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 여옥아 정치란 이런 것이란다. 입수부리 집어넣고 고개 팍 숙이거라. 』

언필칭 ‘침묵하는 다수’라고 한다. 다수가 왜 침묵하겠는가? 또한 이유가 있다. 소소한 일에는 침묵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다수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몰아서 한방에 보내려고.’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두 번, 세 번 개입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침묵하겠다는 거다. 그들은 결정적인 시기에 딱 한번만 개입하고자 한다. 단 한번의 개입으로 대한민국의 가는 방향을 바로잡은 다음 정치를 잊고 생업에 종사하려 한다.

그러므로 침묵하면서도 시선은 떼지 않는다. 다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침묵할 때 그들의 속마음은 이렇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말라.”

그들이 수시로 개입하지 않는 이유는 개입해 봤자 잔소리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개입하면 변한다.

지금이야 말로 침묵해온 다수가 개입할 때가 아닌가?

사실이지 그들은 노무현정부의 개혁에 회의적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하려면 제대로 해야 되는데, 제대로 하고 싶어도 노무현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개혁? 표 얻으려고 하는 소리지. 노무현? 힘도 없는 주제에 개혁은 무슨 개혁. 한두번 그러다 제풀에 지쳐서 주저않고 말겠지.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자구.”

그들은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탄핵을 앞두고 노무현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다. 제대로 할 양이라면 이 참에 단단히 다짐을 받아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다짐을 받아내지?

“노무현 너 어차피 개혁 못할거잖아. 그러니 차라리 니가 사과하고 포기해.”

이렇게 핀잔을 주어서 사람 속을 떠보는 것이다. 다짐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저 인간이 진짜 개혁을 하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괜히 한번 그래보는 건지 그 속을 떠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노무현은 사과를 거부했다.

“아니 저 넘이 미쳤나? 그런데 미친 것 같지는 않고.. 아니 그렇다면 진짜로 개혁을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말인가?”

그렇다. 노무현의 사과거부가 바로 그들이 바라던 ‘다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도 내심 노무현이 사과를 거부하길 바랬던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사과를 받아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개혁을 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 사과 그거 받아서 무슨 이익이 있나? 백성들은 헛된 사과보다는 개혁의 실속을 원한다. 그들은 노무현의 다짐을 원했다. 탄핵의 감수가 바로 노무현의 다짐이었던 것이다.

“그렇구나. 노무현은 진짜 개혁을 하겠다는 말이구나. 다짐을 받아냈으니 이젠 밀어줘야지.”

탄핵이 가결되므로서 노무현의 체면은 묵사발이 되었다. 노무현이 체면을 잃더라도 얻으려 했던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개혁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민초들 앞에서 다짐이 되는 것이다.  

민중이 비로소 몽둥이를 들었다
그렇다. 민중은 오래 침묵해 왔다. 언젠가 한번은 지역주의 세력들에게 몽둥이를 들어야 할 것인데,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하면서 속으로 벼르기만 했다.

“내 언젠가 저 넘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리라. 그러나 지금은 야단쳐 봤자 잔소리 밖에 안될 터이니 차라리 말을 말자. 일단은 두고보도록 하자!”

정치에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들.. 관심을 가져봤자 별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 관심없는 척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적들이 결정적으로 꼬투리를 잡혔다. 노무현이 탄핵을 무릅쓰고 개혁을 다짐한 상황이다.

이 참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안된다.

덧글.. 침묵하는 다수는 보수의 편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천만에! 침묵하는 다수는 몰아서 한방에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간해서 태도를 잘 안바꾸지만, 바꿀 때는 180도로 바꾸는 특징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김종필엉감이 또 침묵하는 다수 운운하며 너스레를 떨기에 한마디 깨우쳐 줌)


사과하라, 하야하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자들
정치는 어떤 경우에도 ‘명분과 실리의 교환’ 게임이다. 섣불리 명분을 차지하려 들어서 안된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얻는 것이 최선이지만, 차선으로는 일단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나중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옳다.

