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그는 세계의 1/3을 먹었다. 알짜배기 유럽 위주로 먹었으니 거의 7할을 먹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다 인류의 2/3가 단 한 명에게 당해버렸다는 말인가? 그의 콘텐츠와 퍼포먼스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구조론은 인정할 건 인정한다는 주의다. 방향이 맞지 않아도 결과가 확실하면 점수를 준다. 뭔가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알아보자. 기독교는 원래 천국이라는 게 없다. 천국, 지옥, 심판, 천사, 악마 개념은 이란 신앙이다. 굳이 따지자면 조로아스터교다. 짜라투스트라가 인류 정신의 8할을 작업한 것이다. 이슬람교도 페르시아 치하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 조로아스터교는 확실히 콘텐츠가 있다. 뭐 잔뜩 있네. 하긴 발견보다 발명이 돈이 된다는 게 구조론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좋은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좋은 실에 꿰지는 못했다. 짜라투스트라의 원석을 기독교가 잘 가공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사상은 무엇인가? 유태인의 사상은 부활신앙 하나인데 부활신앙은 이집트의 미이라 신앙에서 주워온 것이다. 순수 유태인의 신앙은? 불을 숭배하는 신앙과 희생제사를 바치는 것 정도다. 별거 없다. 유대인은 신이 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유대교의 부활은 천국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이라를 탈출하여 나오는 것이다. 내세부활이 아닌 현세부활이다. 시신을 붕대로 칭칭 감아서 동굴에 잘 보관해 놓으면 영혼이 저승에서 돌아온다. 혹시 영혼이 육신을 못 찾을까봐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어 GPS 좌표를 찍어주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독교의 진짜 3위 일체는 사랑, 죽음, 기도라 하겠다. 짜라투스트라의 콘텐츠에 예수의 콘텐츠를 더한 것이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기독교는 죽음교로 오해되었다. 옛날 성리학자의 비판이 그러하다. 기독교는 현실의 행복을 포기하고 오로지 죽기 위해 살아가는 미친 사교집단이라는 것이다. 엥? 어쨌든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죽음은 힘이 있다. 장례식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카타르시스다. 죽음은 인간을 정화한다. 예수는 죽음이라는 콘텐츠로 사람을 꼬드겼고 이에 인류의 7할이 넘어간 것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인류의 어떤 정곡을 찌른 것이다. 하긴 유교도 제사 지내는 죽음장사 하나로 밥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죽음 콘텐츠는 힘이 있다. 일본 기독교는 결혼식으로 밥 먹고 불교는 장례식으로 밥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불교도 따지고 보면 생전예수재니 49재니 천도재니 해서 죽음으로 밥 먹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은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 공자의 인의는 엘리트를 동원하고 예수의 사랑은 민중을 동원한다. 모든 사람에게 역할을 준다. 게다가 죽음의 부정적 측면을 보완한다. 밝음과 어둠, 사랑과 죽음, 흥분과 정화가 균형을 맞춘다. 사랑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죽음은 인간을 정화시킨다. 흥분을 가라앉힌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다. 유교는 기도를 안 한다. 그런데 어떻게 명맥을 유지했지. 아! 유교도 기도를 한다. 그것이 점을 치는 것이다. 선비들은 조낸 점을 자주 쳤는데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해야 점괘가 맞는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는데 확실히 약발이 듣는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이집트의 부활신앙과 일신교 신앙, 유대인의 희생신앙, 조로아스트교의 천국, 지옥, 심판, 천사, 악마신앙에 예수의 사랑과 죽음 콘텐츠 그리고 거기에 기도가 더해져서 종교성이 강해졌다.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데 다 모아놓으면 제법 퍼포먼스가 된다. 알만하다. 요약하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부활, 희생, 천국, 지옥, 심판, 천사, 악마, 사랑, 기도다. 부활은 이집트의 아이디어, 천국, 지옥, 심판, 천사, 악마는 이란의 것이고, 희생은 유대인의 것이고, 사랑은 예수의 것이고, 죽음은 베드로의 것이고, 기도는 바울의 것이다. 다 합쳐놓으면 풍성하다. 제법 진용이 꾸려진다. 나중 플라톤의 이데아가 더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