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이 뻘짓을 남발한 결과 한나라당에 4프로
지지도차이로 추월당하기 직전이군요. 대선 직후에 썼던 글을 지금 상황에 맞게 수정해서 올립니다. 대선 직후도 그렇고, 총선 직후도 그렇고 선거만
끝나면 인간들이 일제히 우향우를 합니다. 선거도 끝났고 하니 대충 좋은게 좋다는 심리?]
개혁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춘추시대 최초로 개혁을 성공시킨 군주로는 제(齊)의 환공(桓公)을 들 수 있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를 등용하여 국정을 쇄신하였다. 최초로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제나라는 결국 몰락하였다.
왜인가? 개혁의 성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된 시점에 개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념과 철학에 기초하지 않고, 몇몇 뛰어난 관료의 개인적 능력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이다.
제나라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성공사례는 각국에 전파되었다. 환공이 붙인 개혁의 불씨가 중원의 여러나라에 차례로 옮겨붙어 춘추오패(春秋五覇)를 낳고 전국칠웅(戰國七雄)을 낳았다. 그들은 차례로 개혁을 성공시켰다. 부국강병을 이루어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모두 일시적 성공에 불과하였다.
최초로 유의미하게 성공시킨 사람은 진시황(秦始皇)이다. 그는 한비자의 법가를 받아들여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개혁의 제도적인 뒷받침에 주력하였다. 문제는 그 진시황의 개혁도 결국 실패했다는 데 있다. 왜? 이념과 철학의 빈곤 때문이었다.
개혁의 최종완성은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받아들여 유가개혁을 실시한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달성되었다. 기원전 600년 경 제나라 환공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개혁이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을 낳고,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이어졌으며, BC 100년 경 한무제 때 동중서의 유가개혁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개혁은 5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천하는 통일되었고 내외가 안정되었다. 이는 사전에 설계된 마르크스의 프로그램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필연법칙에 의하여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가 내재적인 완결성을 추구한 끝에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거쳐 스스로 시스템 자원의 최적화를 찾아낸 것이다.
보통은 뛰어난 행정가가 출현하여 몇 가지 개혁을 성공시키곤 하지만, 어느 정도 개혁의 성과가 얻어지면 임의로 개혁을 중단한다. 개혁을 필요로 하는 동기가 군주 개인의 야망에 있기 때문이다. 그 야망이 달성된 시점에 개혁은 중단된다.
그러나 개혁은 역사 자신의 내재적 완결성에 기초한 자체의 관성 때문에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군주가 양성해놓은 개혁세력이 들고 일어나 중단없는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이때 군주는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 개혁을 방해한다.
결국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 나라는 망한다. 한편 그 과정에서 축적된 개혁의 성공사례가 다른 나라로 수출된다. 그렇게 개혁의 불길이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붙기를 무려 500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필연법칙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은 3단계로 진행된다
개혁운동을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1단계는 요소 투입량을 늘려 일시적 성과를 얻은 제 환공의 부국강병프로그램이다. 2단계는 구조개선을 통한 개혁의 제도화를 도모했던 진시황의 법가주의프로그램이다. 3단계는 자원의 질을 개선하여 삶과 문화까지 바꾸었던 동중서의 천인합일(天人合一)프로그램이다.
※ 1단계 제환공의 부국강병 -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보수개혁(박정희모델)
※ 2단계 진시황의 법가개혁 - 구조개선을 통한 개혁의 제도화(DJ, 노무현)
※ 3단계 동중서의 유가개혁 - 자원의 질을 개량하여 삶의 형태를 바꾸기(서프의 지향점)
농업에 비유해보자. 1단계 요소투입량의 증대는 간단하다. 노동력의 투입을 늘리는 것이다. 더 많은 토지면적에, 더 많은 거름과, 농부를 투입하여 단기적으로 수확을 증가시킬수 있다. 이 방법으로 북한도 한때는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탈식 농법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지력약탈의 후유증이 나타난다. 최대의 곡물수출국 러시아가 최대수입국으로 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면 2단계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개선 역시 한계가 있다. 3단계는 종자개량이다. 신약, 신물질, 신소재, 신품종의 개발은 한계가 없다. 항구적인 성장이 보장된다. 선진국의 첨단농업이 이에 해당한다.
박정희시대 한국의 산업은 단순히 생산요소의 투입량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저임금구조하에서 노동자들의 희생과 농민의 대규모 이농으로 가능했다. 제나라 환공이 사용한 방법이다.
