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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942 vote 0 2023.06.19 (17:22:36)

    같은 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다른 것은 그냥 보면 된다.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최소한 그것이 놓여있는 장소와 시간대는 다르니까. 같은 것은 비교 기준을 정하고 패턴을 추출해야 하므로 추론이 필요하다.


    나무의 가지는 다르고 줄기는 같다. 강의 지류는 다르고 본류는 같다. 말단은 다르고 근원은 같다. 사유는 같음을 연결고리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같음에 도달할 때까지 사유를 밀어붙이므로 결국 같아진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중력이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원래 우주 안에 다른 것은 없다. 같은 것은 당연하고 우리는 다른 것을 분별해야 한다. 왜 같은지 묻지 말고 왜 다른지를 물어야 한다. 그렇다. 아인슈타인은 태도가 달랐다. 접근법이 다르고 발상법이 달랐다. 생각의 방향이 달랐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방법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다른 점을 알아내면 만족하고 사유를 멈춘다. 다른 점을 찾아내려고 기를 쓴다. 피부색이 달라. 성별이 달라. 말투가 달라. 계급이 달라. 다른 점이 하나라도 포착되면 적으로 간주하고 자신을 방어한다.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방어자 포지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자기 포지션 획득에만 관심이 있다.


    과학자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들은 공격자 포지션에 선다. 자연 속으로 쳐들어간다.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한다. 산더미 같은 다름 속에서 다이아몬드같이 희귀한 패턴 하나를 찾아낸다. 다르면 끊어지고, 끊어지면 방해되기 때문에 방해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패턴은 닮은 꼴이다. 과학자는 패턴을 연결고리로 단서를 추적하여 진리에 이른다.


    세상은 대동소이다. 과학은 소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대동에 이른다. 과학자는 대동에 의지한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점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보였고, 일반인은 다른 점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역시 그것이 보였다. 싸우는 형제는 다르다고 하고, 말리는 부모는 같다고 한다. 열 손가락을 찔러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아이의 자세로 보면 같은 점이 보이지 않고, 부모의 자세로 보면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왜 같은가? 다르지 않으므로 같다. 왜 다른가? 다른 점은 없다. 다른 것은 당신이 서 있는 지점이다. 다른 것은 관측자의 입장이 개입하여 노이즈가 발생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중력이 같다고 본 이유는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같다고 전제하고 다른 점을 찾아보는게 과학자의 사고다. 반대로 일단 다르다고 전제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게 일반인의 사고다.


    다르면 생각을 이어갈 연결고리가 없어져서 자동으로 생각이 멈춘다. 보통은 생각을 그만둘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눈꼽만한 다름만 발견되면 만족하여 즉시 생각을 그만둔다.


    방향설정의 문제다. 나무의 가지 끝으로 가서 다름을 찾고 그곳에 숨어 자신을 방어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나무의 줄기로 가서 같음을 찾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 그대는 방어자인가 공격자인가?


    같다고 전제하고 다른 점을 걸러내는 아인슈타인의 방법을 우리가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쉽다. 방향만 바꾸면 된다.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라.


    수학에 막혀 좌절했지만 한때 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과학의 방법론 부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과학자의 레토릭이 아니다. 존 내시의 게임이론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손'이니 '게임'이니 하는 말은 비유다. 과학자가 왜 비유로 말하나? 언제부터 경제학이 문학이 되었냐? 본질을 놓쳤기 때문에 곁가지로 말하는 것이다. 정면으로 못하고 말을 돌려서 하고 있다. 당당하지 못하다.


    경제학의 여러 성질은 닫힌계 안에서 작용하는 유체의 성질이다. 파동의 간섭하는 성질이다. 열역학 2법칙과 통한다. 다르지 않다. 우주 안의 존재는 모두 같다는 대전제를 깔면 알게 된다. 경제학을 물리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다. 의사결정구조가 같으면 같다.


    1. 의사결정은 비용이 든다. 닫힌계 안에서 자체적으로 비용 조달이 가능한 형태로 변화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2. 경제활동은 비용이 든다. 시장 안에서 지속가능한 형태로 의사결정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시장 참여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자 내시균형이다.


