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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630 vote 0 2004.05.20 (17:57:27)

제목 없음

『그림 하나』
‘우끼요에’는 에도시대 일본에서 대량생산된 싸구려 채색 목판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천박한(?) 그림을 쳐주지 않았다.
 
사실이지 내가 봐도 천박하다.(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이 능호관 이인상이나, 추사 김정희를 논하는 미학으로 논한다면)
 
선비의 사랑방에 걸어두기에는 확실히 그림의 품격이 떨어진다. 소위 말하는 ‘이발소그림’이다. 처음 한두번은 눈길이 가지만 금방 싫증이 난다.
 
(우타카와 히로시게의 걸작인 이 그림은 백번 봐도 질리지 않지만, 대다수의 싸구려 우끼요에들은 그렇다.)
 
후일 우끼요에들은 대개 매너리즘에 빠져서 상투적인 그림이 되어버렸다.(화투 그림 비슷한) 아마 일본에서도 학자의 거실 보다는 시장통의 찻집이나 선술집 따위에 내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싸구려 그림이 일본도자기의 포장용지로 싸여 유럽에 수출되었는데 ‘고흐’의 눈에 까지 띄게 된 결과로, 오늘날의 인상주의를 탄생시키는 등 서양미술사를 바꾸어 놓았다.(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고흐도 화단에서는 요령과 기교 중심의 싸구려로 평론되었다. 당시에는.)  
 
『그림 둘』
툴루즈 로트렉의 이 유명한 그림은 몽마르트 언덕의 술집 빨간풍차(물랭루즈)의 포스터이다. 로트렉은 사창가 주변의 무희들을 모델로 한 퇴폐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사실이지 내가 봐도 퇴폐적인 느낌이 든다.
 
좋게 말하면 유머와 관능이고 나쁘게 말하면 저질이다. 그렇지만 이후 신문의 삽화나 포스터 중에, 몽마르트의 여인들과 사귀다가 매독에 걸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 저질화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그림은 없다시피 하다.
 
『그림 셋』
말 안해도 아는 팝 아트의 대부 앤디 워홀이다. 예의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나 서로 다른 대륙에 살았다. 이 세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상업주의적 '요소'이다. 그들은 저급한 상업미술을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들이다.

‘팝 아트’.. 대중의 기호와 대중매체의 상업주의적 속성에 대한 지지와 수용이다. 그런데 그 상업주의적 속성이라는 것이 나쁜 것인가?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려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옳지 않은 것인가?(팝 아트가 작품 자체로 상업성이 있다는 뜻은 아님. 팝 아트에 반영된 상업적 속성이 시장에서 상품의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줌.)
 
하여간 그 상업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성룡이 출연하는 모든 홍콩영화도 상업주의고, 요즘 뜬다는 한국의 조폭영화들도 상업주의다. 한 술 더 뜨자면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타란티노야 말로 ‘상업주의의 대부’이다.
 
주목되어야 할 사실은 요즘 극장가에는 상업주의와 예술영화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웰 메이드 영화’의 등장이다. 예컨대 박찬욱의 올드보이와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그렇다.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감을 잡았겠지만 이념지향의 클래식한 민노당과, 이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면에서 ‘팝적’인 우리당을 비교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우리당의 웰 메이드 전략을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은 씌어진다.)
 
● 클래식과 팝이 있다.
● 클래식이 이념이라면 팝은 대중성이다.
● 흥행과 비평에서 동시에 성공하는 웰 메이드영화가 뜨는 데서 보듯이, 이념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우리당의 전략이 옳다.
 
클래식의 가치는 물론 중요하다. 유홍준의 화인열전을 읽노라면 예의 상업주의 그림들은 그림도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리 조상들의 그림에는 품격이 있다. 철학이 있다. 주제의식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클래식(계몽주의적 태도)은 죽었지만 팝(대중영합적 태도)은 살아남았다.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 계몽주의가 강조하는 리얼리즘은 용도폐기 되었다. 더는 성화도, 기록화도, 초상화도 필요없게 된 것이다. 어떤 리얼리즘도 사진 만큼 리얼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발주자의 잇점에 주목하라
역사가 재미있는 것은 반전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그러하듯이 선발주자들은 나태해져서 뒤처지게 되고, 기합이 잔뜩 들어간 후발주자들이 선발주자를 추월하곤 한다. 우리는 지금 후발주자이다. 잘난 저들을 추월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미국을 배우자, 혹은 독일을 배우자, 또는 일본을 배우자는 구호가 먹혔다. 허나 그런 식으로 배우기 잘해서 2등은 할 수 있을지언정 1등을 할 수는 없다. 1등을 하려면 창의해야 한다. 박정희 모델을 버리고 새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성공사례는 많다. 후발주자였던 독일은 기계공업으로 따라잡았다. 역시 후발주자였던 일본도 전자공업로 재미를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IT기술로 세계를 휘어잡을 차례이다. 굴뚝의 시대는 가고 콘텐츠의 시대가 온다.
 
