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적인 사고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석가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구조론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석가에게도 많은 오류가 있지만 2500년 전이라는 시대의 한계를 감안하면 독보적이다. 석가는 인류 중에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그것은 생각에 대한 생각이다. 능동적 사고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개 주어진 문제를 푸는 수동적 사고다. 필연적으로 관점의 오류가 발생한다. 인간이 링 위에 올라 선수로 뛰면 안 된다. 존재의 한쪽 측면만 보게 된다. 부름에 응답하려고 하면 안 된다. 관측자의 개입에 의한 자기소개가 된다. 게임의 주최 측이 되어야 능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문제를 풀고 답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문제는 문제가 풀고, 답은 답이 찾고, 생각은 생각이 하고, 인간은 게임 밖에서 관리할 뿐이어야 한다. 존재는 연결이며 연결되면 그게 답이다. 연결구조가 답이다. 깨달음을 얻어 유혹을 벗어났다거나 고통을 극복했다거나 부처가 되었다거나 하는건 본질이 아니다. 아무말 대잔치다. 그걸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일종의 인삿말이다. 게임에 초대하는 것이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방어행동이다. 공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천하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가? 공양주 노파가 자기 딸을 시켜서 스님을 유혹해 보라고 했다는 파자소암婆子燒庵의 화두가 유명하다. 20년 수도한 선승은 '고목나무가 찬바위에 기대니 삼동설한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하고 정답을 말했지만 그것은 노파에게 한 끼 밥을 빌어먹으려는 발버둥이다. 스님은 소녀를 유혹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부름에 응답하는 방법은 부르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문제를 내는 것이다. 능동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주최 측으로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역할에 갇히면 인간밖에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