은 작가가 돈이 아쉬워서 노가다 번역업자로 전락하다니 그래서 어느 세월에 대인 되겠습니까?
덧글.. 과거 '우리모두' 시절에 쓴 제 글을 검색해 보니 이문열을 참 많이도 씹었더군요. 이야깃거리는 아직도 태산같이 많지만 글이 산만해 졌으므로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