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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57 vote 0 2024.12.23 (10:59:08)

    구조론을 현실에 접목시켜 쉽게 써먹는 것이 지정학이다. 지정학이 비단 국가의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업자는 알박기로 좋은 위치를 선점한다. 네거리는 장사가 잘 되고 막다른 골목은 장사가 안 된다. 소비자가 비효율적인 동선을 꺼리기 때문이다. 


    건물에도 지정학은 있다. 손님이 않는 자리가 상석이다. 가게의 손님은 창가자리를 선호한다. 폭력배는 벽을 등지고 자객을 피하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것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구조론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다.


    누구나 투표장에만 가면 지정학적 투표를 한다. 계급배반투표로 알려져 있지만 그게 지정학적 투표다. 개인의 정치성향은 지정학적 이유로 결정된다. 진보와 보수는 갖다붙인 말이고 본질은 사회적 지정학이다. 국토의 지리가 아니라도 계급적 지형과 종교적 지형이 있다. 


    지정학의 시초는 종횡가다. 합종책의 소진과 연횡책의 장의가 유명하다. 이들은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고 물리적 현실에서 답을 구했으니 실사구시다. 한비자도 지정학의 달인이다. 자연은 산맥과 바다로 인간을 가두는데 법가는 법률로 인간을 가두니 구조론과 통한다.


    구조의 깔때기에 갇혔을 때 인간의 행동은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지향하여 물리법칙을 따른다는게 지정학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둘러대는 말이고 본질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일을 한다.


    진나라 재상 범수는 멀리 있는 제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위나라를 치는 원교근공을 주장했다. 비스마르크도 지정학의 달인이다. 멀리 있는 러시아와 친하고 가까운 이웃나라 프랑스를 친다. 멀리 있는 대국과 연결해서 가까운 소국을 깔때기 구조에 가두고 쥐어짠다.


    한국은 멀리 있는 대국 미, 러, 중과 친하고 가까이 있는 소국 일본과 북한을 압박한다. 경상도는 멀리 있는 대국 일본과 손잡고 가까이 있는 소국 전라도를 고립시키려고 한다. 반면 전라도는 멀리 있는 대국 중국과 손을 잡고 가까운 소국 경상도를 고립시키려고 한다.


    구조론은 본능이다. 인간들은 서로 상대방을 깔때기 구조에 밀어넣으려고 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인간들이 투표장에만 가면 지정학을 실천하고 원교근공을 실천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호남과 충청, 수도권이 합종책을 써서 영남을 고립시킨다.


    인터넷 초창기에 여러 분야의 협회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어느 분야든 1강이 존재하고 1강은 협회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협회를 만들면 애플은 불참할테고, 포털사이트 협회를 만들면 구글은 불참하고, 동영상 단체를 만들면 유튜브는 빠지는 식이다.


    1강을 뺀 나머지 업체들이 협회를 만들어 1강의 독과점을 규탄하는게 소진의 합종책이라면 1강이 이들 사이를 이간질해서 합종을 찢어놓는게 장의의 연횡책이다.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와 손잡고 독과점을 피한다. 이런 견제와 균형의 구조는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구조론을 모르겠다고? 당신은 이미 구조론을 실천하고 있다. 연애를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포지션을 선점하려고 하고 축구를 해도 패스받기 좋은 자리로 뛰어간다. 다른 사람을 불리한 위치로 밀어넣는다. 이런 직관적인 판단에서 과학적 원리를 알면 막강해진다.


    지정학은 결과가 명백하므로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성공과 실패가 뚜렷하다. 투표장에서는 다들 지정학의 달인이 된다. 민주당도 국힘당도 지정학으로 집권한게 맞다. 다른 말로는 지역주의다. 우리편을 다수로 만들고 상대방을 소수로 만들면 무조건 선거를 이긴다. 


    미국의 팽창주의를 선동한 자명한 운명Manifest Destiny도 그렇다. 지도를 펼쳐보면 서부로 가고싶어진다. 상대방의 약점을 봤기 때문이다. 멕시코 수도가 너무 남쪽에 있어. 러시아가 얻은 서부 일부가 러시아 본토에서 너무 멀다. 꼬리를 잘라먹자. 입이 근질근질하다.


