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말이 있을 뿐이다. 빛은 광자가 있지만 어둠은 암자가 없다. 어둠이라는 말은 있다. 어둠은 체언이 아니라 용언이다. 빛의 변화를 설명한다. 척력은 메커니즘이 있는데 인력은 자체 메커니즘이 없다. 척력의 방향이 꺾이면 인력이라고 하는거.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 왜냐하면 애초에 시공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만든 개념이기 때문. 시공간은 물질을 설명하는 보조개념. 그림자가 없는데 휘어지겠냐? 우리 눈에는 그림자가 휘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빛이 휘어진 것을 말을 그렇게 하는 거. 휘어진다는 표현 또한 웃긴 거다. 휜다는 표현은 시각적 구현을 위한 것이다. 휘어진 그물 같은 것을 그려놓지만 그건 2차원 평면이다. 애초에 공간은 2차원이 아니고 3차원은 그릴 수 없다. 물론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다르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관측의 딜레마를 두고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틀린 사실.. 시공간이 휜다. 바른 이해.. 관측은 모순이다. 관측하려면 시공간 중에 하나를 붙잡아야 하는데 그게 에러. 관측자가 개입하면 이미 왜곡된 것.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게 어떻게 휘어져?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 중에 하나가 있는 것이다. 에너지를 고정시키면 물질이 변하고 물질을 고정시키면 공간이 변한다. 공간이 휘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지만 물질을 고정시키면 공간이 변했다는 말 외에 다른 말로 나타낼 수 없다. 그런데 물질을 왜 고정시키지?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는데 비행기를 고정시키면 공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를 고정시키면 가로수가 달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누가 달리는 자동차를 멋대로 고정시켰지? 날아가는 총알은 자신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날아가는 총알은 날아가지 않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총알과 과녁의 관계다. 총알은 자신은 가만이 있는데 과녁이 자신에게 달려온다고 믿는다. 공간이 휜다는 표현은 그렇게 말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하는 소리고 실제로는 물질과 공간의 관계가 변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의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데 과학자들이 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걍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이다. 휘어지는건 반드시 하나를 붙잡아야 하는 관측의 상대성이다.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변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물질이다. 강한 중력을 가진 별 주변을 지나가는 총알은 길이가 조금 짧아졌다고 치자. 총알이 짧아졌다고 하는 것보다 공간이 축소되었다고 말하는게 편하다. 왜냐하면 그 총알 하나만 짧아진게 아니고 다 같이 짧아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공간이 축소된게 아니라 총알이 작아진 것이다. 블랙홀 주면을 지나가는 물체가 강한 중력에 의해 짜부러진다고 치자. 물질이 짜부러졌다고 말하기보다 공간이 짜부러졌다고 말하는게 낫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다. 인류는 변화를 용이하게 설명하는 언어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괜히 슈뢰딩거의 고양이 탓을 한다. 도대체 고양이가 무슨 죄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