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깔때기다. 입구에 서면 진보, 출구에 서면 보수다. 헷갈리는 점은 경제분야에서 진보가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유시민이 비트코인을 반대하는게 그렇다. 돈을 벌어오는게 진보, 살림하는게 보수다.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하므로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친구가 좋은 정보를 줄지 모르잖아. 여자는 살림하므로 보수적이다. 남자가 친구와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야지. 남자는 돈을 쓸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긍정주의, 여자는 돈을 쓸수록 가난해진다는 부정주의다. 이런건 단편적이다. 우리나라는 진보가 살림하는 아내 역할을 맡고 보수가 돈 벌어오는 가부장 역할을 맡으려고 하니 거꾸로 보수가 깔때기 입구가 된게 아니냐다. 이런 단편적인 것을 들이대면 곤란하고 우리는 시야를 넓혀서 봐야 한다. 국가 전체로 보면 진보가 깔때기 입구다. 정치의 영역이 안보, 복지, 노동, 여성, 문화, 체육, 해양, 외교, 환경 등등 다양하다. 부서 숫자만큼 정부 역할이 있는데 보수는 안보와 경제만 물고 늘어진다. 그 이유는 협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꼬시는 좌파는 실패하고 뒤에서 압박하는 보수가 성공한다. 좌파는 앞에서 꼬시므로 여성부로 꼬셔볼까, 환경부로 꼬셔볼까, 보사부로 꼬셔볼까 이러고 우파는 표가 되는 안보와 경제만 두 구멍만 판다. 전쟁 나면 거지된다고 협박하고, 경제가 망하면 거지된다고 협박한다. 국민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만 물고 늘어진다. 그 이유는 무능하므로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하려는 것이다. 근데 사실은 그것도 못하잖아. 정부가 장관 숫자만큼 많은 일을 해야하는데 안보와 경제만 하겠다니 깔때기를 좁히는 행동이다. 경제분야 하나로 범위를 좁히면 우파가 경제라는 깔때기의 입구에 서 있다. 그 이유는 좌파가 경제를 몰라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유시민이 빡대가리라서 그런거지 원래 진보가 경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전체로 보면 진보가 깔때기 입구에 있고 보수는 출구에 있는데 몇몇 분야에 한정해서는 반대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려고 정당들이 별짓을 다하기 때문에 상대방 영역을 침범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보수가 대표적이다. 경제타령 하면 빨갱이다. 유럽의 진정한 보수는 카톨릭 중심으로 조금도 바꾸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며 경제를 반대한다. 포르투갈은 교육도 반대했다. 이 정도 해야 참 보수 소리 듣지. 한국보수의 경제집착은 박정희가 만든 허상이다. 박정희는 원래 진보인데 독재자가 되어 보수화 되었으므로 좌우를 넘나들어 헷갈리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적인 현상은 무시하고 본질을 봐야 한다. 보수는 원래 바꾸지 않는데 지들이 잘한다 싶은 것은 하려고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당장 선거가 급하기 때문이고 보수는 원래 경제와 교육도 반대해야 한다. 반대로 진보도 이제 경제를 공부해야 한다. 막연히 경제를 반대하는 것은 그냥 무식해서 그런 것이다. 좌파와 우파는 패거리다. 목청 큰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진보와 보수는 자연법칙이다. 빛과 어둠, 선과 악, 머리와 꼬리, 전체와 부분, 원인과 결과는 자연법칙이지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는 보다 넓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일종의 보수 진보가 있다. 보수인데 진보를 자처하는 극우세력인데 원래 진보는 바꿔보자는 것이므로 극우들이 나쁜 쪽으로 바꿔보자며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개혁을 말하고 이준석이 개혁당을 하는게 그렇다. 바꾸지 말자는 전통보수와 다르다. 유럽에 진보당 이름으로 극우하는 넘들이 많다. 나치도 원래 사회주의 하던 애들인데 장검의 밤에 숙청되었다. 구조론은 진보가 되어야 하며 진보는 개혁적 보수도 포함될 수 있다. 진보냐 보수냐는 역사가 결정하지 사람이 입맛대로 결정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보수로 보여도 세월이 흐르면 진보일 수 있다. 우리가 진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빡대가리들이 보수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빡대가리를 피해다니다 보면 자동으로 진보가 되는 것이다. 빡대가리는 옮기 때문에 그들과는 밥도 같이 먹으면 안 된다. 진보의 원칙 1. 과학을 존중해야 한다. 점 보러 다니는 사람, 종교의 광신도는 곤란하다. 2. 예술가를 존중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다양한 모험과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트집 잡으면 인류를 위축시킨다. 3. 챔피언을 존중해야 한다. 모험가, 발명가, 스포츠맨, 연예인, 실력으로 성공한 기업인은 인류문명에 기여한 사람이다. 4. 열려 있어야 한다. 모든 혐오는 개인의 콤플렉스에 기인한다. 혐오는 동물의 본능이다. 호흡법을 배우면 혐오를 극복할 수 있다. 5.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 노동혐오는 인간을 부정하는 행위다. 모든 사회적 활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6. 긍정주의자여야 한다. 부정주의는 약자의 방어포지션이다. 새로운 것은 일단 똑똑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인류에게도 유리하다. 7. 팀에 헌신해야 한다. 의리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개인을 평가하는 것은 차별의 의도를 숨긴 것이다. 8. 개인을 압박하면 안 된다. 성찰타령, 진정성 타령은 개인을 압박하는 비겁한 행동이다. 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9. 상호작용의 증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상호작용이 증대하면 그것은 옳은 것이다. 잡다한 문제는 과정에 용해되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연애나 스포츠가 공부에 방해된다는 식의 논리로 상호작용을 줄이려는 행동은 그게 보수다. 실패라도 새로운 것은 일단 시도를 해봐야 한다. 예단을 가지고 미리 방어막을 치는 행동은 좋지 않다. 진보는 도덕적인 개인이 아니라 쿨한 사람의 세력화다. 인간이 있고 짐승이 있듯이 인간 중에도 인간이 있다. 우리는 인간이 되어야 하며 짐승의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인간 안에서도 인간이 되어야 하며 그 인간 안에서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착하고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차별주의다. 말이 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 인간이다. 꽉 닫혀서 강고하게 진보의 원칙을 지킨다며 마르크스 시대의 규칙을 고집하는 사람은 진보장사 하는 사람이지 진보가 아니다. 개인을 압박하는 유럽식 진보와 시장을 압박하는 미국식 진보가 가는 길이 다르다. 인류 전체로 보면 역할분담이다. 어느 쪽이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한국의 반도환경과 맞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한국은 고립되어 유럽식 진보가 잘 안 된다. 개인이 에티켓을 배워 상호작용을 높이든 땅이 넓어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든 구조로 보면 같은 것이다. 도덕에 매몰된 사람은 그게 사람을 제압하려는 보수꼴통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덕은 사람을 제압하는 흉기다. 인간을 위축시키는 일체의 행동은 악이다. 연쇄살인범이 돌아다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 덕분에 영화소재 건졌잖아. 독재정권 시절 강단진보가 팔아먹을게 없어 도덕장사나 해야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착한 사람 숭배는 그게 개인숭배와 같은 것이다. 인간을 위축시키는 일체의 행동은 좋지 않다. 똥꼬발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활기찬 사회와 위축된 사회가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