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창은 눈이다. 눈이 없으면 볼 수 없다. 도구가 있다. 눈의 도구는 빛이다. 빛은 태양에서 온다. 빛이 그림자를 쏜다. 사건을 보는 창은 생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추론할 수 없다. 추론의 도구는 인과법칙이다. 원인이 결과를 쏜다.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물질, 원자, 원소개념이다. 원자와 원소는 고유한 위치와 성질이 있다. 매개하는 것에 붙잡혀 있다. 공간의 위치에 고착되어 있다. 누가 그것을 붙잡았는가? 그것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가? 설명할 수 없다. 불변으로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공간의 위치에 붙잡힌 원자와 고유한 속성에 붙잡힌 원소로는 변화를 쏠 수 없다. 도구 이용하여 변화를 쏘는데 쏘지 못한다. 과학은 에너지 개념으로 이 부분을 얼버무린다. 에너지는 물질이면서 성질이다. 에너지는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에너지는 물질이 아니므로 유물론과 충돌한다. 과학은 이런 모순을 해명하지 않고 뭉갠다. 애초에 물질과 원자와 원소개념이 틀렸을 가능성은 인류 중에 생각해 본 사람이 없다. 변화로 변화를 설명해야 한다. 물질과 원자와 원소는 위치와 성질에 붙잡혀서 불변이다. 불변의 물질, 원자, 원소 개념은 변화를 추적하는 인과법칙과 어긋난다. 쏘지 않으므로 추론할 수 없다. 변화는 불변보다 크므로 열역학 1법칙을 어긴다.
### 변화를 쏘는 도구로 추론할 수 있다. 그것이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사유의 틀을 깨야 한다. 옛날 사람들도 불변으로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안된 개념이 정신이다. 유심론은 유물론의 대체재로 제안된 것이다. 정신은 마음이다. 물질의 마음은 이데아다. 이데아는 물질이 아니고 다른 것인가? 영혼은 물질이 아니고 다른 것인가? 유심론은 유물론으로 돌아간다. 이데아라는 물질이 있고 영혼을 이루는 물질이 있다는 식이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은 유물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물질은 변화를 쏘지 않기 때문이다. 연결의 도구가 아니므로 변화를 격발하지 못한다. 반면 유심론은 유물론의 물질과 원자와 원소를 대체하는 무언가가 없다. 유심론은 자체 콘텐츠가 없다. 변화를 설명하려면 차원도약이 필요하다. 점의 변화는 선으로 설명하고, 선의 변화는 면으로 설명하고, 면의 변화는 입체로 설명하고, 입체의 변화는 유체로 설명한다. 같은 차원에서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1차원이 변화하면 그게 2차원이다. 유물론과 유심론은 같은 차원에서 마주보고 교착되어 이항대립 구도를 이룬다.그러나 같은 차원은 교착될 뿐 타개되지 않는다. 서로 마주보면 힘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물론이 틀렸으면 유심론도 틀린 것이다. 답은 높은 차원에 있다. ### 세상은 변화다. 변화는 쏜다. 매개하는 도구가 있다. 변화는 관계와 구조와 메커니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의 연결이다. 메커니즘은 원인 측과 결과 측의 두 움직이는 부분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관계는 인간에 의해 지목될 수 없다. 지목한다는 것은 붙잡는 것이다. 변화를 멈추게 하면 지목할 수 있지만 멈추면 변화가 사라진다. 인간이 가리켜 지목할 수 있는 물질, 원자, 원소는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둘의 연결로 설명해야 한다. 화살의 머리와 꼬리는 대칭된다. 마주보고 교착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화살의 머리와 꼬리가 1차원 선이라면 화살을 쏘는 활은 활몸과 활시위가 각을 이룬다. 각은 면과 같은 2차원이다. 변화는 2차원 각의 활이 1차원 선의 화살을 쏘는 것이다. 변화는 차원의 붕괴다. 한 차원 위에서 변화를 쏜다. 4차원 유체가 3차원 입체를 쏘고, 3차원 입체가 2차원 면을 쏘고, 2차원 면이 1차원 선을 쏘고, 1차원 선이 0차원 점을 쏜다. 1차원 선에는 0차원 점 두 개가 있다. 두개라야 변화를 쏠 수 있다. 어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의 자궁에 갇힌 둘의 모순이 변화를 쏜다. 물질, 원자, 원소는 위치와 성질에 잡혀서 하나이므로 변화를 격발할 수 없다. 각운동량보존의 법칙을 위반하므로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변화는 언제나 2에서 일어난다.
### 작은 것의 근거는 큰 것이다. 1차원의 근거는 2차원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큰 것이 작아질 수는 있어도 작은 것이 커질 수는 없다. 차원붕괴는 가능해도 차원도약은 불가능하다. 최초에 작은 것이 있었고 그것이 모여 커졌다는 물질주의 관점은 틀렸다. 태초에 큰 것이 있었고 그것이 쪼개져서 작은 것이 되었다. 0차원이 모여 1차원, 2차원, 3차원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다. 차원의 상승은 질량보존의 법칙과 어긋나므로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4차원이 쪼개져서 3차원, 2차원, 1차원, 0차원으로 사건이 종결된다. 공즉시색에 색즉시공이다. 공이 변화라면 색은 불변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열역학 1법칙이다. 공이 쪼개져서 색이 된다. 반야심경은 공 사상이지 색 사상이 아니다. 공이 색보다 위에 있다. 열역학 2법칙으로 보면 공은 색이 되지만 색은 공이 되지 않는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밀어주면 색이 공으로 변하지만 닫힌계 안에서 자발적인 변화로는 불가능하다. 색은 공이 관계를 잃어먹고 에너지를 손실하여 불변으로 차원이 떨어진 것이다. 색은 공 두 개의 교착이다. 교착상태를 인간의 눈코입귀몸이 느끼는 것이다. 변화는 불변이 되나 불변은 변화가 되지 않는다. 심은 물이 되나 물은 심이 되지 않는다. 심이 물보다 높다. 같은 차원을 유지하면서 심이 물이 될 수 없다. 선이 점의 집합이 된다면 차원 이동이다. 같은 차원에서는 선을 잘라도 짧은 선이 될 뿐 점이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