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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91 vote 0 2023.08.30 (13:30:43)


    옛날에 영화는 서로 베꼈다. 고래사냥을 베끼면 사슴사냥, 바보사냥. 무수한 사냥 시리즈. 바보사냥을 베끼면 바보선언, 바보들의 행진. 무수한 바보들이 극장가를 덮었다. 어느게 먼저 베낀 건지 선후는 모르지만. 바보는 유신독재 시절 지식인의 냉소와 좌절을 에둘러 표현한 거다.


    요즘으로 치면 조까! 이명세의 개그맨은 이장호 바보선언을 반쯤 베낀 듯. 멍청한 남자 둘과 똑똑한 여자 하나. 비슷한게 많다. 삼포가는 길이 원조일지도. 개그맨은 한 30분은 덜어냈어야 했는데. 안성기가 마임을 하는 듯한(바보선언 흉내?) 어색한 장면을 덜어내면 상당히 걸작이다.


    원래 한 가지 미덕이 있으면 열 가지 잘못도 관대하게 봐주는 거. 이 영화는 소설을 영화로 옮겨서 TV문학관 냄새 나는 이전 시대와 다르게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후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김지운의 무대뽀 범죄극 조용한 가족도 영향을 받았지 싶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상황을 쥐어짜는 것. 많은 대사가 애드립처럼 보이는게 그렇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 반성하지 않고 울지 않고 배짱 좋게 밀어붙인다. 사람이 네 명 죽는다. 한국 영화 단점은 사람을 못 죽이는 것이다. 일단 죽여놓고 시작해야 하는데. 교훈, 감동을 의식하기 때문에.


    영화는 구조다. 주어진 자원 내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공간을 좁히면 좋다. 신파나 권선징악이나 주제의식이나 교훈이나 사회비판을 배제할수록 좋다. 영화란 간단히 주인공에게 힘을 준 다음(히어로) 방해자(빌런)가 나타나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주고 허들을 계속 높여가는 것이다.


    문제해결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어진 공간 안에 답을 찾아야지 외부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뜨면 안 된다. 더 문이 망한게 나사가 밖에서 개입하는 순간 아웃. 주제의식, 감동, 사회비판, 교훈, 신파는 외부에서 난입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그게 편리한 해결법이긴 하지만. 


    제우스 신이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었다. 끝. 이게 영화냐? 사람 쏘기 좋은 공간이면 총을 쏴야 한다. 왜냐하면 쏴야 그림이 나와주니까. 개그맨에서 안성기는 곧 죽어도 흰옷을 고집하고, 콧수염은 절대로 밀 수 없고. 사인을 해도 자기 실명을 정확히 써주고. 그게 스타일이다. 


    영화계에 뒷문으로 들어와서 처음 하는 사인을 가명으로 할 수는 없잖아. 즉 제약을 거는 것이다. 스타일은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주고 허들을 높이고 압박을 한다. 선택지를 줄인다. 나는 곧 죽어도 찍먹이야! 부먹놈과는 절대 같이 갈 수 없어. 외팔이 검객이나 외다리 검객이 그렇다.


    아들과 함께 다니는 장님 검객. 왜 외다리, 외팔이, 장님에 아들까지 대동하냐? 빌런 대신에 주인공에게 핸디캡을 주는 것. 개그맨은 영화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하는 영화학도에게 영화교육을 시켜준 교과서다. 반대로 갖가지 영화적 실험을 한 아마추어의 습작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닫힌 공간에 가두고 사람을 쥐어짠다. 선택지를 제거하여 긴장을 고도화한다. 개그맨은 제목을 잘못 지어서 망한 경우. 그때는 세 글자 제목은 서편제 빼고 다 망하던 시대였다. '개그맨이 간다'로 했으면 흥했을 텐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여덟 자였기 때문에 흥행한 것이다. 


    제목이 길면 개그가 포함되어 있다고 관객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성기가 콧수염 붙이고 나온 어색한 포스터 보고 아! 제목만 개그맨이고 안 웃기는 영화구나. 하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현용민 만화 '웃지 않는 개그반'이 그렇다. 진짜 끝까지 하나도 안 웃긴다. 완전 냉동고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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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은 철저하게 계산된 그림이다. 안성기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는데. 배우들은 죽을 고생. 이런 장면은 감독이 영화적 실험을 위해 일부러 넣은 것. 결과가 어찌 되는지 보자고. 하여간 영화의 본질은 리얼리즘이고 리얼리즘의 본질은 객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거다.


    갈릴레이 이전에는 내부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사원소설이 어떻고, 이데아가 어떻고, 하느님이 어떻고 하며 외부에서 겉돌았다. 이명세, 김기덕 이전에는 외부에서 겉돌았다. 처음 내부에 뛰어든 사람은 이소룡. 이소룡은 각본을 쓸 줄 몰라 자기 몸으로 때워야 해서 별수 없이 그랬고.


