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4033 vote 0 2004.08.23 (16:43:00)

제목 없음 7년 쯤 전에 쓴 것으로 기억하는 필자의 옛 글을 약간 손을 보아 부분 인용하기로 한다.
 

 
어데서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밥상을 물리고 할 일이 없어 옛 문서 바구니를 쏟아 놓았다. 신구(新舊)의 여러 채권문서가 있는데 더러 죽었고 더러 살아있지만 받을 길은 까마득하다. 모두 불살라 버린 뒤 문득 하늘을 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거늘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청나라의 문예비평가 김성탄이 쓴 불역쾌재(不亦快哉)라는 문장의 한 구절이다. 또 어데서 이런 글귀를 발견한다.
 
『괴벽이 없는 사람하고는 교제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흠이 없는 사람하고는 교제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참다운 기분’이 없기 때문이다.』
 
김성탄과 동시대 사람 장대(張岱)가 쓴 글귀 한 토막이다.
 
소소한 것을 논하고 있으나 지극한 것과 통하고 있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글이 아니라 심경(心境)에 부딪혀서 툭툭 튀어나오는 글이다.
 
말을 짜맞추어 내는 능란함이 보이지 않고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려는 태도도 없다. 나는 이런 문장이 좋더라.
 
모델링과 카빙이 있다
조각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모델링(modeling)으로 소조(塑造) 와도 같으니 이는 필요한 것을 얻어서 점차로 살을 붙여 나가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카빙(carving)으로 목조나 석조와도 같으니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여 알짜배기만 남기는 방법이다. 굳이 말하자면 후자가 ‘진짜’다.
 
거기에는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까닭이다.
 
인간들에게도 모델링이 있고 카빙이 있다. 겉모양은 그럴듯 하지만 살을 붙여서 야실야실하게 만들어 놓은 가짜가 있고, 투박하지만 된장 맛이 나는 진짜가 있다.
 
장대(張岱)가 말한 '깊은 정'은 무엇이고 '참다운 기분'이란 무엇인가? 또 왜 그 참다운 기분은 ‘괴벽이 있는 자’ 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상처’가 있어야 진짜다. 목수의 대패와 석수장이의 정에 의해 구질구질한 것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옹이와 쐐기가 상처로 남는 거다.
 
묻노니 그대의 진정성을 증명할 그대의 얼굴에 남은 상처는 무엇인가?
 
인간들 가운데도 골동이 있다
'한국의 기인 70인'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들 가운데도 골동이 있다는 거다. 경허, 만공, 한암이 생각나고 또 천상병, 이상, 중광, 이외수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괴짜다.
 
정에 맞고 끌에 깎이어 생겨난 상처의 자국이 있는 그들, 아마도 '깊은 정'과  '참다운 기분'을 가득하니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하늘이란 김성탄이 본 그 하늘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푸를 수밖에 없을 것이리니 또한 ‘불역쾌재(不亦快哉)’가 아니겠는가?
 
경남 최후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천황산 배냇골 너머 원동리 못미쳐 어느 전통찻집에서  그 주인(도문(刀文)이상국님)이 벽에 써놓은 글귀 한토막이 이렇더라.
 
『씨부리지 마라. 다 알고 있다.』
 
아아! 그것은 청담(淸談)이다. 그것은 세련된 화술도 아니고 점잔 빼는 선비의 사교적인 대화도 아니다. 그것은 문득 화화상 노지심이나 흑선풍 이규가 등 뒤에서 툭 튀어나와 내지르는 일갈이다. (하략) 
 
데일리 서프라이즈의 출범을 앞두고
서영석님을 안다고 말할 정도로 대화를 나눠 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인간 서영석을 모른다.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처음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를 기억한다.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에게로 먼저 눈길이 간다. 우주, 자연, 과학, 생물 이런 것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신문기자가 당연히 가지고 있을 법한 책들은 거기에 한권도 없었다. 아니 더러 있기도 했지만 그런 책들은 누군가에게서 증정받은 것들이었다.
 
‘서영석의 천하’는 무엇인가? 거기서 답이 나오는 것이다. 첫 눈에 통하지 않으면 영원히 통하지 않는다. 인간 서영석에 대해서는 거기서 결론을 내렸다. 재론은 없다.
 
