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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300 vote 0 2023.06.15 (16:12:39)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상의 날개]


    세상에 황당한게 너무 많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적당히 눈치보고, 모른 척하고, 주변과 맞춰주며 사는게 맞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벼랑 끝에 몰렸기 때문이다. 뒤가 막혔으므로 앞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의 퇴각. 적진을 향해 철수한다. 어릴 때의 꿈은 과학자였다. 또래 중에서 만물박사다. 모르는게 없었다. 박정희의 미신타파 운동에 앞장서야지. 교회와 절부터 때려부숴야 되는데. 그 꿈은 4학년 때 박살났다.


    내가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기호와 도형만 보면 울화통이 터졌다. 그때부터 삐딱해졌다. 못 하는게 너무 많다. 물구나무서기를 못했다. 피리를 못 불었다. 몸으로 하는 것은 다 못했다. 음악 시간과 체육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아이들과 놀지 않았다. 아이들은 미친듯이 뛰어다니는데 나는 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이 시원한데 왜 땡볕을 뛰어다닐까? 끝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인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놈의 세상은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나 역시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세상과 나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다. 내 얄궂은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은 앞으로 도망치는 전진철수였다.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서 문제가 된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가. 어이가 없잖아. 인류는 모두 바보인가? 그렇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 사방이 다 막혀 있고 이쪽으로만 열려 있으므로 이 길을 간다.


    세상은 나를 유혹하지 않았다. 등을 떠밀었을 뿐이다. 구조론은 내 취향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으므로 내가 한다. 쉽잖아. 1+1=2라고 말하는게 구조론이다. 그거 누가 못해? 그런데 왜 아무도 하지 않는 거지?


    세상의 근본은 에너지다. 원자의 존재는 인간의 희망사항이고 자연에 없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변화다. 변화만 변화를 연출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움직일 수 없다. 이건 초등학생도 알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원자론이 질량보존을 어긴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말하지 않지? 대충 뭉개기 있냐? 멈춘 것은 움직일 수 없지만 움직이는 것은 멈출 수 있다. 죽은 것은 살아날 수 없지만 산 것은 죽을 수 있다. 움직임이 나란하면 상대적으로 멈춘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움직임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유체다. 유체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간섭한다. 간섭하면 제한이 걸린다. 그것을 우리는 질서라 부른다. 우주에는 질서가 있다. 멋진 소식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나? 질서 되게 좋아하면서 왜 질서의 근거를 말하지 않나? 국민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국가에 질서가 있는 것이다. 움직이면 충돌하므로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게 진보다. 질서는 진보와 동의어다.


    왜 질서가 진보라고 말하지 않나? 이런 것은 기본적이고 명백한 것이다. 사람들이 질서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질서가 무엇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검색해도 나오는게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질서가 필요 없다. 보수는 질서가 없다.


    보수는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질서가 없고, 질서가 없으므로 질서를 떠드는게 보수다. 진보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자연히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미 질서가 있으므로 질서를 말할 이유가 없을 뿐 진보야말로 진정한 질서의 생산자다.


    왜 근본으로 설명하지 않나? 모든 것은 에너지의 성질로 설명되어야 한다. 에너지는 유체다. 유체는 간섭하므로 법칙이 있다. 우리가 아는 물질은 간섭의 결과다. 간섭하다가 엉겨 붙은 것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간섭도 없고 물질도 없다.


    이런 기본을 명확히 정리해 놓고 있으면 태산처럼 의연해질 수 있다.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철대오 말이다. 벽을 등지면 마음이 든든하다. 실마리를 잡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정상에 서면 호연지기를 얻는다.


    아기는 엄마가 등 뒤의 벽이다. 청년은 세력이 벽이다. 그다음은 관성력에 의지한다. 그것은 자식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발사대의 로켓은 중력에 의지한다. 점화하면 추력에 의지한다. 우주 공간에서는 계속 가는 관성력에 의지해야 한다. 


    계속 가는 힘에 의지하는게 진짜다. 정답은 모르지만 오답은 아는게 구조론이다. 오답을 계속 쳐내면 최후까지 남는게 정답이다. 이 하나의 원칙만 알아도 스트레스가 반으로 줄어든다. 오답을 계속 밀어내면서 얻는 관성력에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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