87년 노동자 이후 더 이상 저임금에 의존할 수 없게되자, 기업들은 2단계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 3단계에 도전해야 한다. 소재와 기능의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신소재, 신물질, 신약, 신품종, 신기능에는 한계가 없다. 항구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와 있다. 반면 우리 정치는 아직 2단계 시스템 자원의 최적화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방의 시행착오와 무제의 오류시정
고조 유방(劉邦)이 함양을 점령하고 아방궁을 접수했을 때다. 진(秦)나라의 법을 모두 폐지하고 법삼장(法三章)이라 하여 3가지만 남겨둔 일이 있다. 대단한 개혁의 성공일까? 만세라도 부를 일일까? 천만에!
유방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다. 실패를 인정한 유방은 소하(蕭何)의 건의를 받아들여 진시황의 법률을 모두 복원했다. 그래서 천하가 안정되었을까? 천만에! 천하는 조금도 안정되지 않았다. 어지러워진 중원은 흉노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왕소군은 비파를 품에 안고 울며 떠나갔다.
개혁은 무제가 유가주의 철학에 기초한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채택하므로서 완성되었다. 이는 곧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천인감응론이란 무엇인가? 천(天)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면 인(人)은 아래로 부터의 개혁을 의미한다. 민중의 생각이 바뀌고 삶과 문화가 바뀌었을 때 개혁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을 2004년 한국의 정치에 대입해 보자. 우리당이 말하는 실용주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의미한다. 네티즌의 목소리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위와 아래가 서로 감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자의 견해는 그렇다. 위로부터의 실용주의는 행정부나 할 소리다. 당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천인감응이 아니면 안되는가?
역사의 많은 시기들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도, 신라가 불교를 채택한 것도, 조선이 유교를 수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역사를 돌이켜보라! 한방울의 피를 아끼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 경우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박정희식 부국강병으로 한계가 있고, YS와 DJ식 제도와 법률의 개선으로도 한계가 있다.
최종적으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서야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언론개혁이고 장기적으로는 교육개혁이다. 왜 언론이고 교육인가?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문화개혁이다. 백범 김구가 말한 문화국가의 비전이다. 이는 결코 위에서 강제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한국의 영화가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한류의 문화가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다. 그 상승의 흐름이 어떤 임계에 도달할 때, 우리가 우리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때, 진정한 문화개혁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방법으로 국민의 가치관과 철학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되어 있다.
지금 파병이 문제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파병은 이러한 문화개혁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다. 문화개혁의 목적이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데 있다면, 파병은 우리에게 열등감을 심어준다.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월남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이때, 광주의 상처가 여전히 덧나고 있는 이때 파병이면 우리는 우리의 영화를 세계에 자랑할 수 없고, 우리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수도 없다. 남의 나라 용병살이나 하는 못난 것들이 무슨 얼어죽을 문화타령이란 말인가?
개혁의 최종 목표는 신인류의 공급이다
노무현정권은 세 가지를 개혁할 수 있다. 정치개혁과 언론개혁과 사회개혁이다. 정치개혁은 게임의 룰을 바로잡는 것이다. 언론개혁은 심판을 교체하는 것이다. 사회개혁은 그 게임을 벌이는 동기와 목적까지 바꾸는 것이다.
반칙하지 말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반드시 반칙하는 자가 나타난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페어플레이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게임의 참여자 모두가 인식해야 비로소 반칙이 없어진다. 게임의 동기와 목적이 바뀌어야 반칙이 사라지는 것이다.
가치관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가치관을 지배하는 것은 언론과 교육이다. 언론과 교육의 성공없이는 100% 실패한다. 삶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 공동체의 성취동기가 바뀌어야 한다. 자원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신인류를 자원으로 하여 이 사회에 공급해야 한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파우스트박사가 두 가지 옵션을 제안한다. 하나는 100억을 받는 대신 앞으로 20년만 더 사는 것이다. 하나는 그냥 지금과 같이 100살까지 사는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문제는 이 상황에서 로또 100억을 택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다.
그것이 가치관의 문제이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100억 받고 20년 사느니 그냥 100살을 사는 것이 더 낫다는데 다수가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더 나은가? 확신하는가?
우리당 무엇이 문제인가?
천인감응이 있어야 한다. 위와 아래가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우리당이 말하는 실용주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네티즌의 목소리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위와 아래가 감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용? 원칙 버리고 요령피우자는 거다. 노련한 베테랑 선장이 실용하면 눈앞의 암초를 피해갈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선원이 요령피우면 그 배는 침몰하고 만다.
위로부터의 개혁은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이다. 그것으로 나라가 잘살게 될 수 있고 서민경제가 안정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 결과는 토사구팽으로 나타난다. 개혁세력은 개혁이 종료한 시점에 퇴출된다.