한가지 말한다면.. ‘사람을 다시 봤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조차도 믿지 못하는 정도로 안목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
 
근간에 서프라이즈의 진로에 관해 독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논의들이 많은데 유익한 논의는 눈에 띄지 않는 점을 유감으로 한다.
 
서영석님이 서프의 절반이었다. 서영석님이 더 이상 서프라이즈에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서프는 서프의 절반을 잃었다. 이것이 전부다. 거기서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서프의 피해는 크다. 그러나 그 피해를 과장하는 것은 서영석을 과장하는 의미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서영석님의 공백으로 하여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9월 1일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정식으로 출범한 이후 논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그 문제에 관해 더 생각하지 않을 작정이다.
 
누가 감히 노빠를 참칭하는가?
‘토사구팽’이라 했다. 비참하다. 사냥이 이미 끝났는데도 사냥개가 주위를 얼씬거리고 혹 남은 역할이 있는지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 비참한 거다.
 
주인이 뭐라 말하기 전에 사냥개가 알아서 떠나줘야 할 일이 아닌가?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덜 쪽팔리는 모양새가 되지 않는가? 그 옛날의 장자방이 표표히 떠났듯이 말이다.
 
누가 감히 노빠를 말하는가? 대통령 노무현의 짐이 되기 전에 알아서 대통령의 곁을 떠나줘야 하지 않는가? ‘내가 노빠요’ 하며 주인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면 비참하지 않은가?
 
조강지처는 버려야 산다. 요즘 잘나가는 벤처들도 학력차별 안한다는 옛말을 식언한지 오래이다. 돈만 벌면 서울대 애들로 싹 바꾸는 것이 이 바닥의 상식이다.
 
왜? 창업과 수성은 다르기 때문이다. 창업 때는 아웃사이더의 패기가 필요했다. 비서울대의 창의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수성 때는 버려야 한다.
 
아웃사이더는 별 볼일없는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역시 일은 서울대출신이 메뉴얼 대로 고분고분 잘한다. 아웃사이더의 패기? 그런 불쌍한 마인드로 회사 말아먹기 딱 좋다.
 
당연히 노무현은 노빠들을 버려야 했다. 토사구팽이 이 바닥의 상식이다. 아니 노무현이 노빠들을 버리기 앞서 우리가 먼저 노무현의 곁을 떠나줘야 했다.
 
눈치도 없이 노무현의 주위를 배회하며 노빠임을 자랑하는 인간들이 나는 우습다.
 
로또에 당첨되면 전화번호부터 바꾸는 게 상식이고, 출세하고 나면 옛 친구와 절교하는 것이 또한 이 강퍅한 세상의 상식이 된지 오래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미련하게도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왜? 무엇 때문에? 바보처럼 욕먹어 가며 그는 노빠들을 옹호하는 것일까? 노무현에게 여전히 우리가 이용가치가 있을까?
 
노무현 주위의 사람들.. 강금원, 안희정, 이광재, 노건평.. 그리고 이기명, 문성근, 명계남..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지.. 그들이 노무현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이 많아서? 서푼짜리 의리 때문에? 천만의 말씀! 정치가 애들 장난인가? 이 바닥 냉혹하다. 노무현의 냉철함은 김선일과 지율스님을 통해 입증된지 오래다.
 
노무현을 보지 말고 '노무현의 천하'를 보아야 한다. 결론은? 승산이 있다는 거다.
 
잘나간다는 벤처들이 서울대 애들로 싹 개비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승부사는 곧 죽어도 승산을 보고 움직이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냥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쓸모도 없는 사냥개를 데리고 있는 뜻은 더 큰 진짜 승부가 아직 남아있다는 거다.
 
노무현의 얼굴을 바라보고 논하지 말고.. 노무현의 시선이 향하는 지점을 보고 논하라!.. 곧 노무현의 천하를 보고 논하라는 말이다.
 
어쩌면 고사리 손까지 동원해야 할 그 남은 하나의 마지막 승부를 보고 논하라는 말이다. 그 마지막 승부를 위해서는 아마추어의 명분이 아닌 프로의 실력이 소용된다는 말이다.   
 
바람 부는 여의도에서 ‘시민혁명’ 발언을 듣고 필자가 운 이유, 그리고 울면서 또 한바탕 크게 웃은 뜻이 거기에 있다. 그의 의리에 한번 울었고 그의 승산에 한번 웃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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