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 케네디: 혹시 이탈리아 서부극 본 적 있나? 존 포드: 농담이겠지? 버트 케네디: 아니. 진짜 그런 게 있어. 그리고 몇 편은 유명하다. 존 포드: 어떻게 생겨먹었는데? 버트 케네디: 이야기와 사건은 없고, 그냥 살인만 있어. 이야기와 사건이 있으면 그게 소설이지 영화냐? 영화는 소설과 달라야 한다. 뭐가 다른가? 리얼리즘이 다르다. 소설은 리얼리즘을 백 퍼센트 구현할 수 없다. 그림을 보여줄 수 없다. 영화는 리얼을 보여줄 수 있다. 서부극과 이소룡 영화와 마동석 액션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소룡의 맹룡과강은 액션밖에 없다. 스토리가 있지만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억지 설정이다. 마동석 액션이 먹히는 이유는 리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리얼인가? 예컨대 권투라고 치자. 얼굴에 펀치를 맞으면 땀이 엄청나게 튀는게 사진에는 찍힌다. 땀이 튀는게 보여야 한다. 총을 쏜다고 치자. 총알이 총구를 빠져나올 때는 가열되어 있다. 총알이 수백도 온도로 가열된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걸 보여준 영화는 없다. 리얼이 아닌 것이다. 총구의 희미한 파란 불꽃도 보여주는 영화가 없었다. 심지어 예광탄의 궤적도 없더라. 연기가 만드는 와류는? 총알이 음속을 돌파할 때의 충격파는? 그냥 땅 하는게 아니고 따당하면서 약간의 시차를 만든다. 엄청난 메아리가 들려야 한다. 극장에서는 사격장 총소리의 반의반도 못 듣는다. 그냥 총소리가 아니라 충격파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공기를 휘젓는 것을 느껴야 한다. 총알을 구성하는 껍질의 구리와 내부의 납이 녹아서 터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근거리에서 두개골에 맞아 총알이 터져서 구리와 납이 분리되면서 액체가 되어서 뇌수를 휘저어버리는 모습은? 총알이 허공에서 식어가는 온도별 모습은? 왜 영화감독은 이런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매트릭스가 오히려 리얼하다. 날아가는 총알을 공중에 정지시켜 놓고 보여줬다. 관객은 총알이 보고 싶은데 총알은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고 보여주지 않겠다면 우리가 극장에는 왜 가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가는데 현실에서 볼 수 없다고 보여주지 않는게 리얼리즘이냐? 현실에서 남녀가 키스하는 것을 볼 수 없지. 극장에서는 키스장면을 원 없이 볼 수 있지. 시네마 천국. 리얼액션이 양아치 막싸움을 보여주는게 아니다. 그건 류승완 정두홍 짝패 삽질이고. 진짜 리얼리즘은 주먹을 휘두를 때 근육이 불끈거리며 움직이는 모습, 핏줄이 팽창하고 이완하는 모습. 땀을 흘리며 씩씩거리는 모습, 싸움을 앞두고 불안해하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 싸우면서 점차 지쳐가는 모습은 올드보이 장도리 씬이 보여줬고.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게 진짜 리얼이다. 가짜라 해도 사실의 어떤 요소가 있으면 그게 리얼이다. 홍상수도 뭔가 보여준게 있다. 연애는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색하고, 창피하고, 민망하고, 유치하고, 거북한 것이다. 그런 리얼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때로는 판타지로 가야 인간의 어떤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법. 때로는 슬로비디오로 보여주고 때로는 현미경으로 보여주는게 리얼리즘이다. 2003년이 한국 영화의 전성기였다. 그때는 대통령이 노무현이라서 모두 살아있었다. 지금은 눈빛이 죽었다. 노무현이 떠나고 한국 영화는 망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장화홍련,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은 2003년에 나온 영화다. 2002년에 월드컵 4강, 노무현 당선 한국인은 그게 전부였다. 리얼리즘만이 살길이다. 사실주의에는 리얼리즘이 없다. 현미경 들고 피부 속, 근육 속, 뼈대 속으로 들어가서 진짜 리얼을 찾아야 한다. 근육 속의 뼈가 부러지는 실시간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지만 그러므로 오히려 그것을 보여줘야 하는게 영화다. AI는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