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시인사이드에서 펌. 』 |
부모없는 자식이 없고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처음 원인이 발생할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대충 넘어가고 만다. 결과가 나올 때 쯤이면 화들짝 놀라하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현상의 이면에는 본질이 있다. 생각하라!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대선을 전후로 하여 민주당은 몇가지 중요한 개혁을 단행했다. 제왕적총재가 사라졌고 당정분리가 추진되었다. 민주당의 경선후보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한을 독점하지 못하는 그런 체제에 합의했다.
그때 모든 후보들은 생각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약체대통령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새 대통령의 약점을 잡았다. 이제 내 동의없이 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인가? 민주당은 국민몰래 빌어먹을 ‘중우정치’에 합의한 것이다. 그들은 비열한 권력 나눠먹기로 담합한 것이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후보를,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 그들이 국민을 속이고 이심전심으로 합의한..
권력분점의 묵시적 약속이 노무현에 의해 깨졌기 때문이다.
모두들 침묵으로 그 비열한 약속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아무도 폭로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 많은 논객들도, 배웠다는 지식인들도, 조중동에 한겨레도 까놓고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무엇이 본질인가? 새 대통령은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왜 민주당이 깨졌는가? 바로 이러한 본질 때문에 깨진 것이다. 이건 엄청난 거다.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에서 기절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놀라는 기척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시침을 뚝 떼고 짐짓 모른체 했다. 그 사이에 오늘의 비극이 잉태된 것이다. 국민들 모르게 말이다.
그때 그 시절..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강호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오늘 만면에 미소를 띠고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단상에 올라 국민 앞에 인사하는 저 군상들 중에 과연 몇이나 살아남을 것인가?
과연 민주당이 제왕적 총재 없는 시대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모두 죽을 것이다. 잘 하면 하나나 둘이 살아남을 것이다.
"당정분리? 대통령의 공천권행사 포기? 얼씨구 자빠졌네. 야 임마!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줄 알어? 며칠 저러다 마는거야. 금방 옛날로 돌아가고 말거라구!"
다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웃어넘긴 것이다. 잘난 체 하는 논객들도, 비겁한 지식인들도, 뻔뻔스런 언론들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합작으로 국민을 속여먹기에 성공했다고 믿은 것이다. 다만 하나! 그들은 인간 노무현을 몰랐던 것 뿐이다.
그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노무현은 당을 장악하지 않았다. 장악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밀실에서 거래하지도 않았다. 국민들 몰래 자행한 묵시적 담합은 깨졌다. 그들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룰은 깨졌다. 기다려도 고대하던 '노무현으로부터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끝내 설렁탕은 배달되지 않았다. 예정대로 후단협은 배신을 자행하였다. 무엇인가? ‘설렁탕 없는 시대의 각자생존’에 돌입한 것이다.
공천권행사 포기, 당정분리.. 참으로 엄청난 거다. 의원들은 졸지에 길 잃은 고아가 되고 말았다. 고아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고아원을 만들었으니 곧 후단협이다.
엄청난 사변이 일어났다. 의원은 제왕적 총재에 복종하고 총재는 의원의 생존을 보장하는 상호계약이 깨졌다. 게르만의 종사제도와 같다. 원래 제왕적 총재와 의원의 관계는 계약관계이다. 그 계약을 파기하고서도 당이 살아남기를 바랬단 말인가?
후단협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불안했던 것이다. 자기들 목숨을 보존할 그 어떤 명시적인 근거도 없어져버린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각자 생존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구조와 시스템이다. 그리고 본질이다. 무엇인가? 정당을 작동하게 하는 구조와 시스템, 곧 인체에 피가 돌듯이 돈이 돌아야 하고, 사람이 공기를 호흡하듯이 정보를 호흡해야 하는 정당의 구조와 시스템 말이다. 그게 막혀버린 것이다.
돈과 정보의 흐름이 일시에 막혀버렸다. 그 상황에서 민주당은 이미 질식사한 것이며, 후단협의 발호는 숨넘어가는 의원들의 비명소리였던 것이다. 오죽 숨이 막혔으면 자금책 김원길이 한나라당까지 줄행랑을 놓았겠는가?
그리고 본질.. 권력의 본질은 ‘인사권’이다. 곧 공천권이다. 이 하나의 본질을 정점으로 하여 돈이라는 피가 돌고, 정보라는 호흡이 작동하는 구조와 시스템이 가지를 치는 것이며, 역사의 파노라마들은 이에 종속하여 부가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보라! 오늘의 이 상황이 무엇인가? 여야를 막론하고 제왕적 총재가 사라졌다. 노무현만 탄핵된 것이 아니다. 최병렬도 이미 탄핵되었고 조순형도 사실상 탄핵위기에 몰렸다. 무엇인가? 최병렬과 조순형은 자기들이 권좌에서 끌어내려지려 하는 위기에서, 본인이 살기 위해 자기에게로 오는 화살을 노무현에게 돌린 것이다.