필자의 견해는 그렇다. 실용주의는 행정부나 할 소리다. 당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래에서는 곧 죽어도 원칙이다. 개혁은 어떤 눈앞의 문제를 한건주의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바꾸어 나가겠다는데 우리당이 위에서 방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니 진짜 위기이다. |
개혁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
춘추시대 최초로 개혁을 성공시킨 군주로는 제(齊)의 환공(桓公)을 들 수 있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를 등용하여 국정을 쇄신하였다. 최초로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제나라는 결국 몰락하였다.
왜인가? 개혁의 성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된 시점에 개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념과 철학에 기초하지 않고, 몇몇 뛰어난 관료의 개인적 능력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이다.
제나라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성공사례는 각국에 전파되었다. 환공이 붙인 개혁의 불씨가 중원의 여러나라에 차례로 옮겨붙어 춘추오패(春秋五覇)를 낳고 전국칠웅(戰國七雄)을 낳았다. 그들은 차례로 개혁을 성공시켰다. 부국강병을 이루어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모두 일시적 성공에 불과하였다.
최초로 유의미하게 성공시킨 사람은 진시황(秦始皇)이다. 그는 한비자의 법가를 받아들여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개혁의 제도적인 뒷받침에 주력하였다. 문제는 그 진시황의 개혁도 결국 실패했다는 데 있다. 왜? 이념과 철학의 빈곤 때문이었다.
개혁의 최종완성은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받아들여 유가개혁을 실시한 한무제(漢武帝)에 의해 달성되었다. 기원전 600년 경 제나라 환공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개혁이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을 낳고,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이어졌으며, BC 100년 경 한무제 때 동중서의 유가개혁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개혁은 5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천하는 통일되었고 내외가 안정되었다. 이는 사전에 설계된 마르크스의 프로그램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필연법칙에 의하여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가 내재적인 완결성을 추구한 끝에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거쳐 스스로 시스템 자원의 최적화를 찾아낸 것이다.
보통은 뛰어난 행정가가 출현하여 몇 가지 개혁을 성공시키곤 하지만, 어느 정도 개혁의 성과가 얻어지면 임의로 개혁을 중단한다. 개혁을 필요로 하는 동기가 군주 개인의 야망에 있기 때문이다. 그 야망이 달성된 시점에 개혁은 중단된다.
그러나 개혁은 역사 자신의 내재적 완결성에 기초한 자체의 관성 때문에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군주가 양성해놓은 개혁세력이 들고 일어나 중단없는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이때 군주는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 개혁을 방해한다.
결국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 나라는 망한다. 한편 그 과정에서 축적된 개혁의 성공사례가 다른 나라로 수출된다. 그렇게 개혁의 불길이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붙기를 무려 500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필연법칙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은 3단계로 진행된다
개혁운동을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1단계는 요소 투입량을 늘려 일시적 성과를 얻은 제 환공의 부국강병프로그램이다. 2단계는 구조개선을 통한 개혁의 제도화를 도모했던 진시황의 법가주의프로그램이다. 3단계는 자원의 질을 개선하여 삶과 문화까지 바꾸었던 동중서의 천인합일(天人合一)프로그램이다.
※ 1단계 제환공의 부국강병 -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보수개혁(박정희모델)
※ 2단계 진시황의 법가개혁 - 구조개선을 통한 개혁의 제도화(DJ, 노무현)
※ 3단계 동중서의 유가개혁 - 자원의 질을 개량하여 삶의 형태를 바꾸기(서프의 지향점)
농업에 비유해보자. 1단계 요소투입량의 증대는 간단하다. 노동력의 투입을 늘리는 것이다. 더 많은 토지면적에, 더 많은 거름과, 농부를 투입하여 단기적으로 수확을 증가시킬수 있다. 이 방법으로 북한도 한때는 자급자족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탈식 농법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10년도 지나지 않아 지력약탈의 후유증이 나타난다. 최대의 곡물수출국 러시아가 최대수입국으로 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면 2단계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개선 역시 한계가 있다. 3단계는 종자개량이다. 신약, 신물질, 신소재, 신품종의 개발은 한계가 없다. 항구적인 성장이 보장된다. 선진국의 첨단농업이 이에 해당한다.
박정희시대 한국의 산업은 단순히 생산요소의 투입량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저임금구조하에서 노동자들의 희생과 농민의 대규모 이농으로 가능했다. 제나라 환공이 사용한 방법이다.
87년 노동자 이후 더 이상 저임금에 의존할 수 없게되자, 기업들은 2단계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 3단계에 도전해야 한다. 소재와 기능의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신소재, 신물질, 신약, 신품종, 신기능에는 한계가 없다. 항구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와 있다. 반면 우리 정치는 아직 2단계 시스템 자원의 최적화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방의 시행착오와 무제의 오류시정
고조 유방(劉邦)이 함양을 점령하고 아방궁을 접수했을 때다. 진(秦)나라의 법을 모두 폐지하고 법삼장(法三章)이라 하여 3가지만 남겨둔 일이 있다. 대단한 개혁의 성공일까? 만세라도 부를 일일까? 천만에!
