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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81 vote 0 2024.05.20 (1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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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고대 봉건국가의 역사를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봉건이라는게 무엇인가? 토지를 나눠주는 것이다. 왜 토지를 나눠줄까? 세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왜 세금을 받지 않을까? 징세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국사기 초기의 많은 수수께끼는 고대 봉건국가의 당연한 애매함을 현대인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지배, 복종의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임수가 있다. 가야는 독립국으로 보면서 말갈은 뺀다. 교활한 민족주의다. 가야가 독립국이면 말갈도 독립국이다.


    근초고왕 때 백제는 사실상 한반도 남부를 통일했다. 직접 지배를 하지 않는 것은 그게 봉건국가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직접지배로 제한하면 고구려 영토는 매우 축소된다. 역사학자들은 고구려땅 크게 그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왜? 말갈이 항의하지 않으니까.


    근초고왕 때 지금의 남한은 모두 백제였다. 지도를 모두 백제 색깔로 칠하면 경상도 사람이 항의하기 때문에 빼주는 것이다. 가야도 색깔로 구분해준다. 침미다례는 은근슬쩍 넘어간다. 이러기 있나? 봉건시대는 세금을 받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반독립으로 간다.


    전쟁 때 병사만 보내면 된다. 가야가 백제의 군사행동에 참여했다면 백제라고 봐야 한다. 나제동맹 초기는 동맹국 구출이 아니라 백제의 종주권에 의한 병력차출이다. 그렇지 않다면 군대가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다. 군사를 요청하면 3개월 정도 보다가 보낸다.

    백제가 중국에 사신을 보내서 신라는 백제 속국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관계가 오래가지 않으므로 백 퍼센트 사실도 아니다. 봉건시대는 원래 애매하다. 백제가 고구려 변경을 침략하므로 광개토대왕이 곧바로 반격을 시작한다.


    침략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국내성에서 한강까지 거리가 멀다. 더욱 고구려군이 김해까지 내려온다면? 국내성에서 김해까지 직선거리 700킬로는 국내성에서 북경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5만 병사를 이끌고 올 만한 이유가 뭘까? 이득이 있으니까 오는 거다.


    경주 시내의 많은 고분은 마립간 시대의 것이다. 후대에는 고분이 산밑으로 옮겨간다. 묘지를 만들 땅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무덤 양식도 바뀌고 도굴범이 털어간 일부 무덤에는 부장품도 별로 없었다. 마립간 시대에만 많은 유물이 나오는데 그 시대 신라는 약했다.


    무수한 왜의 침략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근초고왕 전성기 때 신라 영토는 백제의 1/7이다. 경주, 영천, 포항, 상주만 신라였다. 광개토대왕 이후 고구려 속국이 되었다. 그런데 왜 천마총에서 금팔찌 30점, 황금반지 150개가 나올까? 황금 말장식도 갖추고 있다.


    황금이 그렇게 많은데 왜 은은 많지 않을까? 보통 은광에서 부산물로 소량의 금이 딸려나온다. 그런데 금은 있고 은이 없다는 것은? 신라에 황금이 쏟아져서 그 황금으로 로만글라스를 사들였고 무역로는 고구려를 이용했고 그래서 고구려가 신라를 도운 것이다. 


    발굴된 고분 7개 중에서 왕릉은 3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부인, 왕자, 갈문왕급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거기서 15개의 로만글라스가 나왔다는 것은? 갖고 있는 그릇을 아낌없이 파묻어버린 것은 아니고. 그 백 배의 로만글라스가 신라에 들어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봉건시대는 간접지배고 간접지배하면 죽어보자고 말을 안 듣는다. 하사품이 필요한 것이며 그중에서 먹히는 것은 황금이다. 신라는 황금의 힘으로 삼국을 통일한 것이며 황금의 등장이 무역로를 흔들어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황금은 많은데 구리는 많지 않다.


    당시 구리는 전량 수입이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의 많은 동종은 수입한 구리로 만들었다. 엽전도 수입한 구리로 만들었고 승자총통은 동종을 녹여 만들었다. 당시 무역로의 장악은 국가의 사활을 걸만한 것이다.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치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천마총 황금은 7.5킬로인데 현재 금 시세로 10억 원이다. 이런 무덤이 왕, 왕비, 갈문왕, 왕자 등을 합쳐서 200여 기다. 1천억 원어치 금을 땅에 파묻어 버렸다면? 그 열 배를 해외에 수출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에 경상남도 면적의 국가규모를 감안하면 대단한 것이다.



    지도로갈문왕 수수께끼

      
    터키어로 왕은 kral인데 발음은 크라움으로 들린다. 임금의 ‘금’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갈문왕의 어원일지도 모른다.


    소지왕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 후사가 없어 법흥이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소지왕의 장인인 지증왕이 가로챘다. 이상하다. 사위가 죽었는데 자식이 없으면 양자를 들이면 된다. 지증의 아들 법흥을 소지왕의 양자로 보면 납득된다. 그런데 왜 장인어른이 왕위를 가로채는 거냐?


    503년에 건립된 냉수리비에는 지도로갈문왕이라고 나온다. 왕이 아닌 것이다. 법흥이 왕이고, 지증은 법흥의 아버지이자 소지왕의 장인어른 자격으로 이전부터 갈문왕이었는데, 마립간을 폐지하고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은근슬쩍 왕이 된 것이다. 지증은 마립간이 된 적 없다.


    아들인 법흥은 모즉지매금왕이라고 마립간을 칭한다. 지증에게 왕위를 뺏기기 전부터 매금왕이었기 때문에 계속 매금왕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바꾼 제도를 아들이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소지왕은 자식이 없었는데 뒤늦게 벽화부인을 후궁으로 맞이했다. 벽화부인이 아들을 낳은 시점에 갑자기 소지왕이 죽었다. 살해되었을 수 있다. 소지왕이 죽기 십 년 전에 있었던 사금갑 설화에는 소지왕이 노인의 편지에 의해 목숨을 구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것이다.


    신라는 원래 공동통치 제도인데 아들과 공동으로 통치하는게 이상하니까 가로챈 것이며 그냥 빼앗으면 이상하니까 호칭을 고친다. 내친김에 국호도 신라로 고쳤다. 당시의 발음은 ‘디테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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