왜 탄핵하는가? 자기들이 탄핵되지 않기 위해서다. 노무현을 희생시키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치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이 본질을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깨달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왜 필자는 정동영대세론을 주장하는가? 또한 이유가 있다. 앞으로는 모두가 탄핵되는 시대가 온다. 국민개탄핵시대이다. 만인이 만인을 탄핵한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리더에게 힘을 몰아주는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죽으나 사나 대세론으로 가는 것이다.
필자가 정동영대세론을 최근에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1년 전 부터 이야기했다. 그때 부터 필자는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는 예견한 것이다. 정동영이 잘나서가 아니다. 앞으로는 대세론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대세론이 먼저 나오고, 대세론을 감당할 인물로 정동영이 선택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동영 아니라도 대세론은 계속 간다. 누가 당의장이 되더라도 앞으로는 대세론이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모두가 모두를 탄핵하는 시대, 조직은 위기에 처한다. 위기에 처한 조직은 살아남기 위해 ‘조직의 생리’를 작동시킨다. 리더에 강한 힘을 몰아주는 상황이 여야를 막론하고 일어난다. 언제고 끌어내려질 위기에 몰린 리더 역시 본인이 살기 위해서 강한 결정만을 반복한다.
내각제가 원래 그렇다. 수상의 수명이 길어야 3개월이다. 밥먹듯이 수상을 갈아치운다. 반대로 한번 강력한 수상이 등장하면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해먹는 것이 또한 내각제이다.
정동영? 3개월만에 끌어내려 지거나 아니면 4년간 계속 간다. 극에서 극이다. 도 아니면 모다. 개나 소나 대표를 한다. 초재선의원이 당 대표가 되기도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코미디가 속출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라! 민주화를 애들 장난으로 알았더냐? 제왕적 총재를 없앴다는 것은, 정당이 정당 내부에서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꾼 것과 같다. 아주 약하거나 아니면 아주 강하거나다.
민주화가 무엇인가? 권력을 나눠먹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권력을 나눠먹기로 하면, 국민이 권력을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몇몇 철밥통들이 자기네끼리 밀실에서 쑥덕쑥덕 나눠먹는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국민이 소외된다. 과두정치가 등장하고 중우정치가 바통을 물려받는다. 그러므로 이에 대항하여 국민은 지도자 한 사람에게 더욱 강력한 권력을 몰아주려 한다.
무엇인가? 정당개혁이다. 제왕적 총재 1인의 권력이 최고위원이라 불리는 여러 과두들에게 나눠졌다. 그 결과 노무현은 권력을 잃었다. 그 잃은 부분은 국민들에게로 돌려진 것이 아니라 과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므로 국민이 궐기하여, 그 과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권력을 되찾아 노무현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일어선 것이다.
생각하라! 권력은 원래 나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분점이란 본래 사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권력은 소멸하고, 남의 일을 방해하고 딴죽을 거는 권력만 남아난다. 이건 아닌거다.
권력의 분점.. 본래 위태로운 것이다.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조직의 생리가 작동하여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내부적인 권위만들기에 돌입한 것이다.
조순형과 최병렬은 당내에서 탄핵위기에 몰렸다. 그들은 '묻지마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므로서 스스로 권위를 생산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을 희생시켰다. 이것이 진실이다.
적들은 말이 많다. ‘왜 신당을 하느냐?’ ‘왜 지지자를 분열시켰느냐?’ ‘왜 재신임을 하느냐?’ 잔말이 많지만 다 개소리다. 그 모든 사태의 첫단추가 어떻게 꿰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개떼처럼 짖어대는 그대여? 그때 그 시절 그 운명의 순간에는 왜들 그렇게 침묵하였던가?
킬리만자로의 노무현 (독자님의 글입니다.) 기득권을 찾아 특검과 탄핵만을 찾아다니는 여의도의
수구꼴통. 정상까지 올라가 탄핵으로 내몰려도,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분노에 찬 도시의 그 촛불 어디에도
나는 없다. 개혁하러 왔다가 탄핵으로 갈 순
없잖아. 야당이 몰아치고 좃선이 씹어대도,
묻지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개혁하는 일이 주춤하고 뒤로 밀릴
때 그런 정치를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개혁때문이라구? 너는 정치개혁을 원한다고 했다.
너는 언론개혁을 원한다고 했다.
너는 국민통합을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나는 소원한다. 개혁이 어려운건 반발이 있기 때문이지. 이권도 끗빨도 모두를 포기하는 것.
개혁이란, 모두를 잃어도 개혁은 후회않는 것..
아무리 거센 야당일지라도, 왜곡하고 날조하는 찌라시일지라도,
딴잔련 기득권이 탄핵으로 덮쳐와도,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촛불인가 별빛인가 저 넓은 곳 광화문거리 길에서 만나는 촛불과 악수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