지평이 열렸다. 원점에서 게임의 룰이 새로 정해진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요는 후발주자의 잇점이다. 새로운 지평이 열리면 후발주자가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선발주자는 많이 불리하다. 예컨대 클래식한 전통에 의하면.. 도제식으로 좋은 스승을 찾아 입문하여.. 처음 3년은 빗자루질만 하고, 다음 3년은 걸레질 하고.. 그런 식으로 스패너에 대갈통 맞아가면서 어렵게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눈물의 인생극장이여)
 
옛날에 그런 식으로 10년간 배우던 것을 요즘은 학원에서 간단히 배운다. 자격증 따는데 3개월이면 충분하다.(선발주자의 시간낭비에 주목하라) 여기서 기초부터 착실히 배우는 고전적인 방법과.. 요령만 간단히 익히는 대중적인 방법 중 어느 쪽이 옳은가?
 
고전주의에 중독된 자들이 흔히 기초기술 타령하는데, 기초하다가 망한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의 기초기술은 그야말로 죽인다. 근데 그거 다 소용없다. 기초 건너뛰고 반도체 하나에 올인한 한국의 요령이 먹힌다.(의도적인 과장^^)
 
판소리꾼이 소리를 사사한다고 치자. 몇 십년간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며.. 그야말로 영화 서편제처럼.. 장님이 되면서까지.. 한을 심어야 득음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배기인가 아니면 학원에서 겉모양만 같단히 흉내내는 것이 진짜인가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원에서 요령만 배우는 게 진짜다.(판소리에는 해당이 안되겠지만.. 물론 판소리는 좋은 사부를 만나 득음을 해야한다) 필자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여기에는 다양한 함의와 암유가 있다. 약간의 허풍도. 행간을 찬찬히 읽어주시길)  
  
왜 후발주자가 따라잡는가? 후발주자는 요령과 핵심만 배우기 때문이다. 본질로 승부한다. 예컨대 미술만 해도 그렇다. 북한에선 요령을 가르친다.(우리나라도 학원에서는 요령을 가르치는데 이는 매우 비판된다. 요령은 나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우리 미술교과서에는 절대로 요령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요령과 기교 중심으로 가면 미술이 아니라 만화가 되는 수가 있다. 근데 예의 세 화가들을 보라. 세 화가의 공통점은 요령과 기교중심의 그림을 그렸다는 데 있다. 히로시게의 우끼요에는 서양의 원근법을 도입하여 입체감을 주는 기교 위주의 그림이다. 당시 일본인들에겐 원근법이 신기하게 생각되어 이런 유치한(?) 그림이 많이 팔렸다.
 
툴루즈 로트렉의 실루엣기법도 일종의 기교다. 말하자면 고전주의 정통파 입장에서는 경멸되어야 할 잔재주인 것이다. 앤디 워홀은 아예 그리는 행위 자체를 싫어했다. 대량으로 찍어내는데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하여간 만화그림에 열중했던 초등학교의 친구들은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고 좌절해야 했다. 만화처럼 잘 그려서 미술시간에 급우들 사이에선 인기가 최고였는데, 기교 중심의 그림이라 해서 사생대회에선 특선도, 가작도, 입선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미술은 그렇다 치고.. 왜 후발주자인 독일이 선발주자인 영국을 따라잡았는가? 왜 후발주자인 홍콩영화가 헐리우드영화를 거진 따라잡았는가?(한때의 돌풍이었지만) 왜 영화선진국인 프랑스영화는 흥행이 망하고 영화철학이 빈곤한 헐리우드가 먹는가?
 