    3. 닫힌계 안에서 의사결정이 반복될수록 1회의 결정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져서 작용과 비용의 균형에 도달한다는 것이 극한의 법칙이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경제활동의 근거로 삼는다. 잘못된 레토릭이다. 효율성이라고 해야 한다. 경제학에 심리학 용어는 금물이다. 무슨 과학자가 관심법을 쓰나? 언제부터 사주, 관상이 과학이었냐? 효율성은 공유에서 나온다. 시장 참여자가 시장의 자원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 이윤이다.


    모든 이윤은 궁극적으로 공유에서 나온다. 단 사람들이 무형적 자산의 공유를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가격은 약속이고 약속은 공유된다. 공유에서 힘이 나온다. 그리고 공유를 어기면 더 큰 힘이 나온다. 대신 시장을 파괴한다.


    보호무역은 시장 자산의 독점이며 공유의 거부다. 효율성을 부정하고 비효율을 따르므로 망한다. 자유무역은 공유를 늘려 이익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누군가가 공유를 깨고 독점을 추구하면 그는 일시적으로 더 큰 이익을 본다. 대신 시장을 파괴하여 인류가 공멸한다. 이렇게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 이런 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애덤 스미스의 무개념 시장주의가 전쟁가능성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시균형이 나온 것이다. 시장이 자유를 추구할수록 이윤은 증대하지만 리스크도 증대한다. 세계화를 추구하면 이윤은 증대하지만 전쟁 위험성도 증대한다. 이윤의 증대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크게 하고 전쟁가능성을 크게 한다.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는 발산이냐 수렴이냐다. 발산되면 시스템이 붕괴하므로 수렴행동을 하게 된다. 엔트로피는 증가방향으로 수렴된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면 균형이 깨져서 우주가 망한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우주의 균형을 깨지 않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는 우주의 근본 힘이 척력이라는 말이다.


    발판을 굴러 점프하려면 발판이 견고해야 한다. 거인이 2층에서 점프하다가 마루바닥이 꺼지면 피곤하다. 힘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이 의지하는 발판을 깨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개를 목줄로 통제하는 사람은 줄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겨야 한다. 우주 안의 모든 액션은 궁극적으로 척력이므로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른 제한이 걸려 있다. 척력은 미는 힘이고 미는 힘은 받쳐주는 벽보다 클 수 없다.


    산모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아기를 출산할 수 없다. 달걀보다 큰 병아리는 나올 수 없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시간이면 어떨까? 시간에도 역시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 극한의 법칙이다.


    새끼가 어미를 죽이지 않는 형태로 종은 진화한다. 새끼가 부모를 죽이면 부모는 출산을 거부한다. 이 규칙을 어긴다면 어떻게 될까?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다면?


    거래를 하지 않고 배짱을 부리면 이득을 보는 독점구조가 만들어지면 엔트로피 감소다. 상품을 거래하지 않으면 썩어서 팔 수 없게 되어야 시장이 작동한다. 정치판에는 마지막 순간에 부족한 2퍼센트를 가지고 후보자와 딜을 치는 사람이 먹는다. 그것은 반시장 행동이다. 정치시장의 붕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최후에 부족한 2퍼센트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주장하며 눈치를 보고 거래를 하지 않는다. 망한다. 정몽준은 마지막 순간에 배신해서 결과를 바꿔놓으려고 했다. 정치시장의 파괴다.


    뒤의 결정은 앞의 결정보다 비중이 약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이다. 시장은 선점한 사람이 이익을 보고, 상품은 먼저 특허를 낸 사람이 이득을 보고, 전쟁은 선두에 선 사람이 이익을 봐야 한다. 도망친 비겁자가 이득을 본다면 누가 전투를 하겠는가? 배신자가 이득 보는 진중권 정치는 망한다.


    엔트로피 중가 -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극한의 법칙 - 나중 한 결정이 먼저 한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이라는 위험한 용어를 사용했다. 비과학적 용어다. 효율성이라고 말해야 한다. 효율성은 공유에서 나온다. 공유는 리스크를 증대시킨다. 개인의 이기심에 맡기면 엔트로피를 뒤집는 도발을 할 수 있다. 나중 결정이 먼저 결정을 친다.


