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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801 vote 0 2004.06.30 (12:00:43)

아이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뺀들뺀들 놀 때는 가만이 있다가.. 점수가 크게 낮아진 성적표 받아오니 뒤늦게 화를 낸다. 버스 지나가고 난 뒤에 회초리를 드는 격이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말한다.
 
“우리 애가 원래 머리는 좋은데 도무지 공부를 안해서 말이야. 우리애가 원래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말이야.”
 
이런거 안좋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원인이 있고서야 결과가 있는 법이다.
 
머리 좋은 애는 지적 호기심이 있어서 부모가 다그치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공부를 한다. 공부를 안하는 이유는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흥미가 유발되지 않는 이유는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공부에서 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라 했다. 배우고 때로 익혀도 거기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다 머리가 나쁘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한다’는 식의 부모들이 하는 푸념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허튼소리다. 마찬가지다. 유유상종이라 했다. 우리 애가 착한 애이면 친구를 잘못 사귈 리가 없다.  
 
서프, 돌연 우리당 비난시작?
오늘의 메인뉴스는 ‘서프가 돌연 우리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동아닷컴에는 벌써 메인으로 올랐지만) 실용주의 한다고 설레발이 칠 때는 가만 있다가 막상 실용하니까 화를 내는 것이다.
 
박창달 체포동의안 부결.. 이 얼마나 실용적인가? 이 얼마나 김혁규스러운가? 이 얼마나 완벽한 상생인가? 한나라당 사람을 총리로 내정해도 가만있던 이들이 막상 김혁규식 실용주의가 구체화되니까 돌연 짜증을 낸다. 생뚱맞은 일이다.
 
다 예고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꿩 먹고 알 먹는 수는 없다.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것이 다 상생의 댓가이고 실용의 댓가이고 조기숙버전 물흐리기의 댓가이다.
 
갑자기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아마 우리당은 지지자들이 이렇게 화를 낼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오른쪽 깜박이를 넣어왔지만 서프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당의 입장은 대개 이렇다.
 
“어 쟤네들 갑자기 왜 저러지?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인정해야 한다. 우리당은 오른쪽 깜박이를 무수히 깜박거렸다. 실용으로 그랬고, 상생으로 알렸고, 김혁규로 예고했다. 파병문제도 그 많은 신호들 중의 하나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하고 방심한 것이다.
 
우리당과 청와대는 제휴 파트너일 뿐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서프는 서프고 우리당은 우리당이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서프는 우리당이 아니다. 서프는 청와대가 아니다. 마치 자신이 대통령이라도 된 듯이.. 모든 상황을 두루 감안하여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고뇌하는 대통령의 입장 배려하고.. 북한과의 핵 협상도 고려하고.. 대미종속의 현실도 고려하여.. 두루두루 감안해서.. 도무지 현실을 모르는(?) 민노당이나 씹으면서.. 그런 식으로 오바하지 말라는 말이다.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아니므로 대통령의 선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당은 서프의 제휴 파트너이다. 청와대도 제휴의 한 파트너이다. 우리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역할분담이고 이심전심이다. 청와대야 실용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행정을 맡은 청와대의 일일 뿐이다. 우리는 맡은 바 역할이 다르다.
 
현실은 청와대가 고민할 사안일 뿐 우리가 미리 배려해 줄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저 우직하게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원칙의 횃불을 들어 앞길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청와대나 우리당은 존중해야 할 파트너일 뿐 감싸주어야 할 제 자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당이나 청와대를 불필요하게 감싸주면서도 존중은 해주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나는 신기남이나 천정배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제휴 파트너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언동이라고 본다. 파병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도 존중이 결여된 행동이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가리되 존중은 해야한다.)
 
우리는 단지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면 된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면 된다. 누구 눈치 볼 것도 없고.. 누구 형편 봐줄 일도 없다.
 
파트너가 실패하면 비난할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만큼 파트너십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 파트너를 잘 선택해야 하고 제휴를 잘 맺어놔야 한다. 게임에 지고 난 다음에 파트너에게 화낼 일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 우리애가 공부를 안한 것이 아니라.. 원래 머리가 나쁜 애는 아니었는지 의심을 할 때가 되었다. 우리애가 나쁜 친구를 사귄 것이 아니라.. 원래 질이 좋지 않은 애는 아니었는지 의심을 할 때가 되었다. 무엇인가?
 
이념이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이념적 동질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이념으로 하나되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겐 우리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념이 정당의 지능이고, 이념이 정당의 본성이다. 이념이라는 IQ가 꽝인데 좋은 성적표가 나올리 없다.
 
실용은 한나라당을 기만하기 위한 미끼로나 유의미할 뿐이다. 등소평의 실용주의란 자본주의를 하면서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달아놓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회피하고 민중을 기만하는 중국공산당 독재정권의 사기술로나 유의미한 것이다.
 
실용을 우리당의 정체성으로 판단한 즉 죽음이다. 이념이 죽으면 당의 구심점이 없어지는 즉 죽음 뿐이다.
 
한나라당은 수구, 우리당은 중도보수?
지난 몇 차례의 선거로 확인된 것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프레임이 총체적으로 좌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프레임이다.
 
우리당은 소수의 진보세력이 핵을 형성한 채 다수의 중도보수세력과 제휴하고 있다. 숫자로는 보수가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그 다수는 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힘만으로는 정권을 재창출할 수 없다.
 
한나라당도 다수는 보수이지만 소수의 수구가 그 핵을 형성하고 있기 대문에, 수구에 끌려다니느라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 그 핵을 형성하고 있는가. 누가 당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리당은 진보가 핵이다. 그 핵이 제휴 파트너인 중도보수를 끌고가야 한다. 서프도 마찬가지다. 우리당내 다수의 보수를 견인하지 못하고.. 그들의 논리에 끌려다니면 결국 핵이 붕괴된다. 그 결과는? 파멸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당은 망한다.
 
대통령 지지율 28프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수쪽으로는 아무리 아양을 떨어도 절대로 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보수하고 실용해서 강남 유권자를 잡겠다는 조기숙의 전략은 틀려먹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당이 당장 진보로 방향을 틀지는 않겠지만.. 그 핵이 왼쪽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 핵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중도보수로 돌아서려 해도, 조중동과 극소수의 수구가 방해해서 안되듯이 말이다.
 
둘 중 하나다. 진보의 핵과 보수의 몸통 사이에 균열이 점차 커져서 당이 깨지거나.. 아니면 두뇌 역할의 진보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몸통 역할의 보수가 복종해서 파트너십이 유지되므로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하거나.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우리가 제휴하고 있는 파트너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이심전심의 역할분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 결과를 꾸짖지 말고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
● 현실을 감안하지 말고 원칙을 밝혀야 한다.
● 개혁과 진보의 이념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 제휴 파트너인 보수를 존중은 하되 주도권은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 당의 천정배, 신기남 혹은 파병을 결정한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은 파트너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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