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다. 아무도 그를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었다. '살릴 수 없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한국인의 역량으로는 그 정도 안 된다. 평론가가 있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없다. 언론이 나서지 않으면 시민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여러 번 사회를 향해 구조신호를 보냈다. 그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상식이 없거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다. 혹은 사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혹은 도박을 한 사람이다. 킥킥거리며 안 죽는다에 돈을 건 사람이다. 두 가지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냉소하고 돌을 던지는 전략이다. 거짓말을 했으니까 네 잘못이다. 자업자득이다. 네가 네 무덤을 팠다. 이렇게 말하면 마음을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전략을 선택한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아남아 대통령도 되고 영부인도 된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으므로 자신을 방어하는 전략을 쓴다. 밑바닥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모른 척한다. 엮여봤자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부심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이런 일로 성공사례를 만들고, 미담을 완성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성공사례를 자신의 미션으로 삼아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사회에 녹아드는 계기를 얻는 전략이다. 인간은 애착을 얻고 싶어한다. 사회와 섞이고 싶어한다. 방송사가 최성봉을 발굴한 것은 그런 사회의 수요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한번 팔아먹고 버렸지만 말이다. 최성봉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허술한 거짓말이다. 의지할 등 뒤의 벽이 없는 사람의 전략이다. 자신이 다가가지 못하므로 상대방이 다가오게 해야 한다. 좋은 일로 다가오게 하지 못하면 나쁜 것으로 다가오게 한다. 어쨌든 그는 한국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살고 싶지 않아서 죽은 것이다. 그에게는 이 나라가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던 거다. 미션이 주어졌고 한국인은 실패했다. 일찌감치 최성봉의 실패를 예견하고 미션에서 발을 뺀 사람도 있고, 최성봉을 돌보지 못하는 한국인의 실패를 예견한 사람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미션을 잃을 때 죽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