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이다. 상투를 자르므로서 개화가 시작되었다.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한다. 법을 바꾸어 다 되는건 아니다. 문화와 관습이 바뀌어야 한다. 입는 옷부터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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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금실의 의상스타일이 노무현정치의 본질인 가치관의 변화를 국민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다. 』 |
서울대 학생들이 데모에 나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데모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한.. 가장 보수적인 서울대가 나섰다면 실상 모두가 나섰다는 의미가 된다. 가장 변하지 않는 집단이 변화할 때 근원에서의 변화가 일어난다.
잘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미학이다. 무엇이란 미학인가?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다른 말로 ‘가치관’이다. 가치관이 바뀌면 미학이 변하고, 미학이 바뀌면 스타일이 바뀐다. 스타일이 변해야 완전히 변한다.
그 스타일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옷이다. 롱드레스에 코르셋과 실크햇으로 중무장하고 조신하게 앉아있던 아줌마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서서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할 때 세상이 변한다. 이 때는 완전히 변한다.
케네디의 길과 닉슨의 길 중에서
백악관의 기자회견 때, 매번 첫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 할머니기자가 있었다. 미 언론계의 살아있는 전설 83세의 헬렌
토머스 기자다. 은퇴하면서 남긴 말 중에 케네디와 닉슨을 평한 것이 있다.
그는 케네디를 두고 『미국인이 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든』 대통령이었다고 최고의 찬사를 보낸 반면, 닉슨은 『두 갈래 길이 나타나면 항상 그른 길을 택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1994년 사망한 이후 닉슨 재평가작업이 활발했다. 알고보니 닉슨도 그렇게 나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닉슨이 거짓말을 해서? 천만에! 케네디가 더 많은 거짓말을 했다. 미국인들은 케네디의 거짓말에 관대하고 닉슨의 거짓말에 가혹한 것이다. 왜?
문제는 이미지다.
● 닉슨.. 밀실에서 시거를 피며 음습한 음모를 꾸미는
인물
● 케네디.. 백악관의 활기찬 생활모습을
텔레비전으로 공개한 인물
왜 이미지가 중요한가? 요는 이미지가 단순히 이미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닉슨은 이미지에서 진 것이 아니라 스타일에서 진 것이다. 스타일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케네디는 미국인의 가치관을 바꾸어놓았다. 할머니기자가 닉슨을 싫어하는 이유는 닉슨의 가치관이 싫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을 반영한 닉슨의 스타일이 싫기 때문이다. 그 스타일이 겉으로는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지 뒤에 숨은 스타일과, 그 스타일 뒤에 숨은 가치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본질이다. 항상 그렇듯이 승부는 본질에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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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통을 커보이게 하여 권위를 세워보겠다는 켸켸묵은 발상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그림은 박근혜의 큰머리 헤어패션을 풍자한 양영순화백의 만화(일간스포츠)』 |
코르셋시대와 샤넬수트시대
192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뚱뚱한 귀부인이 36도를 넘는 더위에 길에서 쓰러져 죽은 것이다. 모자와 하이힐과
코르셋을 포함하여 그녀가 입은 옷의 총 무게는 30키로그램을 넘었다 한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아무리 더워도 곤룡포를 벗지 않았다. 안동 양반들은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더워도 겹겹이 껴입은 적삼과 도포를 벗지 않는다. 한 여름에 버선도 벗지 않고 대님도 풀지 않는다.(안동 양반댁에서 시집살이 한 분께 직접 들었음.. 소름끼칠 정도였다고 한다.)
그 귀부인이 쓰러지기 전에 드레스라도 벗었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옹고집 조순형처럼 체면을 목숨과 바꿔먹은 것이다. 그때는 이런 미련한 짓이 당연한 상식이었다.
양차 세계대전이다. 여성들이 군수공장에 동원되면서 코르셋은 사라졌다. 전후 샤넬수트의 대유행으로 의상혁명이 일어났다. 재클린여사가 한 일은 그 의상혁명의 생생한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한 것이 전부이다.
닉슨.. 두갈래 길이 나타나면 항상 그릇된 길로 갔다. 왜? 이것은 어떤 판단과 결정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곧 스타일이다. 백악관의 문화이다. 요는 자기들이 결정해놓고 국민에게 통보하는가 아니면, 국민에게 먼저 묻고 다음 결정하는가이다.
‘결정하고 통보하기와 물어보고 결정하기’.. 이건 문화다. 스타일이다. 가치관이다.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옷이 바뀌고, 옷이 바뀌면 문화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절차가 바뀐다. 절차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 조최샴.. 자기들이 결정하고 국민에게 통보한다.
● 노무현.. 국민에게
재신임을 물어놓고 아직 결정하지도 않았다.
두 갈래의 갈림 길이 나오면 항상 바른 길로 가야한다. 절차를 바꾸므로서 가능하다. 닉슨의 길을 버리고 케네디의 길로 가야한다. 문화를 바꾸므로서 가능하다.
문화는 의사소통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문화의 변화는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통로를 바꾸는 것이며 문화를 바꾸지 않음은 국민을 그 의사소통라인에서 배제함을 의미한다. 먼저 국민에게 묻고 그 다음에 결정하기다.
강금실의 샤넬수트정치
필자는 얼마전 정동영과 강금실은 ‘케네디와
재클린의 컨셉’으로 가야 한다고 쓴 바 있다. 이미지다.
그러나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다. 이미지의 뒤에 숨은 스타일과, 그 스타일 뒤에
숨은 가치관의 변화를 알아채야한다.
노무현은 무엇이 다른가? 그는 '절차'를 바꿔버린 것이다. 스타일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노무현이 무엇을 바꿔놓았는지를 정녕 모르고 있다.
정동영과 강금실에게 기대하는 것은 노무현이 바꿔놓았으나 국민은 모르고 있는 것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어떻게? 옷부터 바꾸어야 한다. 정동영은 노란잠바로 바꾸었다. 잘한 일이다. 강금실의 옷도 기대할만 하다.
절차를 바꾸고 스타일을 바꾸고 그 변화를 옷과 행동에 반영할 때.. 그것이 겉으로는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바탕에서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적들이 노무현을 무서워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노무현은 국민의 생각을 뜯어고치려 한다. 말을 함부로 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보이지 않게 국민을 재교육시키고 있다.
백성의 삶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야 비로소 세상이 변한다. 그 생각의 변화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