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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60 vote 0 2024.07.20 (17:23:35)

    태초에 빛이 있었다. 혹은 말씀이 있었다. 빛이 먼저일까, 말씀이 먼저일까?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를 참고한다면 도가도 다음에 명가명이다. 도가 명에 앞선다. 도가 자연의 빛이라면 명은 인간의 말씀이다. 자연의 존재가 인간의 인식에 앞선다. 빛이 먼저다.


    형이상학은 지식의 출발점을 찍는다. 지식의 근거를 밝혀 기준을 세운다. 먼저 오는 것이 기준이 된다. 존재가 먼저고 인식이 따른다. 진리가 먼저고 회의가 따른다. 빛이 있다는 것은 자연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말씀은 진리를 파악하는 인간의 모색이다.


    태초에 존재와 인식이 있었다. 자연은 존재했고 인간은 인식했다. 존재가 먼저고 인식은 존재가 두뇌라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다. 옛사람들도 알았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논증을 참고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존재가 인식에 앞선다는 말이다.


    존재론은 인식의 근거로서의 진리를 규명하고 인식론은 진리를 회의한다. 코기토 논증은 존재와 인식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밝힌다. 진리와 회의, 자연과 인간, 존재와 인식, 명사와 동사는 한 몸이므로 어떤 것을 의심한다면 둘의 연결은 이미 전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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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놓치는 것은 연결이다. 빛은 자연이 존재하는 방식이고 그림자는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인식을 의심할 수 있으나 자연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 자연의 존재도 때로는 의심할 수 있지만 존재와 인식의 연결은 의심할 수 없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다.


    존재가 의심되는 이유는 인식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객관적 존재는 의심할 수 없으나 인간의 뇌로 옮겨온 존재는 의심할 수 있다. 인식하는 과정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인식은 그 자체로 오염이다. 즉 변화다. 존재가 인식으로 이전되는 과정이 변화다. 잘못 옮겨질 수 있는 것이다.


    대칭되어 있다. 존재와 인식, 진리와 회의, 빛과 말씀, 주어와 술어, 변화와 관측, 절대성과 상대성, 자연과 인간이다. 전자는 의심할 수 없으나 후자는 의심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언어를 의심하는 것이다. 자연은 믿을 수 있지만 그것을 안다고 믿는 인간의 생각은 믿을 수 없다.


    존재는 변화다. 변화는 명사와 동사의 연결이다. 변하기 전은 명사이고 변한 다음은 동사다. 변하기 전의 명사를 믿을 수 있으나 변한 다음의 동사는 믿을 수 없다. 사실은 변하기 전도 믿을 수 없다. 변화를 통해서만 인간에게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은 둘의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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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을 의심한다면 반드시 하나 이상 절대 의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의심은 변화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이다. 절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공유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를 공유한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과 후는 접점을 공유한다. 둘의 연결은 의심할 수 없다.


    모든 변화는 공유에서 사유로 바뀐다. 사유는 의심할 수 있으나 공유는 의심할 수 없다. 변화는 순수에서 오염으로 바뀐다. 오염은 의심할 수 있으나 순수는 의심할 수 없다. 오염된 것은 언어다. 대개 언어의 잘못을 가지고 자연을 의심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존재론은 자연의 객관적 존재는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진리다. 진리가 지식의 근거가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인식론은 인간의 언어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회의다. 자동차는 믿을 수 있는데 인간의 운전기술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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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사람에게 처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먼저 공유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고향을 묻고, 나이를 묻고, 취미를 묻는다. 거리의 사람이 만나면 족보대기를 한다. 너 아무개 형님 알아? 대화는 공유에서 시작된다. 지식은 공유에서 시작된다. 형이상학은 형에 앞서 공유하는 것이다.


    태초에 만남이 있었다. 존재의 만나는 방식은 다섯 가지다. 존재의 족보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형제는 부모를 공유한다. 부모가 자식에 앞선다. 모든 것의 부모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다. 존재의 큰 어미는 동력이다. 그것에 앞서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동력원을 먼저 말해야 한다.


    자동차의 형이상은 원동기다. 동력의 연결이 먼저다. 자동차를 설명하려면 엔진부터 설명해야 한다. 길을 확보해야 집을 지을 수 있다. 길이 집에 앞선다. 길이 집에 동력을 연결한다. 연결이 단절에 앞선다. 밖에 앞서는 것은 안이다. 말하기 앞서 생각해야 한다. 행동에 앞서 결정해야 한다.


    당신이 목격한 것은 행위, 행위에 앞서는 것은 결정, 결정에 앞서는 것은 인식, 인식에 앞서는 것은 존재, 존재에 앞서는 것은 연결, 연결의 방법은 복제다. 존재가 스스로 복제하여 세상은 널리 이루어졌다. 닫힌계 내부 에너지의 의사결정 구조가 인간에게 관측된 외부의 형상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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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문명의 주춧돌은 일만 년 전에 놓여졌다. 과연 제 위치에 놓여졌을까? 먼저 놓은 주춧돌이 나중에 세운 기둥과 들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인류는 선조들이 허술하게 놓은 주춧돌 위에 너무 큰 집을 지었다. 집을 허물고 주춧돌을 다시 놓아야 한다.


    형이상학은 지식이라는 건축의 주춧돌이다. 인류의 지식을 새로 건축한다면 맨 먼저 말해야 할 인류의 첫 번째 지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이다. 지식의 근거가 되는 진리부터 먼저 말해야 한다. 그것은 존재의 복제원리다.


    연결이 단절에 앞선다. 안이 밖에 앞선다. 구조가 형상에 앞선다. 에너지가 물질에 앞선다. 부분이 전체에 앞선다. 결정이 전달에 앞선다. 맹지에 집을 짓지 못한다. 길이 집에 앞선다. 앞선 것을 먼저 말해야 한다. 원본이 복제본에 앞선다. 복제의 원본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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