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5304 vote 0 2004.06.23 (17:24:37)

부끄럽고 슬프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실’이라는 이름의 병사가 맨 먼저 희생됩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지금 이 상황.. 진실을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기 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김선일씨는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요?
 
까놓고 진실을 말합시다. 모두가 그가 죽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가 죽은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파병반대자들은 그가 순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표정관리가 안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길 가다가 돈지갑을 줏었다는 표정이군요. 내 말이 틀렸나요?
 
파병찬성자들도 그가 순교하기를 바랬습니다. 시중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파병찬성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이 있기 전 파병찬성과 반대는 45 대 55였습니다. 그의 죽음이 여론을 극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대략 60 대 40으로 파병찬성이 많아졌습니다. 파병반대를 함께 외쳤던 우리의 이웃들이 일제히 파병찬성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파병찬성자들이야 말로 길 가다가 금덩이를 줏은 것입니다. 그들은 손에 땀을 쥐고 텔레비젼을 지켜보며 그의 죽음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텔레비젼의 자막으로 떴습니다.
 
그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서 기세좋게 외칩니다. “이라크 놈들 싹죽었어! 김정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군을 파병하자!” 그들에게는 오늘이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날입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그러나 누구보다도 횡재한 사람은 청와대에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그의 횡재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지갑이나 금덩이를 줏은 정도가 아닙니다. 심지어 빌어먹을 조갑제 조차도 대통령 지지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권력은 극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오늘은 진중권이 지갑 줏은 날이요. 조중동이 금덩이 줏은 날이요. 노무현 대통령이 횡재한 날입니다. 모두가 승리자가 되었으니 셋이서 얼싸안고 축배라도 들어야 할 판입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진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파병찬성여론은 극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 모든 인간이 제게는 두 얼굴을 한 위선자로 보입니다. 당신 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위선자가 아닙니까?
 
무료하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수가 생겨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게시판마다 돌아다니며 댓글질을 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라크에 파견되어 있는 삼성의 직원들은 국정원의 요원이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정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 정도의 준비작업도 없이 감히 파병을 꿈 꾸고 있었단 말입니까?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정말로 파병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지금 이라크에 최소 100명의 한국요원이 상주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네 상식 아닙니까? 미국과는 탄탄한 채널과 굳건한 공조체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직 납치시점조차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이 나라 대통령 맞습니까? 당신은 파병에 대비하여 어떤 물밑작업을 했습니까? 어느 정도 정보수집을 했고 예견되는 사태에 대비하여 어떤 대책을 세웠습니까? 미국과는 어떤 공조체제를 확보했고 어떤 정보채널을 가동하고 있었습니까?
 
제가 철썩같이 당신을 믿은 것은 순진한 바보의 실수였나요?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혹시 김선일씨의 납치사실을 사전에 보고받고, 그의 죽음을 이용하기 위해 적절한 타이밍에 맞추어 파병강행 발표를 한 것이 아닌가요? 저의 터무니 없는 추측입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시점 최대의 승리자는 노무현 당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금덩이를 줏었고 나는 지금 당신의 횡재에 배가 아파 참을 수 없습니다. 이 분노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요?
 
바보같이 이라크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던 김선일씨에게? 어리석게도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벌인 개망나니 부시에게? 대책없이 파병을 결정한 당신에게?
 
12시간 전 저는 당신이 김선일씨를 구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습니다. 김선일을 구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저의 잘못을 사과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가 믿었던 당신은 지금 승리자가 되어 있군요. 두 손에 권력강화의 금덩이를 쥐고 말이지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말이지요. 승리자로서 말이지요. 비로소 조중동의 항복을 받아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우뚝 서서 말이지요. 한나라당 까지 당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말이지요.
 
기쁘겠습니다. 어제까지는 저희가 대통령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조중동이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저희가 대통령을 옹호했는데, 이제는 조갑제가 당신을 역성들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바보입니다. 12시간 전만 해도 대통령이 김선일을 구할 것이라고 믿었던 바보입니다.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의 터널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의 질주. 그 결과는 대파국.

덧글.. 나도 잘한거 없지만.. 김선일씨 죽음 이후 파병찬성이 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바보들은 제발 논쟁에서 빠져주시길. 대통령의 권력이 극적으로 강화되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바보들도 빠져주시길.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170 공희준 대 유시민 김동렬 2004-07-21 14647
1169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김동렬 2004-07-19 15001
1168 제헌절유감 김동렬 2004-07-17 15334
1167 박정희의 개 이재오 image 김동렬 2004-07-16 15363
1166 박근혜가 사는 법 김동렬 2004-07-15 13888
1165 서프의 경쟁력은 창의력에 있다 김동렬 2004-07-13 14777
1164 서프라이즈가 가야 하는 길 김동렬 2004-07-09 13286
1163 조선일보, 서프의 비듬을 털어먹다 김동렬 2004-07-08 13768
1162 김정일, 찬스는 지금이다 김동렬 2004-07-07 13435
1161 장길산과 서프라이즈 김동렬 2004-07-05 14299
1160 YS를 감방에 보내야 한다 image 김동렬 2004-07-05 13886
1159 유시민의 까놓고 말하기 김동렬 2004-07-03 14700
1158 서프, 어디로 가는가? 김동렬 2004-07-02 13192
1157 전여옥, 나도 고소하라 김동렬 2004-07-01 13617
1156 개각의 승자는 노무현대통령 김동렬 2004-06-30 14877
1155 우리당을 매우 쳐라? 김동렬 2004-06-30 13801
1154 이라크전 묻고 답하기 김동렬 2004-06-25 13199
1153 서프는 당당하게 나아간다 김동렬 2004-06-24 13697
1152 누가 미쳤는가? 김동렬 2004-06-23 14056
» 노무현 대통령께 묻는다 김동렬 2004-06-23 15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