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조중동이 사설과 칼럼을 기울여 아낌없는 대북지원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중동의 만평들은 여전히 북한을 비아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황당 박근혜현상이다.
박근혜, 잘하고 있다. 탄핵철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점은 거물(?) 정치가로서의 자질에 한계를 보여준 일이 되지만, 위기의 한나라당을 위해서는 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요는 그러한 박근혜식 정치가 과연 한나라당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각설하고 우리당 입장에서 보자. 바둑으로 치면 반집을 이겨도 이기고, 만방으로 이겨도 이긴다. 어차피 이기는 길이라면 고수는 반집을 이기는 쪽으로 국면을 설계한다.
“반집 차이? 반집 가지고는 불안하지 않나?”
천만에! 그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아야 고수이다. 박근혜가 선방하고 있지만 우리가 박근혜의 선방을 불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
최병렬의 자폭정치에는 노무현의 승부사적인 응징법이 있고, 박근혜의 안전운행에는 또 나름대로의 대처법이 있다. 요리할 수 있다. 단 불계는 아니고 반집승부로 간다.
우리 스스로 조급해져서 흔들리지만 않으면 무난한 승리가 보장된다.
※ 공격 잘하는 팀이 수비 잘하는 팀을 맞아 꼴대만 맞히다가 불의의 일격을 당해 패배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초조해져서 그런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박근혜식 정치야 말로 다루기 쉽다.
이기게 되어 있는 우리당 쪽은 그렇고 지는 한나라당 쪽은? 반집을 져도 지고 만방으로 져도 진다. ‘어차피 질것이면 기세좋게 올인을 해보고 지자?’ 그러다가 망한 사람이 최병렬이다.
● 최병렬 .. 어차피 질바엔 니죽고 나죽고식 난타전을 벌여본다.
● 박근혜 .. 최선을 다해서 반집차이로 진다.
여기서 ‘정치’라는 것의 속성이 문제로 된다. 박근혜 식으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패배하면 나중 책임소재가 문제가 된다. 즉 모든 책임이 박근혜에게 1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병렬이 난타전을 선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난타전을 벌여서 지면 이길 수 있었는데 운이 나빠서 진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최병렬이 잘했는데 유권자들이 워낙 변덕을 부려서”
이런 식으로 책임회피하고 넘어가기다. 남프의 누구도 조순형에게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듯이, 최병렬식 로또정치를 하면 책임회피가 가능하다.
박근혜가 ‘좋은 아마추어’라면 최병렬은 ‘어설픈 프로’다. 옳기는 박근혜가 옳지만 정치속성으로 볼 때 최병렬의 방식이 한 차원 위의 정치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정치’라는 것의 속성이 과연 박근혜식 정치를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이다.
무엇인가? 박근혜 식으로 ‘좋은 아마추어의 정치’를 할 경우 나중 그들에게 ‘패배’라는 성적표가 돌아갔을 때,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책임은 대표 1인에게 집중된다.
이미 신격화 되어버린 대표를 자를 수도 없고..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이 안된다. 이 경우 ‘정치’가 안되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인데 그 생물의 유연한 변신이 안된다. 막다른 골목에 갖혀버린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193바보들은 잘못인줄 뻔히 알면서 악의 길로 갔던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패했을 때 거짓이라도 패배의 원인을 조작하여 유권자를 납득시켜야만 전열 재정비가 가능하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최병렬식 난타전을 벌여 책임회피를 했고, 패배할 때 마다 거짓 패인을 만들어 정치라는 생물의 목숨을 연장해온 것이다.
박근혜식으로 하면 책임소재가 분명해져서, ‘거짓 패인 만들기’를 통한 자기기만을 해내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입장은? 매우 곤란하다. 솔직히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조중동이 그럴 수 있는 착한 어린이는 아니다.
하여간 이건 어디까지나 한나라당 사정이고.. 우리당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상대해주기에 편하다. 우리당 지도부로서는 운이 풀렸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조중동이다. 박근혜의 좋은 아마추어리즘이 박근혜 본인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조중동에게는 죽음이다. 당장 조중동의 사설과 칼럼들은 정신이 없다. 만평쟁이들도 허둥지둥이다.
조중동이 언제까지 인내할 것인가이다. 언제까지 박근혜를 위하여 억지로 보조를 맞춰줄 것인가이다. 조중동이 그렇게 인내심 있는 집단인가이다.
조중동의 일용할 양식은 노무현을 핍박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조중동이라는 승냥이떼를 챙겨먹이지 않을 경우, 조중동의 사나운 이빨이 누구를 향할 것인가이다.
손학규, 이명박이 박근혜를 할퀴고 덤벼들 것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필자는 손학규, 이명박이 감히 박근혜에게 대들지는 못한다고 본다. 박근혜는 어떤 경우에도 난타전을 벌일 사람이 아니다.
난타전을 벌여주지 않으면 손학규, 이명박은 끼어들 틈이 없다.
박근혜는 능란한 수비수이다. 그의 수비력은 손학규, 이명박에게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박근혜식 정치? 절망적인 반집패로 간다. 거진 따라잡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막판까지 좁혀지지 않는 반집차이.
그 절망의 부담은 고스란히 조중동에게 지워진다. 결국 조중동이 언제 박근혜를 팽할것인가의 여부만 남았다. 바야흐로 조중동의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정리하면
1) 손학규, 이명박은 기회를 놓쳤다.
2) 박근혜는 살고 조중동은 죽는 게임이 계속된다.
3) 4년 후 박근혜는 반집패로 체면을 세운다.
4) 패한 한나라당은 거짓 패인규명과 거짓 대안제시를 통한 수명연장 시도를 못한다.