    정치판에서는 흔하다. 정의당이 망하는 이유는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이 뒤에 살살 따라가며 공기저항을 줄여서 이득을 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발을 내밀겠다는 얌체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기가 엄마를 잡아먹는 행동이다. 박지현 정치 말이다. 이런 식의 엔트로피 감소는 도박판에 많다. 많은 고객의 호주머니를 털어먹은 기계에서 잭팟이 터질 확률이 높다. 잭팟은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다. 뒤에 하는 사람이 이득이다. 이런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없으므로 붕괴하게 되어 있다. 도박판과 정치판에서만 흥한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다 같은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강이든 낙동강이든 바다까지 가면 결국 같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추리고 추려서 궁극적인 단계까지 가면 모두 같아진다. 왜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같다고 선언해야 한다. 다를 리가 없지 않은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내시균형은 같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균형이다. 그것은 유체의 성질이다. 다수의 시장 참가자가 유체다. 열과 질량은 같다. 열은 분자의 진동이고, 질량은 소립자의 진동이고, 암흑에너지는 공간의 진동이다. 누가 진동하는가만 다를 뿐 진동은 같다.


    열역학 1법칙은 같다는 말이다. 더하고 빼면 같다. 2법칙은 변화는 한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말이다. 같음>다름의 형태로 변화가 일어난다. 같은 것은 닫힌계에 갇힌 유체다. 유체의 간섭하는 성질에 의해 보강되고 상쇄되어 같아진다. 변화는 같음에서 다름의 일방향으로 일어난다. 같음이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유체로 보면 같고 강체로 보면 다르다. 아인슈타인은 유체의 성질을 본 것이다. 유체는 압력이 걸리고, 압력은 한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같아진다. 유가 강을 이긴다고 했다. 이긴다는 말은 공간적 느낌이다. 시간에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유가 강에 앞선다. 모든 변화는 유체가 결정하고 강체가 전달한다. 극한의 법칙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 유가 강을 이긴다.

    극한의 법칙 - 유가 강에 앞선다.


    유는 공유다. 강은 사유다. 공유가 사유에 앞선다. 변화는 공유에서 사유로 일어난다. 2에서 1로 일어난다.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세상이 유체라는 것, 그리고 의사결정이 유체의 공유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은 의사결정이 그 공유를 잃어먹는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공유를 사유로 바꾸는게 의사결정이다. 공유는 결정하고 사유는 전달한다.


    처음 남산에 올랐을 때다. 산 아래로 큰 도시가 보였다. 꼬맹이에게는 엄청난 광경이다. 서울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형이 핀잔을 줬다. 저건 시내야. 경주시내라고. 그럼 서울은 어디에 있어?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경계가 보여야 한다. 소백산이 서울을 가리고 있으면 소백산이 보여야 한다. 안개가 가리고 있으면 안개가 보여야 한다. 그냥 얼버무리는게 어딨어?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질량과 중력이 다르면 경계가 보여야 한다. 열과 질량이 다르면 경계가 보여야 한다. 경계를 찾을 때까지 사유를 밀어붙여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중력이 갈리는 경계를 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얼버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유를 중간에 멈출 수 없다. 끝까지 가야 한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다르다는 증거가 없으면 같은 것이다. 다른게 확실하면 다음 단계에서 같아진다. 계속 가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아인슈타인 외에는 아무도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든 생각했다면 아인슈타인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갈릴레이도 마찬가지고 뉴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기특한 생각을 한 것이 아니고 그 이전까지 아무도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신대륙을 간 콜롬부스는 그냥 갔다. 학식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콜롬부스는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주장을 많이 했다. 갈릴레이도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그냥 서쪽으로 간 것이다. 가고 보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같다. 의사결정구조가 같다. 그러므로 같다고 선언하고 다른 것은 너희들이 증명하라고 하면 된다. 세상은 유체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극한의 법칙과 열역학 2법칙은 같다. 다르다면 갈림길이 보여야 한다. 경계가 없으므로 같다.


    다른 것을 걷어내면 같은 것이 남는다. 최후에 남는 것은 의사결정구조다. 최후에 남는 것은 DNA다. 프로그램이 달라도 OS는 같다. 너와 나 사이에 모든 것이 달라도 하나는 같다. 공유하는 것이 최소 하나는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chow

2023.06.20 (10:52:30)

본래 만물은 이름이 있지만 신은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신에게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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