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님이 실용정당이라는 개념은 정치학에 나오는 전문학설용어라고 해명을 했지만 조중동에 보도되고 있는 실용의 의미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 대한민국에 한 사람쯤 있을듯 하다.
학술용어라 해봤자 학술용어를 빙자하여 레토릭을 구사한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 99프로는 ‘짜식들 알아서 기는군’ 정도로 받아들인다. 실용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논하지 마라. 단어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작금의 상황이 규정한다.
누가 뭐래도 실용정당 운운은 조중동에 아부하기 위해 전문서적 뒤져가며 만들어낸 단어이다.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렇게 아부해서 대통령 지지도를 5프로 쯤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그 성의는 갸륵하다만..)
허나 그런 식으로 끌어올린 지지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정치에 무관심한 부동표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1회용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개혁을 성공시켜 끌어올린 지지도가 진짜 지지도이다.
레토릭을 구사해서 사람 헛갈리게 하는 자는 레토릭으로 망한다. 제발 우리 이런 식으로 비굴하게 놀지 말자. 쪽팔린다.
하여간 탄핵판결후 대대적인 반격을 생각하며 이 악물고 벼르고 있던 서프앙으로서는 끔찍한 재난에 직면해버린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꼬.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할꼬. 통탄할 일이다.
설마 탄핵판결 나면 호프집에서 맥주한잔하고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어깨춤 출 생각한 서프앙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아닌 것이다. 절대로 아니다. 이건 생상할 수도 없다.
이념논쟁을 하지 말자? 그렇다면 서프는 왜 존재하는가? 차라리 서프 문닫자고 하지 그러셔? 보수고 진보고 이념이고 .. 사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건 입맛대로 가져다 붙인 수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본래는 그냥 인간이 덩그러니 있는거다. 그 인간들이 세상을 향하여 할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우리가 입을 모아 해주는 거다.
요는 누구를 대변하는가이다. 그래 잘나서 대학교수, 변호사, 의사, 재벌, 관료, 전문직업인들, 그들 입큰 개구리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보수 자원봉사로 입노릇 해주고 앉았는가 아니면,
힘 없는 노동자, 농민, 영세업자, 백수, 장애인, 여성 온갖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무보수로 이 일을 하고 앉았는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누구를 위해?
도무지 누가 우리를 필요로 하길래?
길을 가다가 목말라 하는 아이와 배불러 하는 아이를 만났다면 당신의 손에 쥔 한병의 사이다를 누구에게 건네겠는가? 이건 단순한 거다.
민노당이 그들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으니 우리는 안해줘도 된다고? 고작 원내 10석 밖에 없는 그들 민노당이 그들 무수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잘도 알아서 다 대변해주고 있으니 우리는 탱자탱자 놀아도 된다고?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 정치수요 만큼의 정치공급이 있다. 누군가 자신을 대변해줄 역할을 필요로 하면 우리가 그 일을 하는거다. 왜? 지금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다른거 없다.
우리당이 보수당이라고? 우리당이 변호사, 의사, 재벌, 관료, 전문직업인들 그들 입큰 개구리들이 입이 없어서 그들 입노릇을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정말 그렇게 믿는가? 그래도 되는가? 그런 식이어도 되는가?
우리가 독일식 좌파정당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는 그 가치대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도 모르나? 좌파정당이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설계해놓은 수입품 이념과 별개로 그 정당이 대변하려고 하는 가치는 고유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렇게도 모르나?
제발 우리 바보이지 말자. 정신 차리자.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을 보라. 수요가 있는 곳에 우리가 있다. 그 수요는 노동자, 서민, 영세업자들 쪽에 있다. 재벌, 관료들은 우리가 입노릇 안해줘도 지들이 알아서 잘한다.
진보고 보수고 나발이고 간에 현장에서 누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가를 생각하라. 노무현이 불러서 우리가 이렇게 왔다. 불러주는 이 있으면 나아가고 아무도 불러주는 이 없으면 퇴장한다. 그 뿐이다.
생각하라! 먼저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조직하고 포장하여 설계도로 꾸며놓은 이념이 있다. 인간이 진짜이고, 가치가 알맹이고, 이념은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나온 여러개의 청사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첫번째 인간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다. 두번째 가치에서 갈라진 것도 아니다. 세번째 꾸며진 설계도에서 갈라진 것이다. 설계도 따위는 하루에 백개도 만들 수 있다. 설계도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 이전에 가치의 공유가 중요하다.
누가 뭐래도 그 가치는 진보의 가치다. 그 진보는 인류의 진보, 역사의 진보, 문명의 진보이다.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인류의 자기실현과정이다. 비로소 동물을 극복하고 인간이 되어내는데 성공하기다.
독일식으로 가는가, 미국식으로 가는가, 한국식으로 가는가.. 가는 길이 다를 뿐, 꾸며놓은 설계도가 다를 뿐, 우리가 공유하는 진보의 가치는 본질에서 같다. 그것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이 결정한다.
나는 독일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미국식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이념은 우리가 지금부터 토론해서 도출해야할 장기적인 과제이다. 각자에겐 각자의 이념이 있다. 나는 나와 다른 설계도를 가진 사람과도 공존할 수 있다. 대화할 수 있다.
이념은 포장된 껍질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진보니 보수니 하며 희롱되는 언어에 있지 않고 그 이전에 저 들판에, 저 생생한 현장에 타는 목마름으로 있고 뜨거운 가슴으로 있다.
그 가치를 공유하므로서 우리는 서로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하기에 이렇게 모인 것이다. 지금은 스님과 목사가 어깨동무하는 시대이다. 스님의 극락과 목사의 천국이 다르다고 핏대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그 이전에 가슴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가슴이 식어버린 자와는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다.
탄핵판결 이후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악물고, 눈물 머금고 와신상담 결의를 다지고 있는데, 한쪽에선 잔치잔치 벌였네 니나노 소리가 요란하니 허탈하다.
덧글.. 조기숙님의 해명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얼 오해하고 이해하고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해한 사람 없습니다. 단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대처할 뿐입니다. 작은 승리에 취해 뒤로 미루어진, 잊혀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