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개념 자체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하의 광맥을 조사한 것으로 산줄기가 연결된 것이 아니다. 산경표의 신경준은 '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을 수 없다.'고 했는데 무수한 하천이 차령산맥을 넘어가고 있다. 미호천, 성암천, 병천천, 조천 등이 천안과 진천에서 산맥을 넘어 세종시로 흐른다. 산맥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차령산맥의 남쪽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풍수적 관점에서 좁은 지역을 특정한 것이다. 실제로 차령에는 이렇다 할 산성도 없다. 차령은 천안에서 공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에 불과하다. 주변에 우회로가 너무 많아서 산성을 쌓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산들이 남북방향이다. 김유신이 태어난 진천, 무열왕이 당나라 사신과 회맹한 보은 삼년산성, 백제 성왕이 전사한 옥천, 계룡산 신도안, 세종시가 모두 그곳에 있다. 충청, 호남, 영남 삼도의 갈림길이다. 왕건은 보은 삼년산성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한 바 있다. 궁예의 잔당이 왕건의 개성세력에 맞서려면 이곳이 풍수적으로 적당하다. 방어에 유리한 금강과 소백산맥을 끼고 있고 주변에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식량조달이 용이하다. 청주분지와 대전분지의 식량을 거두고 보은 삼년산성에서 버티면서 금강을 따라 이동하고 계룡산과 연결하면 토벌이 불가능하다. 정희량, 이인좌의 난도 청주성에서 버티며 서울 진출을 도모한 것이다. 풍수가 막연한 개소리가 아니라 상당한 지정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인좌의 난 이후 영남 남인들을 과거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은 영조 때 망한 것이다. 호남 선비는 정여립의 난으로 끊어지고 영남 선비는 이인좌의 난으로 끊어졌다. 선비의 나라 조선은 영조 때 완전히 사라졌다. 영조가 이조정랑의 권한을 빼앗고, 정조가 일본과 외교를 중단하고, 청나라가 조선 특유의 공론정치 철폐를 압박하고,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일어나며 이씨의 조선은 망하고 외척의 나라가 되었다. 드라마 여인천하 실사판이다. 우리가 아는 조선은 영, 정조 때 사라진 것이다. 시스템이 망하면 망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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