    구조론은 에너지의 지정학이다. 에너지는 물리적 구조로 나타난다. 산맥과 강과 도시와 바다는 물리적 구조다. 개도 우리에 가둬놓으면 달아나려고 한다. 모든 나라는 달아날 항구를 가지고 싶어한다. 볼리비아는 칠레와 전쟁했지만 져서 항구를 뺏기고 거지가 되었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볼리비아의 1인당 GDP와 칠레의 1인당 GDP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항구를 뺏겼더니 1/4토막이 났다. 다른 이유도 물론 있지만 전쟁까지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풍수지리도 넗게 보면 지정학이다. 바람을 막고 물을 얻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에너지는 관성이 있다. 관성에 의해 전체의 방향성이 정해지므로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계속 미끄러진다. 나는 첫 단추를 잘 꿰어 편하게 가고 상대는 첫 단추를 잘못 꿰도록 유도하여 애먹인다. 일본은 통신사를 끊고 서구의 무역선이 조선으로 못가게 방해공작을 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 신세가 되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결정을 반복하게 된다. 지정학은 에너지의 복원력과 관성력을 이용한다. 무조건 상대방의 반대로 가려는 것이 에너지의 복원력이라면 무조건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 것은 관성력이다.


    도덕적 이유나 논리적 이유가 아니라 물리적 구조를 이유로 행동하는 것이 사회적 지정학이다. 계급, 성별, 피부색, 학력, 세대차이, 종교에도 지정학이 있다. 계급과, 성별과, 피부색과, 학력과, 종교와, 나이가 산맥과 바다가 되어 의사결정이 편한 방향으로 결정한다.


    인간들은 계급과 성별과 피부색과 종교라는 물리적 구조 안에서 합종연횡이 활발하고 원교근공에 분주하다. 다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한다. 왜 호남과 영남의 투표성향이 다른가? 왜 20대 여성은 참여하는데 20대 남성은 불참하는가? 지정학적 구조가 결정한다.


    지정학적 구조가 잘못된 나라들은 가난하다. 지도를 펼쳐보면 그 나라가 가난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이해가 안 되면 지능이 떨어지는 경우다. 남미는 일단 인류의 수도라 할 유럽과 거리가 멀어서 불리하다. 자체적으로 의사결정의 수도를 만들지 못한다.


    내륙국가는 가난하다. 중앙아시아는 이름에 스탄이 붙은 나라들 있다. 항구가 머리가 되고 내륙은 꼬리가 된다. 항구가 없으면 머리와 꼬리가 구분되지 않으므로 서로 머리가 되려고 다투다가 교착되어 망한다. 몽골은 자원이 많아도 항구가 없어서 중국에 착취를 당한다.


    수도를 내륙에 둔 나라는 답답하다. 스페인의 마드리드, 이란의 테헤란, 튀르키예의 앙카라,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는 수도가 내륙에 있다. 궁예가 강원도 철원에 수도를 정한 꼴이다.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러시아의 모스크바도 내륙이라 좋지 않다.


    러시아는 페트로그라드로 수도를 옮겼을 때가 좋았다. 바르샤바와 모스크바는 지방의 봉건영주를 제압하려는 의도를 가진다. 중앙에서 지방을 감시하므로 외부로 뻗어나갈 수 없는 구조다. 균형을 추구하므로 내부에서 교착되어 어느 지역도 앞서가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가 항구와 가까이 있으면 수도가 먼저 발전한다. 이때 수도의 발전을 방해하는 지역은 없다. 수도가 내륙에 있으면? 특정한 항구가 먼저 발전하는데 다른 지역이 이를 견제한다. 바르셀로나가 발전하면 옆에 있는 발렌시아가 지역주의를 발동시켜 훼방놓는 것이다.


    수도가 내륙에 있으면 인간들이 심리적으로 삐딱해진다. 명나라의 북로남왜와 같다. 왜구가 쳐들어와도 대책을 세우려들지 않는다. 바닷가에 살지 않으면 되잖아. 이에 영향을 받아 조선은 울릉도를 비워두었다. 왜구가 제풀에 지쳐서 물러날때까지 기다려 보는 거다.


