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의원이 어제 워크숍에서 중요한 발언을 했다. 총선 전에 DJ를 방문해서 탄핵정국을 논의했다는 거다. DJ는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도 이해찬의 방문을 사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네가 알아서 해.”
DJ가 이해찬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의미하는 것은? 믿는다는 거다. 온전히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DJ는 끝내 침묵했지만 그 침묵이 무책임한 발빼기는 아니었다. 그는 한 순간도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 지켜보고 있었다. 적어도 정치가 무한책임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국민을 믿듯이 DJ도 국민을 믿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DJ가 'DJ식 황금분할'을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당이 과반수를 하고 민주당도 20석 정도로 체면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DJ와 YS의 마지막 승부
DJ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에 남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집권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몇십년씩 따라다니며 고생한 가신들을 거두어야 했다. IMF 치하의 5년은 너무 짧았다.
그는 자신이 못다 이룬 것을 노무현으로 하여금 완성하게 하려 한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노무현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않고 노무현을 제어하는 방법은?
DJ와 노무현 사이에 이심전심의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심전심은 그저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상대의 존재를 의식하고, 상대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고,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DJ는 때로 침묵하고 때로 한마디를 던지는 방법으로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을 조성한 것이다. 노무현과 간격을 벌리므로서 노무현이 오만해지지 않게, 노무현이 나태해지지 않게 제어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필자가 서프와 우리당 사이가 밀접해져서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이다. 가까와지면 오바하게 된다. 턱없이 부풀려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상처입고 등을 돌리게 된다.
DJ와 노무현의 관계처럼 등줄기가 서늘할 정도의 강한 긴장이 흘러야 한다.
DJ의 단기계획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는 YS를 이기는 것이다. 물론 DJ의 안중에 YS가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의식하고 있다고 본다. 퇴임후의 행동이 YS와 180도로 다르다. 언론에 의해 항상 비교가 된다.
어쨌든 415총선이 결정타가 되어 YS는 졌고 DJ는 이겼다. DJ에게서 이번 총선은 역사 앞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기에 걸리적 거리는 장애물이었던 YS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마지막 승부가 아니었을까!
박종의 딸이 보수해야 할 것은?
서점가에 ‘록펠러 가의 사람들’이라는 신간이 있는 모양이다. 신문에 실린 서평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1905년 보스턴의 한 교회에서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놓고 소란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찬송과 감사 기도가 이어졌을 테지만 이 돈이 ‘존 데이빗슨 록펠러’의 지갑에서 나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아 모은 더러운 돈을 당장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록펠러는 당대에 이미 ‘악마’ 취급을 받았다. 철학자 러셀은 록펠러를 두고 “개인의 자유경쟁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의 꿈을 깨뜨렸다”고 비판했다. (김범수 bskim@hk.co.kr)』
석유왕 록펠러 혹은 철강왕 카네기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카네기가문도 그렇지만 록펠러가문도 록펠러 2세가 중심이 되어 재단을 만들고 활발한 사회사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록펠러 2세는 자신의 일생을 아버지의 죄를 씻는 일에 바쳤다. 세세한 내막을 모르는 우리의 기억에 록펠러가문이 좋은 이미지로 인상지워진 것은 그 때문이다. 아버지는 개같이 벌었고 아들은 정승같이 썼다. 악마였던 록펠러를 아들이 구한 것이다.
박종의 딸 박근혜의 첫 행보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허무개그를 남발하는가 하면 여전히 공주병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부여주고 있지만, 아버지의 죄에 딸의 죄를 더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는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박종은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고 그 죄를 감추는 방법은 그를 신격화시키는 것 뿐이다. TK들에게 박종은 신이다. 신이므로 그의 죄업은 죄가 아닌 것이 된다.
박종의 딸이 우선으로 해야할 일은 TK들에게 신이 된 박종을 본래의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박종을 신경화시켜 이용해먹으려는 조중동과 정형근류 정치모리배들의 기도를 좌절시키는 일이다.
박근혜는 박정희를 보수해야 한다
록펠러가문의 예가 입증하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불완전한 것이며 때로는 치유되어야 할 질병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오늘날 미국의 자본주의가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록펠러 2세들이 그 모순을 인정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보수(保守)는 보수(補修)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박의원이 아마 한자를 몰라서 착오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보수를 보수(報酬)로 생각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아버지의 죄업을 보수하기 위해서 박종의 딸이 해야할 일이 참으로 많다. 록펠러 2세 만큼의 지혜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박정희를 신격화시켜 먹고사는 조중동이 박종의 딸을 끝까지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겠지만.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박근혜를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민정계라는 점이다. 그들은 박정희를 숭배하지만 한편으로 서울대출신이 군인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뿌리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의원회관에서 혹은 요정에 모여서 박근혜를 씹는 것으로 열등감을 보상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과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박근혜의 신중한 행보가 그러한 내부의 적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알아챌 정도로 똑똑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