탄핵.. 그들은 명분을 얻었다. 노무현을 탄핵했다는 그 자체가 굉장한 승리이며 대단한 전리품이 되는 것이다. 다죽었던 최병렬과 조순형이 탄핵 한방으로 살아났다. 물론 그래봤자 사흘도 못가서 꼴까닥이지만 적어도 탄핵의 그 순간만은 그랬다.

요즘 남프를 둘러보면 ‘노무현은 망신 당했으니 하야하라’는 주장이 많다. 조순형도 그런 소리를 한다. ‘탄핵을 당했으면 하야하는 것이 관례다’는 것이다. 이 무슨 소리인가?

미쳤나? 누구 좋으라고? 이 치열한 전쟁 중에 하야는 무슨 하야?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런 택도 없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실은 그 반대로 자기네가 탄핵을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거다. 즉 명분은 얻었다는 거다. 회군할 빌미를 얻었다는 거다. 회군하고 싶어 죽겠다는 거다.

명예롭게 후퇴할 길을 열어달라는 애걸이 된다. 즉 그들은 내심 노무현에게 애원하여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조중문 시 한수를 애걸하다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에 닿았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거든 그만 물러가는 것이 어떠한가?"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전승기공고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바친 시다. 조중문은 이 시 한수를 얻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을지문덕! 제발 부탁이야. 내가 이건 걸로 해줘. 그래야 수나라에 돌아가도 체면이 서지. 침략은 여기서 끝낼테니 제발 나좀 살려줘!”

‘노무현은 하야하라?’ 그런데 그 하야를 누가 결정하는가? 노무현이 결정한다. 이는 적에게 최종적인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전쟁에 있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전쟁을 끝내는 시점을 결정하게 하는 것.. 최악이다.

다른건 몰라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개전의 시점은 니들 맘대로 정해도 좋다. 그러나 종전의 시점은 반드시 내가 결정한다. 그들은 종전의 시점과 방식을 이쪽이 결정해달라고 애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심 항복하고 싶어 죽겠다는 비명소리다.

조순형의 속마음.. “그래 내가 졌다. 항복이다. 다만 그래도 내가 탄핵이라는 역사에 남을 일을 해낸 야당 대표라는 점 만은 족보책에라도 꼭 올려다고.”

덧글.. '하야하라?' 1라운드는 내가 이긴걸로 해달라는 말이다. 시합 포기할테니 체면이나 좀 세워달라는 말이다. 당의 운명엔 관심이 없고 제 개인의 체면에만 관심이 있는 조중문.. 이만하면 트로이의 목마다.
 
우낀 넘들이 아닌가? ‘1라운드 좋아하네. 미안하지만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네. 앞으로 4년 더 남았군! 자 아구통을 박살내줄테니 어금니 꽉 깨물도록 하게.’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1176 일해가 유죄면 정수도 유죄다 김동렬 2004-08-04 13854
1175 유시민, 싸워야 한다 김동렬 2004-08-02 14646
1174 강금실은 돌아온다 image 김동렬 2004-07-28 14969
1173 박근혜, 아웃인가? image 김동렬 2004-07-27 13408
1172 이회창 닮는 박근혜 김동렬 2004-07-25 14046
1171 박근혜 잘한다 김동렬 2004-07-22 15334
1170 공희준 대 유시민 김동렬 2004-07-21 14145
1169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김동렬 2004-07-19 14511
1168 제헌절유감 김동렬 2004-07-17 14864
1167 박정희의 개 이재오 image 김동렬 2004-07-16 14832
1166 박근혜가 사는 법 김동렬 2004-07-15 13298
1165 서프의 경쟁력은 창의력에 있다 김동렬 2004-07-13 14208
1164 서프라이즈가 가야 하는 길 김동렬 2004-07-09 12735
1163 조선일보, 서프의 비듬을 털어먹다 김동렬 2004-07-08 13231
1162 김정일, 찬스는 지금이다 김동렬 2004-07-07 12884
1161 장길산과 서프라이즈 김동렬 2004-07-05 13765
1160 YS를 감방에 보내야 한다 image 김동렬 2004-07-05 13237
1159 유시민의 까놓고 말하기 김동렬 2004-07-03 13695
1158 서프, 어디로 가는가? 김동렬 2004-07-02 12666
1157 전여옥, 나도 고소하라 김동렬 2004-07-01 1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