정답은? 요령에 치중하고 핵심에 집중하는 즉 본질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자동차라 치자. 증기기관을 발명한 영국에서 보면 자동차는 마차에 엔진을 얹은 것이다. 여기서 자동차는 마차라는 고정관념을 깨부셔야 하는데 그러한 고정관념 깨기에 실패한 것이 문제로 된다.
 
뒤늦게 자동차사업에 뛰어든 독일에서 보자면 자동차는 그냥 쇳덩이다. 마차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자동차는 쇳덩이 이므로 쇳덩이의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독일인들은 오로지 쇠를 깎고 쇠를 연마하며, 엔진을 조립하는데 충실했다. 딴 생각 안하고 본질 하나만으로 승부했던 것이다.
 
영화도 그렇다. 80년대 국산방화가 망한 이유의 8할은 먹물평론가들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에서 주제의식을 찾고, 문학성을 찾는 등 작품성에 집착한 것이다. 영화는 그림이지 소설이 아닌데도 말이다.
 
원근법의 시각효과에 주목한 일본의 우끼요에(우끼요에에는 원경과 근경이 있다. 원경으로는 보통 후지산이 등장한다)나, 실루엣기법을 적용한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나, 마릴린 몬로를 대량복제한 앤디 워홀이나 공통적으로 시각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기교이고 잔재주다. 그러나 미술은 시각효과가 본질이다. 미술은 절대로 문학이 아닌 것이다.
 
본질 하나로 승부하라
인터넷사업도 그렇다. 포탈이 뜬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탈을 추구한 회사는 대개 망했고, 대신 검색이나 이메일 등 어떤 하나에 집중한 회사는 나중 포탈로 성장했다.(여기서 정답은 포탈인데 포탈을 추구하면 포탈이 안되더라는 역설에 주목하라.)
 
검색의 품질 하나에 올인한 구글의 성공도 그렇다. 이메일 하나만 파고들었던 다음도 그렇다. 서프라이즈도 마찬가지다. 선택과 집중이다. 시대소리나 브레이크뉴스가 모든 것을 다 포괄하려고 한눈을 팔 때, 서프는 오직 정치 하나에만, 그 정치 중에서도 노빠세력의 대변 하나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서프는 광장으로 나왔고, 모든 가치를 두루 포괄한다고 큰소리치던 것들은 오히려 반노의 산골로 숨어들었다.(이 기묘한 역설이라니) 여기서 규칙성을 발견해야 한다. 하나 안에 전체가 있다. 곧 진리의 보편성이다.
 
우주에서 우주를 찾으려 해서는 찾을 수 없다. 본질이 되는 하나 안에서 우주를 발견할 수 있어야 진짜다.
 
무엇인가? 영화는 시각효과다. 그것이 본질이다. 타란티노가 올드보이에 점수를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제의식이 어떻고 내러티브가 어떻고 딴소리 하는 소위 평론가라 불리는 먹물들은 영화에서 소설을 찾고 문학을 찾는 자들이다.
 
무엇인가? 동기와, 목적과, 효용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교훈을 받는다거나 그럴듯한 감동이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무게 잔뜩 들어간 먹물들의 논리를 버려야 한다.
 
필자는 ‘대중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공식이 있다. 선발주자는 보통 그 상품을 필요로 한 동기나 목적에 집착한다. 영화라면 영화를 보는 동기와 목적 곧 감동의 명화를 보고, 눈물 나는 대단한 교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근데 주성치 비디오나 빌려보고 키키덕거리는 요즘 고딩들은 그런거 없다. 내러티브이고 감동이고 주제의식이고 교훈이고 나발이고 그 따위는 안쳐주는 것이다. 먹물들의 주제의식 그건 가짜다. 걍 재밌는게 진짜다. 그 재미 안에 미학이 있고 논리가 있고 철학이 있다.
 
타란티노식으로 허벌나게 쏘고, 존나게 휘젓고, 마구 뒹구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간이 발견된다. 공간의 호흡이 느껴진다. 공간의 땀남새가 느껴진다. 그 스크린 위에 구현되는 시각적 공간의 구성논리가 주제의식을 극복했을 때 진짜가 얻어진다.
 