    태평천국도 아편전쟁도 멀리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북경에 앉아있는 서태후는 관심이 없다. 쟤들 곧 제풀에 지쳐서 조용해질거야. 열강에 북경을 털리고 나서야 잘못된걸 알았지만 때는 늦었다. 에너지는 방향이 있다. 수도의 위치가 잘못 되면 방향이 비뚤어진다.


    공격모드냐 방어모드냐다. 내가 잘해서 이기는 방법도 있고 상대방을 방해해서 이기는 방법도 있다. 내가 잘하려면 내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수도가 내륙이라 갇혀서 나갈 수가 없잖아. 그렇다면 누구도 외부와 연결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수도가 내륙에 있으면 지방이 먼저 치고 나가지 못하게 발목잡는다. 균형발전 핑계로 바르셀로나의 발전을 방해한다. 스페인에 까딸루냐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이유다. 그게 필리핀병이다. 만인이 만인의 발목을 잡을 연구만 하므로 망하는 깔때기 구조에 빠진 것이다.


    인간의 머리는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눈, 귀, 코, 입은 바깥을 향해 있다. 수도를 중심에 두는 나라는 머리를 뱃속에 넣어두는 셈이다. 머리가 뱃속에 있으니 앞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밥을 먹지도 못한다. 결국 죽는다. 이게 이해가 안된다는 말인가?


    지정학은 전략이다. 구조론은 전략이다. 바둑은 포석이 전략이다. 바둑판 위에 산과 강을 건설한다. 내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서 좋은 지형을 선점한 다음에 적을 타격하는 것이다. 시에도 압운의 구조가 있고 소설에도 캐릭터의 구조가 있다. 음악과 미술에도 다 있다.


    틀을 먼저 짜고 내용을 다음에 채운다. 바둑 격언에 '사귀생에 통어복이면 필승'이라고 했다. 나의 내실을 먼저 다지고 상대방의 약점을 나중 추궁한다. 그런데 고수는 그런 방향전환이 매우 빠르다. 알파고는 나의 거점이 덜 다져졌는데도 먼저 중앙으로 침투 들어간다.


    천재는 나의 범위가 크다. 소인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순으로 천천히 커지는데 천재는 처음부터 세계를 나로 규정한다. 보통은 바둑판 귀퉁이에서 시작하는데 알파고는 대범하게 중앙으로 침투한다. 나로 규정하는 영역의 범위가 다를 뿐 에너지 방향성은 똑같다.


    방향이 헷갈릴 수 있다. 나를 기준으로 보면 안->밖이고 바둑판 자체를 기준으로 보면 밖->안이다. 바둑판의 사귀생을 연결하면 밖이 만들어지고 안으로 침투한다. 소인배는 내 집을 먼저 짓고 남의 집을 허물어 이기지만 군자는 공동 집을 먼저 짓고 개인 집을 파괴한다.


    소인 : 주관적 나의 안-> 밖. 나를 먼저 다지고 남을 친다.
    군자 : 객관적 그라운드의 밖->안. 전체를 먼저 연결하고 부분을 압축한다.


    소인과 군자의 방향이 다르지만 사실은 같다. 에너지의 방향은 언제나 밖에서 안이다. 나를 기준으로 보느냐 아니면 그라운드를 기준으로 보느냐로 판단기준이 다른 거다. 그라운드 전체를 사용하느냐 우리쪽 절반만 사용하느냐다. 나를 기준으로 사유하면 자기소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나로 규정하는 영역의 차이다. 천하를 나로 규정하는가 아니면 내 가족만 나로 규정하는가다. 이념이 다른게 아니고 설계가 다른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대충 갖다 붙인 말이고 대전략과 소전술이 있을 뿐이다. 대기업과 구멍가게의 차이와 같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인구가 적고 종교가 같은 파키스탄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인구가 많고 종교가 다르고 카스트가 달라 어수선한 인도에 따라잡혔다. 수도 이슬라바마드가 내륙에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난의 대명사인 방글라데시에도 밀렸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같은 무슬림 국가다. 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수도를 잘못 정한 것이다. 딱 보면 알잖아. 부동산 업자들은 어디가 좋은 자리인지 그냥 안다. 지하철이 개통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건물주는 월세를 올린다. 지하철역이 항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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