    현장에 있는 것으로 가는게 리얼리즘이다. 피아노줄 안 쓰고 트램폴린 안 쓰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야 했다. 홍상수는 이명세를 허접하게 베낀 것이다. 배창호가 자전거포 아저씨한테 라면 한 젓가락 얻어먹으려고 뻘소리 하는 것을 남녀관계로 비틀면 강원도의 힘이 되잖아.


    영화의 본질은 간단히 왕가슴, 쿵푸, 자동차 추격신이다.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시리즈로 유명한 코미디언 루디 레이 무어의 말이다. 암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왕가슴, 쿵푸액션, 자동차 추격씬만 가지고 흥행에 성공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영화의 어떤 본질과 닿아 있는 말이다. 


    이걸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은 히치코크. 영화의 본질은 스펙타클, 서프라이즈, 서스펜스, 스릴러다. 사람을 쥐어짜서 긴장을 끌어내는 것이 영화다. 한국인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는 한마디로 감동, 교훈, 권선징악, 복수극, 주제의식이다. 뭐라도 하나 건져야 영화지.


    수준 낮은 한국인들은 영화를 상업적 거래라고 생각한다. 영화값 1만 5천 원을 냈으면 준 만큼 돌려받아야지. 신파, 감동, 눈물, 콧물, 교훈, 사회비판, 풍자, 해학 중에 뭐라도 하나는 건져야지. 관객을 빈손으로 보내면 어떡해? 한국인 중에 예술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없을 거다.


    히치코크가 100년 전에 말해줬는데 한국인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계는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유독 한국인들만 갈릴레이 이전 봉건시대를 살고 있는 것. 지리멸렬. 한국인들은 영화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유명 평론가도 스필버그 영화를 홍콩영화 취급한다.


    죠스? 변두리 극장가에서 흑인이나 보는 B급영화지. 성룡영화? 혼자 오리궁둥이 몸개그로 90분 때우는게 영화냐? 아주 영화평을 하지 않았다. 왜? 영화가 아니니까. 홍콩영화에 감동이 있냐? 눈물이 있냐? 콧물이 있냐? 교훈이 있냐? 사회비판이 있냐? 도대체 뭘 보고 영화라는 거야?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불가능이다. 꽉 막혀 있다. 철통같이 막혀 있다. 솔직히 오펜하이머에.. 나중에 비디오 나오면 두어 번 더 볼 예정이지만.. 트리니티 실험은 .. 영화적 과장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유튜브에 있는 차르봄바 영상의 1/100도 못 보여줬다. 차라리 CG를 쓰라고. 어휴.


    거대한 진공이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뱉을 때 바람의 방향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모습이라든가 땅을 흔드는 지진의 느낌이라든가, 복사열과 열풍에 의해 나뭇가지나 관측장비가 불타고 녹아내리는 시간대별 장면이라든가. 엉뚱한 흑백 다큐로 3시간을 관객고문하고 있다니 참. 


    어쨌든 한 가지 미덕이 있으면 열 가지 잘못이 있어도 용서한다는게 나의 주장이니까. 오펜하이머 좋은 영화다. 결론은 리얼리즘. 리얼리즘은 갈릴레이 이후 시작된 것이다. 영화 줄거리가 사실일 이유는 없다. 진짜는 스토리의 사실성이 아니라 그 장면 내부에서 그림의 사실성이다. 


    류승완은 배를 타본 적이 없다. 배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도 넣지 않았다. 파도에 떠밀려 강제로 입맞춤을 하게 된다든가 그런 거. 그러니까 영화가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밀수는 배에서 시작해서 배 안에서 끝나야 하는데 서부영화에 주인공이 뉴욕출장 다녀오고.


    바람이 빠지고 긴장이 풀리면 그게 장난하는 거지 진짜. 어휴. 이명세의 개그맨에서 배창호가 라면 한 젓가락 얻어먹고 싶어서 하는 뻘소리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걸 상세히 묘사하는게 진짜 리얼리즘. 이소룡 영화가 대박인 이유는 리얼액션이었기 때문. 


    그는 영춘권과 태권도와 권투를 두루 배웠다. 자기 내부에서 낳은 것이 진짜다. 자발성이 있다. 영화의 본질을 안 사람은 히치코크, 스필버그, 이명세, 김기덕 정도다. 나머지는 그냥 소설을 영화로 옮긴 거. 한국 평론가들은 아직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소리는 잘 들어보면 이런 거다.


    내가 극장값 최소 9천 원을 냈는데 왜 돌아오는 감동, 교훈, 주제의식, 사회비판, 신파, 눈물이 없느냐 하는 반예술 선언. 어쨌든 이명세의 개그맨 이후 한국 영화는 진짜 영화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야설이 아니면 TV문학관이고. 영구와 땡칠이가 박스 오피스 1위 찍는 실정이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3.08.30 (15:31:55)

[레벨:4]고다르

2023.09.03 (09:35:30)

영화의 본질을 안 사람으로 ‘타란티노’도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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