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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116 vote 0 2004.05.16 (12:42:28)

헌재는 헌재의 체면을 살리는 판단을 했다. 헌재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는 대통령에게 주제넘은 충고를 던지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국회에 대해서도 간접화법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연합뉴스 참조바람)

대통령에 대해서는 마치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훈계하듯 직설적으로 충고했다. 국회의 절차미비에 대해서는 알아듣기 어렵게 에둘러 말했다. 이런 차이는 무엇인가?

국회는 헌재가 나설 기회를 제공했으므로 헌재 입장에서는 국회가 고마울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국회의 결정을 그냥 수용하면 헌재의 존재의미가 없다. 기각결정 또한 헌재의 이익에 맞다. 헌재가 국회의 거수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킨다는 의미에서.

헌재가 국회의 대통령에 여러 건의 주제넘은 충고를 남긴 것은 특히 주목할 만 하다. 헌재가 대통령과 대등한(?) 헌법기관이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불필요한 잡음을 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태여 말이다.

물론 대통령의 과거 정치발언 중에 논란을 일으킬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는 대통령의 통치권행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역시 헌법기관인 대통령의 재량으로 인정해야 한다.(헌재가 국회의 재량을 인정하여 절차상의 미비점을 판단하지 않듯이 말이다.)

대통령의 정치발언은 상대방의 정치공세를 낳을 것이며, 여야간에 이러한 정치적 공방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용해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민이 심판자이고 여야는 각각 여당프리미엄과 야당프리미엄을 챙길 뿐이며,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이 판단할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하려는 선의에 의한 것이므로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탄핵을 할 사안이 아니라 그러한 정치공방으로 짚고 지나갈 사안이다. 그러나 헌재는 그러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재량권은 부인하면서, 절차에 있어서 국회의 재량은 충실히 인정하는 이중기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지조때로?)

국회의 탄핵 또한 대통령의 파면목적 보다는 총선을 의식한 정치공세의 성격이 있다. 그러한 점을 적시했어야 했다. 대통령에 대해서는 자잘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국회에 대해서는 그러한 편법을 사용한 도를 넘는 정치행위(상식에 어긋나는 즉 파면목적이 아니라 총선승리를 목적으로 한 계략)를 지적하지 않았다.

국회가 국헌을 유린하면서 까지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는 탄핵을 강행했다는 점. 대단한 국력의 낭비를 초래한 결과에 대한 지적은 미흡했다. 왜? 국회를 비판하는 발언은 헌재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별로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국회가 오바하더라도 국민은 마지막 보루인 헌재를 믿을 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고로 국회의 오바는 용인하는 것이 헌재의 위상 제고에 기여한다는 판단!)

헌재는 국회가 공연한 일을 벌여 국민과 헌재를 수고롭게 한 죄를 묻는 대신, 헌재가 국민앞에 으시댈 기회를 제공해주어서 신나 죽겠는 태도였다. 그래서 외국언론에서도 다들 '코미디'라고 한다. 코미디를 두달간 진지하게 한다면 우습지 않나?

사안의 경미함에 비해 헌재는 너무 진지했다. 꼭 그렇게 목에 힘을 주었어야만 했는가?

국회의 사전조사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소추위원 측의 억지주장, 청문회 등의 방법을 통한 의견소명 기회의 부여절차의 생략 등 분명히 짚고 넘어갔어야 할 사안에 대해 헌재는 매우 에둘러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헌재의 뽀대를 과시할 수만 있다면, 김기춘의 헛소리도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주는 인내심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무려 두달이나 계속된 지루한 코미디를 참을성 있게 지켜봐준 국민에 대해서는 한번도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감시되지 않는 모든 권력은 타락한다. 헌재는 헌재일 뿐이다. 판결은 존중하지만 그것이 헌재의 최선일지는 모르나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최선은 무엇인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것이다. 헌재도, 국회도, 행정부도 거기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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