유방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다. 실패를 인정한 유방은 소하(蕭何)의 건의를 받아들여 진시황의 법률을 모두 복원했다. 그래서 천하가 안정되었을까? 천만에! 천하는 조금도 안정되지 않았다. 어지러워진 중원은 흉노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왕소군은 비파를 품에 안고 울며 떠나갔다.
개혁은 무제가 유가주의 철학에 기초한 동중서(董仲舒)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을 채택하므로서 완성되었다. 이는 곧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천인감응론이란 무엇인가? 천(天)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면 인(人)은 아래로 부터의 개혁을 의미한다. 민중의 생각이 바뀌고 삶과 문화가 바뀌었을 때 개혁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을 2004년 한국의 정치에 대입해 보자. 우리당이 말하는 실용주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의미한다. 네티즌의 목소리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위와 아래가 서로 감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자의 견해는 그렇다. 위로부터의 실용주의는 행정부나 할 소리다. 당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천인감응이 아니면 안되는가?
역사의 많은 시기들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도, 신라가 불교를 채택한 것도, 조선이 유교를 수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역사를 돌이켜보라! 한방울의 피를 아끼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 경우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박정희식 부국강병으로 한계가 있고, YS와 DJ식 제도와 법률의 개선으로도 한계가 있다.
최종적으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서야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언론개혁이고 장기적으로는 교육개혁이다. 왜 언론이고 교육인가?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문화개혁이다. 백범 김구가 말한 문화국가의 비전이다. 이는 결코 위에서 강제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한국의 영화가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한류의 문화가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다. 그 상승의 흐름이 어떤 임계에 도달할 때, 우리가 우리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때, 진정한 문화개혁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방법으로 국민의 가치관과 철학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어떻게든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되어 있다.
지금 파병이 문제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파병은 이러한 문화개혁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다. 문화개혁의 목적이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데 있다면, 파병은 우리에게 열등감을 심어준다.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월남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이때, 광주의 상처가 여전히 덧나고 있는 이때 파병이면 우리는 우리의 영화를 세계에 자랑할 수 없고, 우리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수도 없다. 남의 나라 용병살이나 하는 못난 것들이 무슨 얼어죽을 문화타령이란 말인가?
개혁의 최종 목표는 신인류의 공급이다
노무현정권은 세 가지를 개혁할 수 있다. 정치개혁과 언론개혁과 사회개혁이다. 정치개혁은 게임의 룰을 바로잡는 것이다. 언론개혁은 심판을 교체하는 것이다. 사회개혁은 그 게임을 벌이는 동기와 목적까지 바꾸는 것이다.
반칙하지 말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반드시 반칙하는 자가 나타난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페어플레이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게임의 참여자 모두가 인식해야 비로소 반칙이 없어진다. 게임의 동기와 목적이 바뀌어야 반칙이 사라지는 것이다.
가치관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가치관을 지배하는 것은 언론과 교육이다. 언론과 교육의 성공없이는 100% 실패한다. 삶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 공동체의 성취동기가 바뀌어야 한다. 자원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신인류를 자원으로 하여 이 사회에 공급해야 한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파우스트박사가 두 가지 옵션을 제안한다. 하나는 100억을 받는 대신 앞으로 20년만 더 사는 것이다. 하나는 그냥 지금과 같이 100살까지 사는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문제는 이 상황에서 로또 100억을 택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다.
그것이 가치관의 문제이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100억 받고 20년 사느니 그냥 100살을 사는 것이 더 낫다는데 다수가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더 나은가? 확신하는가?
우리당 무엇이 문제인가?
천인감응이 있어야 한다. 위와 아래가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우리당이 말하는 실용주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네티즌의 목소리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위와 아래가 감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용? 원칙 버리고 요령피우자는 거다. 노련한 베테랑 선장이 실용하면 눈앞의 암초를 피해갈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선원이 요령피우면 그 배는 침몰하고 만다.
위로부터의 개혁은 구조개선을 통한 시스템자원의 최적화이다. 그것으로 나라가 잘살게 될 수 있고 서민경제가 안정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 결과는 토사구팽으로 나타난다. 개혁세력은 개혁이 종료한 시점에 퇴출된다.
필자의 견해는 그렇다. 실용주의는 행정부나 할 소리다. 당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래에서는 곧 죽어도 원칙이다. 개혁은 어떤 눈앞의 문제를 한건주의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바꾸어 나가겠다는데 우리당이 위에서 방해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