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셋이다. 우주의 탄생, 생명의 탄생, 문명의 탄생이다. 셋은 한 줄에 꿰어진다. 우주는 생명을 탄생시키게 만들어져 있고, 생명은 인간을 진화시키게 만들어져 있고,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게 만들어져 있다. 처음과 끝은 만나 수미일관을 이루어야 한다. 하필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것은 우연히 조건이 맞아서지만 어느 행성이든 하나는 맞게 되어 있다. 생명의 최초 격발자인 DNA와 최종 도착점인 생태적 지위는 동시에 발생한다. 최초의 DNA가 출현했을 때 종의 생태적 지위도 동시에 지구에 출현한 것이다. 이는 공격과 수비처럼, 투수와 타자처럼 상호 의존한다. 입이 발생할 때 항문의 발생도 결정된 것이다. 파이프의 이쪽 구멍과 저쪽 구멍은 동시에 성립한다. 질문과 대답처럼 작용과 반작용은 동시에 결정된다. 최초의 지성이 출현했을 때 의미도 출현한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왜곡이다. 인간이 중심이라면 민중주의에 포퓰리즘이 걱정된다. 지배집단은 변방에서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는 것을 경계한다. 정치적 프레임으로 게임을 걸어 상대를 이겨먹으려는 소인배의 권력의지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봐야 한다. 신>우주>생명>문명>의미를 연결하는 것은 권력이다. 우리가 천동설의 중앙집권이냐, 지동설의 지방분권이냐 하는 아전인수 게임을 버려야 한다. 권력은 그냥 있다. 자연은 있다. 하늘은 있다. 땅은 있다. 인간이 거기에 끼어들어 내 몫을 주장하므로 혼란하다. 우주와 생명과 문명은 하나의 큰 사건을 구성하는 부품들이다. 우주를 나무의 뿌리로 보면 생명은 줄기가 되고 문명이 잎이라면 최후에 도달하는 열매는 의미다. 그 이전에 그 모든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대지다. 그것은 푸른 하늘처럼 그냥 주어져 있는 것이다. 관측되는 변화 셋은 한 줄에 꿰어진다. 둘이 나란한 것은 우연이지만 셋이 나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삼각측량과 같다. 각도 둘과 거리 하나와 미지수다. 두 변화의 비례를 알면 간격을 안다. 관측자와 표적 사이에 각도 둘과 거리 하나가 있어 모두 다섯이다. 광원> 빛> 피사체> 그림자> 스크린의 연결에서 가운데 셋이 일치하면 양 끝단의 둘을 안다. 마지막에 스크린이 있고 인간이 그곳에서 작업을 한다. 모든 것의 자궁인 광원은 모른다. 신이 가장 근접한 단어다. 신의 개념이 제각기 해석되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가운데 셋이 나란하면 최초 격발자도 명백하고 최후의 결과도 예약되어 있다. 희귀한 지구 가설로 증명된다. 지구 주변 수백 광년에 외계인은커녕 생명의 흔적도 없다. 씨앗은 언젠가 싹이 트고, 나무는 언젠가 자라고, 꽃은 언젠가 피고, 열매는 언젠가 열린다.
하필 그때, 하필 그 장소에서, 하필 그렇게 되는 것은 확률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 될 가능성은 필연이다. 로또는 누군가 당첨된다. 종교는 특정인이 당첨되도록 로또가 조작되었다는 말이다. 지적 설계도 마찬가지다. 로또에 당첨된 당사자의 입장은 뭔가? 당첨될 수 있다면 당첨시킬 수도 있다. 주최 측에 권력이 있다. 인간이 주최 측이다. 시스템은 840만 명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840만 명이 하나의 지점을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인간만이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인간에게 의사결정의 권력이 있다. 최초의 격발자는 알고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든 저지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탈출할 수 없는 궤도에 올라타고 있다. 우리는 쏘아진 화살이지만 유도탄은 중간에 표적을 탐지하고 속도를 조절한다. 의미가 권력이다. 나의 권력을 버릴 때 인류의 권력이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