5) 한나라당은 서서히 말라죽는다.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한나라당을 조중동이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 잘하고 있다. 탄핵철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점은 거물(?) 정치가로서의 자질에 한계를 보여준 일이 되지만, 위기의 한나라당을 위해서는 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요는 그러한 박근혜식 정치가 과연 한나라당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각설하고 우리당 입장에서 보자. 바둑으로 치면 반집을 이겨도 이기고, 만방으로 이겨도 이긴다. 어차피 이기는 길이라면 고수는 반집을 이기는 쪽으로 국면을 설계한다.
“반집 차이? 반집 가지고는 불안하지 않나?”
천만에! 그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아야 고수이다. 박근혜가 선방하고 있지만 우리가 박근혜의 선방을 불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
최병렬의 자폭정치에는 노무현의 승부사적인 응징법이 있고, 박근혜의 안전운행에는 또 나름대로의 대처법이 있다. 요리할 수 있다. 단 불계는 아니고 반집승부로 간다.
우리 스스로 조급해져서 흔들리지만 않으면 무난한 승리가 보장된다.
※ 공격 잘하는 팀이 수비 잘하는 팀을 맞아 꼴대만 맞히다가 불의의 일격을 당해 패배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초조해져서 그런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박근혜식 정치야 말로 다루기 쉽다.
이기게 되어 있는 우리당 쪽은 그렇고 지는 한나라당 쪽은? 반집을 져도 지고 만방으로 져도 진다. ‘어차피 질것이면 기세좋게 올인을 해보고 지자?’ 그러다가 망한 사람이 최병렬이다.
● 최병렬 .. 어차피 질바엔 니죽고 나죽고식 난타전을 벌여본다.
● 박근혜 .. 최선을 다해서 반집차이로 진다.
여기서 ‘정치’라는 것의 속성이 문제로 된다. 박근혜 식으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패배하면 나중 책임소재가 문제가 된다. 즉 모든 책임이 박근혜에게 1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병렬이 난타전을 선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난타전을 벌여서 지면 이길 수 있었는데 운이 나빠서 진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최병렬이 잘했는데 유권자들이 워낙 변덕을 부려서”
이런 식으로 책임회피하고 넘어가기다. 남프의 누구도 조순형에게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듯이, 최병렬식 로또정치를 하면 책임회피가 가능하다.
박근혜가 ‘좋은 아마추어’라면 최병렬은 ‘어설픈 프로’다. 옳기는 박근혜가 옳지만 정치속성으로 볼 때 최병렬의 방식이 한 차원 위의 정치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정치’라는 것의 속성이 과연 박근혜식 정치를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이다.
무엇인가? 박근혜 식으로 ‘좋은 아마추어의 정치’를 할 경우 나중 그들에게 ‘패배’라는 성적표가 돌아갔을 때,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책임은 대표 1인에게 집중된다.
이미 신격화 되어버린 대표를 자를 수도 없고..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이 안된다. 이 경우 ‘정치’가 안되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인데 그 생물의 유연한 변신이 안된다. 막다른 골목에 갖혀버린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193바보들은 잘못인줄 뻔히 알면서 악의 길로 갔던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패했을 때 거짓이라도 패배의 원인을 조작하여 유권자를 납득시켜야만 전열 재정비가 가능하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최병렬식 난타전을 벌여 책임회피를 했고, 패배할 때 마다 거짓 패인을 만들어 정치라는 생물의 목숨을 연장해온 것이다.
박근혜식으로 하면 책임소재가 분명해져서, ‘거짓 패인 만들기’를 통한 자기기만을 해내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입장은? 매우 곤란하다. 솔직히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조중동이 그럴 수 있는 착한 어린이는 아니다.
하여간 이건 어디까지나 한나라당 사정이고.. 우리당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상대해주기에 편하다. 우리당 지도부로서는 운이 풀렸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조중동이다. 박근혜의 좋은 아마추어리즘이 박근혜 본인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조중동에게는 죽음이다. 당장 조중동의 사설과 칼럼들은 정신이 없다. 만평쟁이들도 허둥지둥이다.
조중동이 언제까지 인내할 것인가이다. 언제까지 박근혜를 위하여 억지로 보조를 맞춰줄 것인가이다. 조중동이 그렇게 인내심 있는 집단인가이다.
조중동의 일용할 양식은 노무현을 핍박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조중동이라는 승냥이떼를 챙겨먹이지 않을 경우, 조중동의 사나운 이빨이 누구를 향할 것인가이다.
손학규, 이명박이 박근혜를 할퀴고 덤벼들 것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필자는 손학규, 이명박이 감히 박근혜에게 대들지는 못한다고 본다. 박근혜는 어떤 경우에도 난타전을 벌일 사람이 아니다.
난타전을 벌여주지 않으면 손학규, 이명박은 끼어들 틈이 없다.
박근혜는 능란한 수비수이다. 그의 수비력은 손학규, 이명박에게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박근혜식 정치? 절망적인 반집패로 간다. 거진 따라잡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막판까지 좁혀지지 않는 반집차이.
그 절망의 부담은 고스란히 조중동에게 지워진다. 결국 조중동이 언제 박근혜를 팽할것인가의 여부만 남았다. 바야흐로 조중동의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정리하면
1) 손학규, 이명박은 기회를 놓쳤다.
2) 박근혜는 살고 조중동은 죽는 게임이 계속된다.
3) 4년 후 박근혜는 반집패로 체면을 세운다.
4) 패한 한나라당은 거짓 패인규명과 거짓 대안제시를 통한 수명연장 시도를 못한다.
5) 한나라당은 서서히 말라죽는다.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한나라당을 조중동이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