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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286 vote 0 2004.09.02 (20: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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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하다가 중단한 바 있는 '노무현의 전략' 중 백범편 일부를 수정해서 인용합니다.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살수장부아(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나, 벼랑에서 잡은 가지 마저 손에서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장부이다. [백범일지]
 
이 한 줄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 셈이다.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겠다. 지금 우리가 벼랑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 몇이나 될것인가?
 
백범의 전략
백범이라면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고집 센 민족주의자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천만에! 우리는 백범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조선 왕족의 후예 이승만, 해주 양반의 후예 안창호를 비롯하여 해외의 명망가들이 즐비한 임정에서 배우지 못한 상놈의 신분으로, 요즘으로 치면 경찰청장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임시정부 경무국장 백범이 마침내 주석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혼란기였다.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는 철폐되었다지만 반상의 차별 구습은 여전히 남아있던 때였다. 좌우파의 극단주의에 선 명망가들이 거듭 조각에 실패하여 물러나게 되므로서 김구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왜 그들은 조각에 실패하였나? 왜 그들이 실패한 조각을 김구는 성공시킬 수 있었나? 이유가 있다. 왕족 이승만이 실패하고 양반 안창호가 실패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만큼 백범이 마침내 성공시키는데도 그만한 배경이 있다.
 
김구는 강격한 원칙가가 아니다. 탁월한 중재능력을 가진 온건 합리주의자였다. 지금 이라크에서 시아파 지도자 ‘알 시스타니’ 만이 극단주의자 ‘알 사드르’를 중재할 수 있듯이 왕족과 양반출신 중심의 명망가들과, 상놈 출신의 젊은 좌파들 사이에서 양쪽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김구만이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낡은 신분질서는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붕괴되었으나 새 질서는 자율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과도기 상황에서 김구 만이 양쪽의 극단주의 세력을 중재할 수 있었고, 그토록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오직 김구 만이 조각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과 백범은 닮았다. 백범일지에는 무수한 노무현들이 숨어있다. 백범이 생각한 것을 노무현도 생각하였고, 백범이 분노한 것을 노무현도 분노하였다. 백범이 결단하였을 때 노무현도 결단하였다. 백범을 읽으면 노무현이 보인다. (중략)
 
왜 백범이어야 했는가?
조선왕조의 몰락 이후 지난 100년간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통해온 근본적인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급모순과 그 극복에 관한 것이다. 구질서가 붕괴하고 신질서가 도래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상민계급을 위주로 한 동학민중항쟁이 양반계급 위주의 기성질서에 대한 전복의 시도였다면, 유교주의에 입각한 위정척사운동의 연장선 상에 있는 을미의병의 실패는 역시 양반계급의 지도력 한계를 노정한 셈이 된다.
 
상민과 양반이 각각 한번씩 실패하고 있는 와중에 일제가 밀고 들어와서 어부지리를 취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것은 상민계급과 양반계급의 사이를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다.
 
구한말 독립협회를 비롯한 개화운동이 실패한 데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승만, 윤치호, 이완용을 비롯한 이씨왕조의 왕족과 신학문을 배운 양반계급 중심의 개혁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상민계급은 황국협회(보부상 조직) 등의 활동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양반 중심의 개화운동에 반기를 드는 정서가 있었다.
 
그들은 개화운동의 지도자가 조선왕조의 지배계층이라는 이유로 본능적인 반감을 표출하는 면이 있었다. 독립협회의 실패에는 당시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불신이라는 근본적인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당시만 해도 이완용은 독립협회의 지도자였다. 독립문 현판의 글씨가 이완용의 글씨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독립협회를 주도한 신사(紳士)들 중 다수는 친일파로 변신하고 있다.
 
상해임시정부가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서 찾을 수 있다. 여전히 왕족과 양반의 권위가 기세등등하게 살아 있는 시대였다. 상놈 출신의 백범은 수위를 자청하는 편이었다.
 
백범이 임정의 수위를 자청하는 장면을 낭만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치명적이다. 백범이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임정이 분열된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상민계급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전부 좌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사농공상의 구질서는 타파되었지만 관습과 문화에 의해 내면화된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양반계급 특유의 법도와 예절을 모르는 상민 출신의 지도자들은 결국 좌파 쪽으로 등을 돌릴 수 밖에 없게 하는 유교주의의 잔재가 있었던 것이다.
 
왜 알 시스타니가 지도자로 떠오르는가? 알 시스타니만이 알 사드르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범같고 늑대같은 알 사드르를 제어할 수 없다. 오직 알 시스타니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백범만이 임정내부에서 분열의 원인이 된 좌파들의 난동을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인가? 백범만이 상민계급 출신 독립운동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도, 안창호도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들은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범이 입술을 깨물며 수위를 자청하는 그 속내를 겪어보지 않은 그들은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왜 노무현이어야 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정권의 계급성이라는 본질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이 우연히 길에서 지갑을 줏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좌우의 이념갈등에 의해 내노라 하는 명망가들이 모두 상해를 떠나버리는 바람에 우연히 백범이 지갑을 줏어서 주석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겉으로는 그렇다. 백범이 임정의 주석이 된 것은 외교론의 이승만, 준비론의 안창호, 무장투쟁론의 이동휘가 끝없는 분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의 다툼 과정에서 백범이 어부지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조선 놈들은 원래 단결이 안돼서 그래!”  
 
이런 류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 단결이 안된 것이 아니다. 구질서가 이미 붕괴했는데도 구질서의 지배계급이 여전히 내면화된 구질서의 문화와 관습으로 지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질서의 주체세력은 미처 그 구심점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질서는 붕괴하고 있다. 강준만 등은 구질서의 문화와 관습을 고집하고 있다. 생각하라! 강준만들의 눈에 보이는 노빠들의 모습이 어떨까?
 
구한말 양반계급 출신의 독립운동 지도자들 눈에는 도무지 예의를 모르는, 교양이라곤 없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상놈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날뛰며, 주제에 독립운동을 한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니 당연히 기회주의자로 보이는 것이다.
 
본질을 알아야 한다. 여전히 노무현이 고아라고 믿는 그들, 노무현정권의 계급성이라는 본질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그들.. 알 시스타니만이 알 사드르를 제어할 수 있듯이, 오직 상민 출신의 김구만이 상민 위주의 좌파들을 제어할 수 있었듯이..
 
오직 노무현만이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도래를 깨우쳐 알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 낡은 것이 가고 새것이 온다. 새 술은 익었으나 새 부대는 준비되지 않았다. 내면화된 관행과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양반 선각자는 있었으나 민중 출신의 선각자가 없었던 이유로 개화기의 독립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민중의 지도자는 전봉준이다. 오직 전봉준만이 성난 민중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전봉준은 신문물을 학습하지 못했다.
 
구질서의 주축은 대거 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질서의 주체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양반상놈 없는 개화세상이다. 양반상놈 차별은 않겠지만 그래도 예절을 알고, 교양이 있는 양반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해야한다는 발상으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민중은 난폭하고 변덕스럽다. 민중은 어리석다. 그러나 그 민중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백프로 실패한다. 누가 광범위한 기층민중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그래서 시대가 해결사로 백범을 요청한 것이다. 그래서 시대가 해결사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 임무를 맡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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