명품이란 무엇인가?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 목수가 장롱을 한 채 짠다고 치자. 그 장롱의 목적과 용도와 기능 따위를 생각하면 한국의 가구들처럼 앞부분만 그럴듯하게 만들고 뒷부분은 대개 허접하다. 이래서는 명품이 되지를 않는다.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 그 가구의 용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목적도 용도도 기능도 잊어버리고 오로지, 그 가구의 주인인 오동나무의 논리에 충실하는 것이다. 앞의 문짝이 오동나무이면 뒤도 옆도 오동나무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통일성의 논리, 전일성의 논리가 바로 장인정신이다.
 
명품이란 무엇인가? 이태리가구가 있다. 가죽으로 소파를 만든다면 철저하게 가죽의 논리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이태리 명품의 철학이다. 사람이 그 소파에 앉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람의 기준이 아닌 소가죽의 기준으로 소가죽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다.
 
● 한국물건이 명품이 안되는 이유는? 시계의 목적은 시간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충 시간만 맞으면 된다. 이딴 식으로는 절대로 명품이 될 수 없다. 현대차가 명품이 될수 없는 이유는 ‘주말에 가족이 나들이 한다’는 자동차의 목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냥 기계의 논리에 복종해서, 최고의 성능을 끌어내고 보자는 혼다의 장인정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 용도를 잊어라! 그것이 장신정신이다.
 
왜 추사가 명필인가? 글자는 사람이 읽어보자고 지어낸 것이다. 그 글자의 용도와 목적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먹의 논리에 충실하기가 추사의 필법이다. 먹이 번지는 속도와 붓의 날래기의 대결 그 자체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읽기에는 불편하지만 ‘먹과 붓의 대결’ 또는 ‘먹과 종이의 대결’이라는 긴장감이 살아서 글자 자체가 미학적으로 완성되어 버린 것이다.
 
왜 독일차가 뛰어난가? 영국인들이 증기기관을 발명했지만 그들은 마차를 졸업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동차는 운송수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발주자인 독일인이 보기에 자동차는 그냥 쇳덩이였던 것이다. 쇠의 논리에 충실하므로써 명품이 탄생되었다.
 
모든 명품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소재가 쇠이면 쇠의 논리를 따라야 하고, 소재가 가죽이면 가죽의 법칙에 충실해야 한다. 그 소재가 나무이면 나무의 결에 복종해야 한다. 영화도 그렇고 미술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 비치는 시각효과 그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앤디 워홀의 논리요 타란티노의 주장이며 박찬욱의 개가이다.
 
주제의식이니 내러티브니 하는 먹물들의 개소리는 걍 잊어버려야 한다.
 
왜 한국은 강한가? 후발주자이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이론에 빠지지 말고, 종교적인 도그마에 집착하지 말고, 철저하게 본질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상업주의라고 천시했던 것에 정답이 있다.   
 
물론 대중영합적인 태도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처음 잠시 동안은 신선하지만 대개 매너리즘에 빠져서 상투적인 작품을 반복적으로 복제하는 경향이 있다. 홍콩영화가 그렇다. 확실히 훌륭했다. 그러나 반복적인 자기표절로 망했다.
 
그러나 대중이 가는 길로 가야만 시장규모가 커진다. 시장규모가 일정 한도 이상 커져야만면 집중적인 창의가 쏟아져서 부단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헐리우드영화가 그렇다. 한 때는 상투적인 서부영화로 거진 망했으나, 시장이 워낙 크다보니 천하의 인재가 모여들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무더기로 쏟아낸 것이다.
 
정리하면
● 본질 하나로 승부해야 한다.
● 본질은 외부의 인간이 주문하는 기능과 용도와 목적을 잊어버리고, 그 상품 자체의 내재적인 속성이 요구하는 논리에 충실하는 것이다.
● 엘리트(선발주자)들은 상품의 탄생배경이 되는 기능과 용도와 목적에 집착하고, 대중(후발주자)들은 상품 자체에 내재한 속성에 따른 논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 명품은 상품 자체에 내재한 속성에 따른 논리를 충족시키면서도 그 안에서 주제와, 철학과, 가치를 구현하는데서 얻어진다.
● 인간의 주문사항인 주제와 철학과 가치를 미리 정해놓고, 짜맞추기로 작품을 제작하면 계몽주의로 망하고, 작품이 요구하는 내재적 속성을 먼저 구현해놓고 그 안에 주제와 철학과 가치를 부여하면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길로 가면 서프도, 우리당도, 대한민국도 모범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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